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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Apr 08. 2024

같은 공간, 비슷한 기억, 다른 추억

 미국의  키웨스트는 미국의 최남단이고 헤밍웨이가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10년 전 아무것도 모른 채 이끄는 대로 따라간 키웨스트는 너무나도 이국적인 곳이었다. 작은 섬을 이어주는 길게 뻗은 도로는 너무도 신기했고 내 눈앞에 펼쳐진 옥색 빛의 망망대해는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그 풍경은 너무나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아 누군가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10년이 지나 다시 찾은 그곳은 10년 전과 다름없이 나의 탄성을 다시 이끌어 내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찾았다는 것이다. 도로와 같은 높이로 보이는 바다는 마치 바다 위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나는 너무 들떠서 조수석에 앉은 아내와 아름다운 풍광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하지만 뒷좌석에 앉아 있는 두 아들은 어김없이 풍경에는 관심이 없고 둘이 하고 있는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다. 둘이 하는 놀이에 흥이 났는지 큰 소리로 떠들었다.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동시에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야 이놈들아 조용히 좀 해라~~ 경치 좀 보자~~ 너네는 저 예쁜 풍경이 안 보이냐~~"

"... 아... 예쁘네..."

그러고는 다시 자기들 놀이의 세계로 정신없이 빠져들어 재잘재잘 떠들었다.


 운전을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이 바다는 10년이 지나도 탄성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 있는데 얘네들에게는 어떤 곳으로 기억될까? 별 다를 것 없는 바다와 도로에 생각보다 먼 곳이라고 기억할까? 아님 자기들끼리 즐겁게 카드놀이를 했던 곳으로 기억할까?'

가족 여행을 다녀보면 어른들이 바라는 것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는 간극이 있다. 어른들은 여행을 가면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유적지를 가면 그 유적지의 유래와 역사를 알고 싶고 풍경을 보면 어떤 감동이 있어야 하고 어떤 역사의 유래를 알게 된다면 교훈이 남고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해맑다. 그저 집이 아닌 곳이니 신이 나고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되니 즐겁고 마음껏 놀 수 있으니 단순하고도 순수한 동기로 좋아한다. 그래서 생긴 간극의 끝은 어른들의 잔소리다. '넌 여기 뭐 하러 왔냐? 뭐라도 하나 얻어가야지. 여기 오는 게 쉬운 줄 아니?'와 같은 말을 여행지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이 풍경을 보고 감동을 받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와 아내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결국 본인이 살아가며 부딪히는 수많은 경험들이 쌓이며 지금과는 또 다른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같이 바라보던 바다와 실연을 겪고 바라보는 바다는 다르다는 것을, 성공의 달콤함과 실패의 씁쓸함이 있다는 것을, 좌절의 뼈 아픔과 다시 일어서는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아직은 너무도 해맑다. 아이들이 모르는 어른의 세상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니 더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된다. 나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어김없이 입이 열리며 잔소리 중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가도 끝없는 반복이다.


‘그래 얘네도 때가 되면 알게 될 텐데…’

그러고 아내와 나는 다시 앞을 보고 둘만의 대화를 한다. 역시나 둘은 신나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다.

그냥 둘이 즐겁게 놀도록 놔두었다. 그렇게 키웨스트를 보고 돌아왔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키웨스트 갔다 왔는데 뭐가 제일 기억에 남냐고…

“카드 게임 재밌게 하고 간 게 제일 기억에 남는데, 바다는 다른데 보다 좋은지도 모르겠고…”

역시나 나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진 않았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빠, 엄마와 함께한 시간 중에 한 부분일 것이고 크게 기억에 남지 않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에겐 소중한 기억과 추억으로 남을 테니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그곳에 간다면 서로 다른 시간의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고 행복한 추억의 장소로 기억될 테니까.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해주었다.

“그래, 둘 다 기억에 남고 행복한 추억인 것 같아 다행이다.”


너희는 우리와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다른 추억을 쌓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까. 이제 그만 잔소리를 좀 줄여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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