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펑 울며 한 손으론 주섬주섬 초콜릿을 찾아
미국에 잠시 어학연수를 가있을 때, 북의 미사일이 미국 영토인 괌으로 발사될 수도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뉴스는 한국의 것과는 결이 좀 달라서 곧 전쟁이 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스치듯 든 생각은, 내가 돌아갈 한국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였다.
새로운 삶을 여기서 시작해야겠지, 대학도 전공도 모조리 바꾸고, 예술보단 먹고살 수 있는 일을 택해야겠지. 의사가 될까 아님 엔지니어? 일단 그러고 나면 내 돈을 벌고 내 공간을 만들고 소소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주말엔 몰에 가고 시간이 남으면 윌라밋 강으로 산책을 가고. 나의 모국에게나 부모님에게나 패륜적인 생각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초간 자유를 느꼈다. 그 몇 초간의 순간이 나를 사로잡아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 시절 누구보다 다급하고 불안정했던 내게 사람들은 100세 시대이니 천천히 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알 수 없고 막막한 시간이 80년이나 더 남았다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수명이 늘어났다고 20대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잘, 그리고 되도록 빨리. 100세 시대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왜 아무도 모르는 것일까. 외롭고 억울했다.
내게 왜 영화를 계속 만들었냐 묻냐면 이상한 행동들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이상한 감정들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을 때마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면 아델이 펑펑 울며 집에 돌아와 침대 옆에서 초코바를 주섬주섬 찾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 보면 추찹할 수도 있는 그 행동이 나와 꼭 닮아있어서 그 장면을 발견했을 때 놀랐다.
누군가 굳이 굳이 그 사소한 장면을 프레임 안에 넣어 나에게 보여줬기에, 세상이 끝난 듯 울면서도 초콜렛은 입에 쑤셔넣던 때의 죄책감과 창피함이 면해진 기분이었다.
내 영화를 보는 누군가도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했다. 세상이 끝나고 리셋이 되길 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당신의 죄책감과 창피함을 나도 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고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고 느낀다면, 그렇다면 나도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완성했을 당시 나는 철저히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환영받지 못하고, 외면받았다고. 창피하고 억울해서 하드에 넣어놓고 몇 년간 쳐다도 보지 못했다. 지독한 PTSD에 시달렸다.
창작이란 것이 정말 웃긴 것이, 일단 세상에 내놓으면 정말 자식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브런치 글 곳곳에 등장하는 이 영화에 대한 내용은 시간의 흐름대로 읽다 보면, 이 영화가 세상과의 접점이 꽤나 많았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내게 그 영화를 본 것이 큰 위로였다고 전해지는 말들이 지금 내가 계속 살아가게 만들어준다. 아주 기묘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제 글 곳곳에 진하게 흔적을 남긴 이 영화가 상영의 기회를 얻어 2022.02.04-14까지 갤러리 아미디 연남점에서 상영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갤러리 아미디 또는 인스타그램 @underground_shorts를 참고해주세요.
더불어 상영을 위한 텀블벅이 진행 중이니, 작은 손길이라도 보태주신다면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https://tumblbug.com/undershorts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