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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Jan 27. 2022

D-80년

펑펑 울며 한 손으론 주섬주섬 초콜릿을 찾아

 미국에 잠시 어학연수를 가있을 , 북의 미사일이 미국 영토인 괌으로 발사될 수도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뉴스는 한국의 것과는 결이  달라서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스치듯  생각은, 내가 돌아갈 한국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였다.


새로운 삶을 여기서 시작해야겠지, 대학도 전공도 모조리 바꾸고, 예술보단 먹고살 수 있는 일을 택해야겠지. 의사가 될까 아님 엔지니어? 일단 그러고 나면 내 돈을 벌고 내 공간을 만들고 소소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주말엔 몰에 가고 시간이 남으면 윌라밋 강으로 산책을 가고.  나의 모국에게나 부모님에게나 패륜적인 생각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초간 자유를 느꼈다. 그 몇 초간의 순간이 나를 사로잡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

윌라밋 리버

그 시절 누구보다 다급하고 불안정했던 내게 사람들은 100세 시대이니 천천히 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알 수 없고 막막한 시간이 80년이나 더 남았다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수명이 늘어났다고 20대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잘, 그리고 되도록 빨리. 100세 시대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왜 아무도 모르는 것일까. 외롭고 억울했다.


 내게  영화를 계속 만들었냐 묻냐면 이상한 행동들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상한 감정들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을 때마다 살아갈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답하겠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면 아델이 펑펑 울며 집에 돌아와 침대 옆에서 초코바를 주섬주섬 찾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 보면 추찹할 수도 있는 그 행동이 나와 꼭 닮아있어서 그 장면을 발견했을 때 놀랐다.


 누군가 굳이 굳이 그 사소한 장면을 프레임 안에 넣어 나에게 보여줬기에, 세상이 끝난 듯 울면서도 초콜렛은 입에 쑤셔넣던 때의 죄책감과 창피함이 면해진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는 누군가도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세상이 끝나고 리셋이 되길 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당신의 죄책감과 창피함을 나도 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졸업이 유예된 대학생 지희는 미군과 결혼한 이모로 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곧 북한의 핵공격이 있을 예정이고, 이 통화를 마지막으로 이모 가족은 미국에 돌아간다는 내용.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고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렇다면 나도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완성했을 당시 나는 철저히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환영받지 못하고, 외면받았다고. 창피하고 억울해서 하드에 넣어놓고 몇 년간 쳐다도 보지 못했다. 지독한 PTSD에 시달렸다.


그날을 기다리며 묘한 희망에 사로잡힌 지희


 창작이란 것이 정말 웃긴 것이, 일단 세상에 내놓으면 정말 자식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브런치 글 곳곳에 등장하는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은 시간의 흐름대로 읽다 보면, 이 영화가 세상과의 접점이 꽤나 많았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내게 그 영화를 본 것이 큰 위로였다고 전해지는 말들이 지금 내가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준다. 아주 기묘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제 글 곳곳에 진하게 흔적을 남긴 이 영화가 상영의 기회를 얻어 2022.02.04-14까지 갤러리 아미디 연남점에서 상영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갤러리 아미디 또는 인스타그램 @underground_shorts를 참고해주세요.

더불어 상영을 위한 텀블벅이 진행 중이니, 작은 손길이라도 보태주신다면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https://tumblbug.com/undershort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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