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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로 Oct 31. 2024

엄마가 주변 정리를 본격적으로 할 때.

건강한 사람에게 찾아 온 '돌발성 난청'의 영향

 지난 추석, 여느 명절과 같이 당일 아침을 시댁에서 먹고 올라왔다. 꽉 막히는 도로를 헤쳐 저녁시간이 얼추 다 되어 친정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한쪽 귀가 꽉 막힌 듯 들리지 않는다고 답답해하셨다.

"머리감을 때 물 들어갔나 보지~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평소에도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의 엄마라, 무슨 말을 하면 '에이~'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주는 게 습관이 된 나는 이번에도 그렇게 대답했다. 엄마 딸이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나 또한 만만치 않은 걱정쟁이인데, 그럴 때 '에이~'하고 반응하는 덤덤한 남편이 꽤 마음을 가볍게 하기에. 물론 실제로 큰 걱정을 안 하기도 했고.

 다음 날, 연휴에도 다행히 진료를 하는 동네 이비인후과에 다녀온 엄마는, 귀지가 차서 그런 것 같다 했다며 귀지 제거를 하고 왔다고, 여전히 안 들리지만 병원에서 조금 있어보라 했다고 역시나 가벼운 증상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여전히 들리지 않는 한쪽 귀에 전 날 귀지를 제거해 줬던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셔야 할 것 같다'며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큰 병원에서 확인된 엄마의 병명은 '돌발성 난청'

처음 들어본 말이라 검색을 해봤는데 그야말로 이유도 전조증상도 없이 어느 날 아침 돌발적으로 찾아오는 난청이라고 하며, 그 치료방법의 기본이 '어마어마한 양의 스테로이드 복용'이었다.

보통은 30~50대에 주로 발병한다는데, 80을 코앞에 둔 노년의 몸이 그만한 양의 스테로이드를 버텨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것도 치료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다니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치료를 해도 정상청력 회복 가능성은 1/3, 조금 나아지지만 회복 못할 확률이 1/3, 그리고 나머지 1/3은 차도가 전혀 없을 거랬다.

10개쯤 되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하고 고막주사에 고압산소치료도 병행했지만 1~2주쯤 후에는 낫기는커녕 어지럼증도 동반되었다. 잔병은 더러 있었어도 그 연세까지 크게 아픈 일이 없던, 그래서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그녀가 70대라는 걸 망각할 만큼 활동적이던 엄마는, 그 이후 짧은 기간, 갑자기 노인이 되었다.


 몰랐던 바 아니지만, 엄마가 아프면서 이전에 소소하게 의지하던 것들이 바뀌었다. 회식이 잡혔을 때 아이를 맡길 수 없었고 다진 마늘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얼려서 받아왔는데, 처음으로 냉동 다진 마늘을 구매하는 등의 일상적인 것. 언제든 아이를 데려와도 좋다고, 혹은 우리집으로 올 수 있다고 괜찮다 말씀하시지만 부탁하기가 어렵다. 일하는 딸이라고 내 시간을 엄마를 위해 소비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게 과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운) 엄마였는데, 호출의 빈도가 늘었다. 쇠약해진 건강은 자신감을 잃게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보다 감당이 쉽지 않은 건, 진지하게 주변정리를 시작했다는 거다.


 그런 움직임이 그전에도 없었던 건 아니다. 떠나면 남은 사람들(자식이 나 하나라 여기서 남은 사람들이라야 나와 남편정도다)에게 짐이 된다면서 묵은 짐이나 문서 등을 수시로 버렸고, 새로 들이는 데에 꽤나 고민했다.

아빠와 연명치료 거부등록도 하고 왔고, 두 분의 납골당 자리도 계약했다. 다만 이런 것들은 생각나는 대로 천천히 '건강할 때'하고 있는 준비여서 마음이 편치는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근래는 그 느낌이 다르다.

통장의 위치와 앱 비밀패턴을 알려주고, 무슨 일이 생기면 (성당) 연령회장님에게 먼저 연락하면 된다... 여기 묵주가 들어있는데 이중에 이게 나무묵주이니 나중에 화장할 때 이것도 같이 넣어줘라. 같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한다. 이걸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평소처럼 '에이~'하고 넘겨야 하나 망설이다가 진지하게 들었다. 그래야 엄마의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추석이 한 달 이상 지났지만 엄마는 '차도 없는 1/3'에 속하는지 한쪽귀가 여전히 들리지 않고, 약하지만 어지러움도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난청과 함께 찾아온 이석증이라고 한다.)

전화를 습관상 안 들리는 쪽 귀로 받아서 한 번씩 바꿔드는 정도의 수고를 빼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은 없어 보인다.

뭐, 원래도 몸이 불편하다고 드러눕는 성격이 아니니 생각보다 그녀는 더 불편할 지도 모른다.

남을 나를 위해서 아빠보다 하루라도 더 살다가게 해달라고 요즘 부쩍 기도한다는 엄마가, 빨리 이 심리적 위기를 벗어나기를 바라본다. 기적처럼 청력도 좀 돌아오면 더할 나위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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