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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Apr 10. 2022

네, 저는 디멘딩 커스터머입니다.

냉정한 민폐와 열정적 권리 사이



 요즘 내가 현생에서 괴로운 이유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이놈의 망할 역병 때문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회사 앞 스타벅스(정확히는 타이완 통일 집단이 운영하는 타이완 스타일의 스타벅스)의 최악의 '서비스 마인드 없음'이다.


 그들에게 있어 손님의 기분이나 생각 따윈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아쉬우면 그냥 오지 마시라'는 일관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딱딱한 얼굴을 들이밀며 주문을 받는다. 매일매일을 말이다. 내가 주문한 음료가 유별나다고 힐끔힐끔 쳐다보기 일쑤, 오전 정해진 시간에 스토어 문을 열고 그들 앞에 서서 커피를 주문하는 내가 보이면 그 시간대에 일하는 파트너들은 수군대기 시작한다. '去奶泡,熱一點來了。’( 「거품 없이 뜨겁게」 왔어.) 나는 어떤 뜨거운 음료를 시키든 항상 고수하는 정해진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커피의 거품을 최대한 없이, 보통 온도보다 뜨겁게'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 습관은 캐나다에서 처음 스타벅스의 직원으로 근무하며 생긴 버릇인데 이렇게 마시면 진짜 커피를 제대로 마시는 기분이 들어서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커피를 제조해주는 스타벅스의 방식이 마음에 들어 전 세계 어느 스타벅스를 가든 난 항상 이렇게 주문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나는 우리 회사 앞 스타벅스 파트너들에게 있어 그저 '디멘딩 커스터머'일 뿐이었나 보다. 뭐라 할 말이 없지만.


  내가 이렇게 좀 유별난 '디멘딩 커스터머'가 된 이유는 내가 캐나다에서 약 1년간 몸담았던 북미 스타벅스에서의 경험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요구사항이 많은, 굳이 한국어로 번역해보자면 '진상 고객' 즈음되는 이 디멘딩 커스터머는 사실 그렇게 좋은 뜻이 아니다. 내가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만 해도 (지금은 잘 모르겠다) 스타벅스의 기본 정신인 멀티 태스킹과 커스터머와의 아이컨택, 스몰 토크는 아주 필수적인 요소여서 이 3개가 죄다 되지 않는 내가 그 스타벅스의 무시무시한 인터뷰를 통과하고 일을 하게 되다니, 당시의 나로서는 꽤나 큰 대박 사건이긴 했다.


 그러나 어디 일이 그렇게 쉽게만 풀릴 수가 있겠는가. 나는 첫 출근부터 장장 약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극심한 스트레스와 이로 인해 생긴 불면증을 당연하다는 듯이 달고 살았으니, 무엇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너무나 무섭고 이러한 스트레스와 공포의 근본적인 원인이 매일같이 매의 눈으로 나를 무섭게 노려보는 우리 스토어의 '레귤러 커스터머들'의 차디찬 시선이었다는 것을, 당시 생초짜 초보 바리스타이자 초보 잉글리시 스피커였던 (정확히는 논 네이티브 스피커) 나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헤이 하이디 이거 내 커피 아닌데."


 평일 오전 6시부터 8시, 이 2시간은 우리 스토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나게 중요한 타임 대였는데 이 시간대에 바(Bar= 스타벅스에서는 커피를 만드는 공간을 '바'라고 부른다.)에 서서 커피를 만든다는 것은 어엿한 바리스타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프로 바리스타라는 것을 의미했고 난 3개월의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후 이제 막 혼자 바에 서게 된 애기 바리스타였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기본 약 30여 개의 컵이 줄을 지어 내 앞에 스탠바이 타고 있던 그 순간 우리 스토어 골수 단골손님인 '서지'가 불쑥 내게 말을 거어왔다. 자신의 커피가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 난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그가 내게 내민 컵을 받아 들고 대답했다.


 "서지, 이거 당신 커피 맞아요. 톨 사이즈 드라이 카푸치노. 여기 당신의 이름 쓰여있잖아요."


 사실 북미 스타벅스에선 스토어 내부의 메뉴를 보고 음료를 주문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각자 고유의 '커스터 마이즈드'된 자신만의 레귤러 음료가 있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난 처음 틸(Till= 주문을 받는 곳, 카운터)에 서서 주문을 받을 때 정말 적지 않게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토익 리스닝 테스트 보다도 더 힘들었다.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이 프랑스식 '서지'라는 이름을 가진 노신사는 우리 스토어 근처 오피스에서 일을 하는 백인 캐네디언이었는데 오전에 드라이 카푸치노를 오후엔 도피오 에스프레소(도피오= 더블이라는 뜻의 커피 용어)를 시켰다. 늘 같은 시간 같은 음료만 마셨기에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날은 그가 나에게 내가 만든 그의 레귤러 음료가 얼마나 최악인지에 대해 불만 아닌 불만을 터뜨린 최초의 날이었다.


 "아니야. 너도 컵을 들었으니 알 거 아니야. 네가 생각하기에 그 카푸치노가 정말 드라이하다고 생각하니?"


 난 순간 머릿속은 새하얘지고 눈앞은 시커메지는 블랙아웃 현상을 경험했다. 내가 만든 드라이 카푸치노가 드라이하지 않다고...? 그랬다. 그가 원했던 카푸치노는 컵을 들었을 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신선한 에스프레소 위에 100% 거품으로만 채워진 진짜 '핵 가벼운' 카푸치노를 말했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몰아세웠다.


 "세상에 이렇게 무거운 드라이 카푸치노가 어디 있니? 당장 다시 만들어 줘."


 진실로 고백하건대 이 당시 내가 만든 음료가 그에게 있어 최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그저 갓 3개월을 넘긴 생초짜 바리스타였고 이런 사실을 그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난 그의 이런 발언에 엄청난 서운함과 당황함을 느꼈고 왜 그렇게 바쁜 시간에 나를 쥐 잡듯 몰아세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헤이 서지! 당신도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이렇게 그의 면상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내 뒤엔 우리 스토어 매니저(지금은 이름조차 까먹어버린)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고 결국 난 30개의 컵들을 뒤로하고 그의 음료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


 "하이디, 너 그거 알고 있니? 난 약 10년간 매달 200달러가 넘는 돈을 너희 스토어에 쏟아부었어. 그렇기에 난 내가 원하는 완벽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단다. 어때?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니?"


 그가 나에게 말하는 바는 아주 명확했다. 나는 너희 스토어에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기에 넌 그에 합당한 커피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는 나에게 '프로'가 무엇인지 대해 '일을 하는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냥 주는 대로 마시지 어딜 가나 저런 디멘딩 커스터머는 꼭 있다고 투덜댔던 바보 같던 과거의 내 모습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상대가 어떤 손님이든 나는 그저 내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내 실력이 모자람을 탓하지 않고 손님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졌던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사실 커피에 거품이 많든 적든, 온도가 뜨겁든 그렇지 않든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저 우리 회사  스타벅스 파트너들에게 바랬던 것은 하나.

다정하게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


 나의 이름은

 ‘거품 없이 뜨겁게'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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