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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로 Nov 24. 2023

바이크택시, 처음이 어렵지!

 평일인데 늦잠을 잤다.


 올빼미족이나 얼리버드의 구분이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고난 것이거나 신체적 특성이거나... 절대적인 수면시간과 무관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쉽지 않은 나는, 그래서 평일에는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나지만 주말에는 누가 깨우기 전엔, 보통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일어난다.

아침의 시작이 늦는다고 게으르다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말의 활동시간이 남들보다 다소 적을지라도 나름 알차게 보내는 편이니까 =)


 내가 패키지여행을 싫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 년 전 부모님을 모시고 대만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두 분을 '자유롭게 모실' 엄두가 안 났던 우리는 큰 고민 없이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그런데 밤에 호텔에 내려놓고 다음 날 동틀 즈음 로비에 집합하는 일정이 반복되어 우리 부부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썩 편한 여행은 못되었다. 많이 보고 많이 맛본 건 맞지만, 그래서 사진 배경도 다양하긴 한데 정작 기억에 남는 현지의 매력이 없다. 한식이 아니면 안 드시는 시아버님과 함께 한 다낭여행과 함께, 출입국 기록에는 남았지만 안 간 것이나 다름없는 여행이다.


 해외여행이어도 다를 바 없이, 첫날부터 늦잠을 잤다.

눈 뜨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조식시간 끝났나?!'였다. 이 숙소의 조식은 (4만 원에 조식까지 포함이라니!) 아침 7시 반~10시 반 사이에 방으로 식사를 가져다주는 방식인데, 원하는 메뉴와 시간을 골라 호스트의 와츠앱 메시지로 보내면 된다. 다행히 시간이 남아 있어 후다닥 메시지를 보내고 일어나 씻고 나와 조식을 받았다. 그냥 동네인데 푸릇푸릇 우거진 걸 보니 내가 우붓에 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얼른 먹고 동네 산책 가야지!


첫날 조식 : 발리니즈 바나나 팬케이크. 쫀득하고 달콤함.


걷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우붓을 검색하면 대부분 '우붓왕궁'을 기준으로 설명하는 글이 많았으니, 왕궁이 이곳의 메인이구나 싶어 구글지도를 검색해 봤다. 뭐 걸어서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선크림으로 전신 무장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아직 반도 안 걸었는데 너무 덥다ㅠ 땀이 주르륵 날 정도의 더위라 가까이 보이는 카페에 일단 들어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커피를 다 마시고도 나올 엄두가 안 났지만 아아 버프를 받아 걸어보았다. 더운 게 아니면 걸을만했다. 우붓에는 매연이 심해서 걸을 수 없다는 후기를 많이 봤던 터라 이게 뭐가 심하다는 건가 생각하면서.

... 그런데 비스마로드를 벗어나 왕궁 앞 큰 도로를 걷기 시작하면서, 이게 진짜구나 생각했다. 차와 오토바이가 어디서 이렇게 쏟아져 나온 건지 시끄럽고 매캐하고 인도의 존재는 노점으로 인해 무의미해서 걷기 힘들었다. 그래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문제는 '돌아가려면 다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오토바이 택시, 타볼까?

 걷는 걸 좋아했으니 오토바이 택시, 관심도 없었고 탈 자신도 없었다. 와서 보니 손잡이라고는 오토바이 뒤에 달린 것 하나뿐이라 너무 위험해 보였다. 그랬는데 이 길을 더 걷는 것보다는 그걸 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엉덩이 뒤의 손잡이에만 의지하기는 두려워 잘란카페에 검색을 했다. 나의 궁금증이 너무 유교걸스러운가 생각했지만, 이미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여행선배들의 조언은 '가방을 앞으로 매고 기사와의 거리를 확보한 채, 양해를 구하고 옷을 잡아라'였다. 방법을 안 것에 대한 안도보다는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에 편안해졌고, 바로 그랩 바이크를 호출했다.

그리고....

'오오오오!! 너무 신나!!!! 시원해!!!'

운전을 어찌나 잘하는지, 좌회전 우회전을 하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그렇게 지나는데도 뒷자리에 탄 내게 격한 흔들림이 전달되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날 만큼 한 손으로는 뒤의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사의 가방끈을 잡고는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중심을 잡기 위해 내 손에 들어가는 힘은 그다지 없었다.   

이렇게 첫 번째 바이크택시를 경험하고... 우붓을 떠날 때까지... 1km가 넘는 거리는 무조건 바이크택시를 탔다! 걷는 거 좋아하지만... 땀 흘리며 걷는 건 싫어.


태국음식점 와룽시암 (warung siam)

 바이크 호출의 목적지는 식당이었다. (이제 못 갈 곳이 없다!) 숙소 조식을 제외하고 발리에서의 첫 식사가 태국음식인 건 좀 아이러니하지만 우붓에 꽤 오래 머물렀던 친구의 맛집 추천 목록 중 하나였다. 여행 유튜버들처럼 가방에 넣어두었던 고프로로 내 먹는 모습을 담을까 싶어 꺼내보았는데 손가락이 오그라들어 도로 집어넣었다. 음식은 간이 좀 짜지만 맛있었는데, 뜻밖에도 밥의 양이 후해서 다 먹지는 못했다. 또 올 건데 메뉴 하나만 시킬걸. (당시 그렇게 생각했지만 또 가지는 못했다. 남겼어도 메뉴 두 개를 맛본 건 결과적으로 다행인지도)


길 쪽으로난 bar타입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건 여행 첫날이니 골목의 풍경을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하교시간인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자주 지나갔고, 어린아이를 앞에 태운 오토바이도 지나갔다. 일상적인 풍경인데 비일상적인 식사를 하고 있는 여행자의 눈에는 그저 이국적으로 보였다.

더불어, 백인의 비중이 굉장히 높았다. 조금 과장해서 거리의 반은 백인인가 싶을 정도. 현지인과 백인들 사이에서 나의 외모가 유니크한 느낌이라 문득 유쾌했다.  성수기를 비켜온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한국어를 자주 듣지 않을 수 있는, 그래서 외국에 있는 감상을 방해받지 않는.




<Tip>

우붓에서 7박을 지낸 숙소 이름은 우마유리인(Umayuri inn)입니다.

비스마로드 골목 안쪽에 위치해 조용하고, 무엇보다 호스트 아저씨의 피드백이 초스피드여서 혼자 지내기 좋아요!

비스마로드는 먹을 곳과 마사지샵이 '적당히 깔끔하게' 있어서 너무 복잡한 곳은 싫지만 너무 외진 곳은 불편하다 싶은 혼자 여행객에게 추천합니다!

1박당 4만 원이라는 가격은 사실 우붓 시세로 봤을 때 엄청 저렴한 건 아니라고 해요, 4만 원대의 많은 숙소들이 수영장을 갖추고 있는 걸 생각하면, 여긴 부대시설이랄 게 없으니 비싼 편일지도요. 2~3만 원 대도 많고 에어컨을 포기한다면 1만 원 대도 있다고 하니까;; 다만, 하루이틀 머물 게 아니라 비싼 숙소는 갈 수 없었어도 깨끗함도 편리함도 포기할 수 없던 제게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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