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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Aug 15. 2023

당신의 밤은 평온하신가요?

 병원의 밤을 책임지는 것은 응급실이다. 낮동안 외래로 북적이던 병원이 저녁이 되면 입원환자들도 병실로 돌아가고 평온이 찾아온다. 하지만 응급실은 항상 환자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런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다. 올해 들어 응급실 진료를 보시던 과장님의 공백 등 다양한 이유로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다. 응급실 진료는 의사니까 다 가능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의사로서 기본적인 질환의 경우에는 간단하게 처치나 처방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지식이 필요한 질환에 대해서는 검사나 응급처치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치료와 처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의 경우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히 응급실을 찾는 이유인 복통의 경우는 항상 보는 증상이어서 조금은 수월할 수 있지만 소아나 특수한 질환을 가지신 분들이 오시면 난감한 경우가 있다. 혼자서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담당 과장님들께 늦은 밤에라도 죄송함을 무릅쓰고 전화를 드려서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응급실로 (의사가 보기엔) 별거 아닌 증상으로 내원하시는 경우가 있다. 새벽에 내원하신 환자 분이 가려움, 벌레물림, 두드러기, 단순 두통, 단순 발열 등 간단한 처치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자다 깨서 나오는 솔직한 내 속마음은 '아~ 이런 걸로 이 시간에 응급실로 오시지?'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환자를 보고 나면 정말 많이 힘들어서 오시긴 했나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밤에 당직을 서게 되면 의사들이 병원에서 잠을 자는 공간을 일반적으로 당직실이라고 한다. 전공의 때의 당직실은 병동의 한쪽 끝에 있던지 아니면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의사들이 일이 끝나면 잠시 쉬거나 밤에는 눈을 붙이는 공간이었다.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면 너무나 친숙한 공간일 것이다. 엄연히 집이 있음에도 집에 갈 시간이 없어서... 집에 가기 귀찮아서...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일이 있어서... 당직실에서 생활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을 테지만 나의 전공의 시절 당직실은 항상...

어둡게 유지되었다. 항상 배달음식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고 이불은 항상 구겨져서 놓아져 있었다. 항상 바닥에는 수술복이 널브러져 있었고 보다가 아무 곳에나 던져둔 책들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쓰지 않은 주사기, 채혈 밴드, 수액라인등 다음에 쓰기 위해서 혹은 쓰다가 남아서 주머니에 넣어버린 온갖 기구들이 돌아다녔다. 전공의 기간 동안에는 배치된 병동에 따라 당직실을 배정받았다. 윗년차들과 2인실을 같이 쓰기도 하고 2층 침대가 여러 개 놓여있는 다인실을 배정받기도 한다.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생활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이 매우 다양한 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당직실에서 술 먹고 토한 이야기, 당직실에서 몰래 자다 선배에게 들켜서 혼난 이야기, 선배한테 허락받고 잠시 쉬다 다른 선배에게 다짜고짜 쉬지도 못하고 쫓겨난 이야기 등 정말 다양한 사연이 있는 공간이다. 당시엔 당직실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우던 때여서 삼삼오오 모여 스트레스받은 이야기, 선배들 험담을 하기도 하면서 담배연기를 힘듦과 함께 내뱉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 사연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사연도,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는 사연도 그저 그런 항상 있는 사연도 있었다. 그 사연을 엮으면 아마도 백과사전 정도의 분량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당시에는 당직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병동에서 엎드려 밤을 새우던 일도 비일비재했고 당직실에 들어가고 싶은데 선배가 자고 있어서 못 들어간 적도 있었다.


 요즘 응급실 당직을 하면서 병원에서 밤에 머물 때가 있지만 난 당직실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당직실을 사용할 때면 전공의 때가 문득 떠오른다. 당직실에서 편히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왠지 들어가기가 싫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야간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싫은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당직실의 부정적인 생각들로 꺼려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그때나 지금이나 야간에 당직을 서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야간 당직은 아픈 환자들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모두가 평온한 하루를 보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응급실을 찾을 것이다. 오늘도 응급실 앞에는 급하다는 듯 구급차 경광등의 번쩍이는 불빛이 아른 거릴 것이고 환자의 신음소리, 보호자의 다급한 말소리가 응급실에 울릴 것이다. 거기서 응급실을 담당하는 의사들의 빠른 발걸음에 간호사들의 빠른 손놀림이 있을 것이다. 오늘도 평온한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 밤 나의 밤은 평온할 것이다.


 당신의 밤은 평온하신가요? 오늘 응급실의 밤도 평온하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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