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큰 관문, 딸 허락받기
Part1. 엄마 가도 돼?
내 딸은 아빠 껌딱지였다.
내 뱃속에서 나와 모유 먹고 자랐으니 기본적으로 엄마에 대한 애정이야 있지만, 아빠를 더 좋아한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게 서운했냐 하면 전혀 아니다. 어릴 적 나의 아빠는 꽤 무서웠기 때문에 나 역시 살가운 딸일 수 없었고 나는 아빠와 친한 친구들(그즈음 이런 친구들은 손에 꼽도록 적었지만)이 부러웠었다.
그래서 내 딸에게 그렇게 따뜻한 아빠가 있다는 게 보기 좋았고, 아이가 아빠와 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남자와 결혼한 나의 선택을 칭찬하기까지 했었다.
그랬는데!!
유치원을 졸업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엄마를 더 찾았다.
아빠 껌딱지이던 시절이라면 혼자 가는 여행이 좀 더 편했을 거라는 이제와 소용없는 생각과 함께, 아이에게 엄마가 열 밤이 넘게 집에 없을 거라는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만 깊어졌다.
생각과 망상의 끝판왕 INFJ 답게 그 고민은 '만 6세 아이에게 엄마와 떨어져 있는 며칠의 기간이 유연한 성장과정 중 걸림돌이 되어 앞으로 정서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가'하는 데까지 뻗어갔다. 검색도 해보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봤는데, 뭐 당연히 그런 조언이나 기사나 논문 따위는 없었다.
정면승부하자!
아이가 기분이 좋을 때를 골라 물었다. "엄마 10 밤 정도 혼자 여행 가도 돼?"
아이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안 돼. 같이 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을 거야"
며칠이 지났다.
그래, 공감능력 뛰어난 아이니까 솔직히 다가가 보자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엄마가 10년 동안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더니 긴 휴가가 생겼어. 엄마 혼자 여행 다녀오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엄마 마음을 이해했지만 선뜻 다녀오라고 할 수 없어서 생기는 혼란과 진짜 엄마가 혼자 여행을 가버릴까 봐 두려운 마음이 눈에서 보였다. 마음이 일렁여서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가야겠다 생각하며 우붓의 키즈캠프 같은 걸 찾아보는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은 건 회사의 점심 메이트들이었는데,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내 마음이 덜 힘들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줬고, 함께 내린 결론은... 거짓말이었다.
몇 주가 지났다.
"엄마가 회사에서 출장을 가게 됐어. 열 밤 넘게 있어야 하는데 괜찮아?"
죄책감과 미안함과 불안함과 기대를 마음 저쪽에 잘 눌러 숨기며 물었고, 그동안의 고민이 무색하게 아이가 선뜻 대답했다. 다녀오라고.
응? 너 내 말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다녀오라고?
아이의 목소리와 눈빛과 표정을 자세히 살폈는데, 슬퍼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몇 주 동안 마음이 단단해진 걸까, 출장은 엄마의 선택이 아니라는 걸 이해한 걸까?
나는 어리둥절한 채 아이의 허락을 받았다.
... 거짓말해서 미안해. 좀 더 크면 꼭 고백할게.
Part2. 엄마, 나 가도 돼?
나와 남편은 각각 1시간과 2시간씩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며 아이를 챙기고 있다. 남편은 매일 아침 아이를 등교시킨 후 출근했고, 나는 이른 아침에 출근해 아이의 학원이 마치기 전에 일찍 집에 와서 아이를 맡았다.
내가 없으면 아이의 하원과 남편의 퇴근 사이에 육아 부재가 생기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고 여행을 꿈꿀 수 있었던 건 친정이라는 단단하게 믿을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혹 퇴근이 늦어지거나 약속이 있거나 했을 때 기꺼이 와주시는 친정엄마.
이러저러하여 혼자 여행을 가고 싶은데 매일 오후 집에 와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더니 엄마는 흔쾌히 그러마 하셨는데, 다만 그 시절 어른들이라면 응당 덧붙일 법한 걱정을 삼키지는 않았다.
- 그렇게 오래 자리 비워도 회사 괜찮은 거니? (회사에서 쓰라고 준 휴가라고요!)
- O서방이 혼자 있을 수 있대? (사위가 어린인가요?)
- 네가 옛날 생각만 하고 자신만만한데 너도 나이가 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가는 겁니다 어머니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