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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쿼카킴 Jan 31. 2019

광안리의 모래, 플라스틱을 만나다

청년인문프로젝트-플라스틱바다를 구해줘

이 글은 청년인문프로젝트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의 팀 아나바시스의 팀원들이 작성한 글입니다.



김상원


나는 모래다. 차가운 바람과 철썩이는 파도가 재산인 아름다운 바닷가에 살고, 따뜻한 날씨가 되면 사람들의 웃음이 햇살처럼 내 위로 부서져 내렸다. 이곳에 있게 된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10년? 20년? 100년? 인간의 시간으로는 셀 수 없을 만큼 긴 시간동안 여기에 있었다. 한때는 바위였고, 한때는 자갈이었고 지금은 모래알의 모습으로. 이 바닷가의 모습도 때때로 바뀌어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곳을 광안리라고 불렀고, 또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다녀갔고, 눈 깜짝할 새 하늘처럼 높은 건물들이 해안가 가득 들어섰다. 아주 오랫동안 변함없던 이곳에 나타난 화려한 건물과 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흥미롭고 즐거운 변화였다.

 언젠가 나와 함께 수백 년을 나란히 지내온 모래가 물었다.

 “요즘따라 파도에 모래가 많이 쓸려나가는 것 같지 않아?”

 파도에 휩쓸리는 것은 본디 모래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물음에 개의치 않았다. 모래가 빨리 사라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모래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내 옆의 모래는 원래 있던 모래를 잘 지켰으면 이럴 일이 없을 거라고 한심해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쨌든 인간들은 해결책을 갖고 있잖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만큼 쓰레기가 많아지기도 했다. 종이컵, 비닐봉지, 나무젓가락 같은 일회용품과 술병이 굴러다니기도 했고 일회용 도시락통과 플라스틱이 쌓였다. 내 옆의 모래는 인간들이 모래를 잃어버리는 것에 이어 바다를 망쳐버릴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곧 공무원이나 학생들이 와서 환경정화활동을 한다며 큰 쓰레기들을 주워갔다. 매일매일 해안만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것 봐. 인간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물론 인간들이 모든 쓰레기를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몇 쓰레기들은 구석으로 밀려났고 바다로부터 반대로 해안가로 떠내려 오기도 했다. 분해가 시작된 쓰레기도 있었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원형을 유지한 쓰레기도 있었는데, 개중에는 나의 성질과 아주 닮아 보이는 녀석도 있었다.

 “안녕.”

 인사에 고개를 돌렸는데 매우 낯선 얼굴이 있었다.

 “나를 아니?”

 “물론이지. 몇 년 전에 바로 여기서 널 만났었는데.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하긴 내 모습이 많이 변했지?”

 녀석은 자신을 플라스틱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플라스틱과는 무척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조금 더 크고, 목적이 분명해 보이는 모양새였는데, 지금은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기 어려울 만큼 작고,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너무 놀라지는 마. 몇 년 동안 이곳저곳에서 들었는데 너도 처음부터 모래알은 아니었다며? 거대한 암석이었다가, 바위였다가, 자갈이었다가 이런 모래가 된 거지. 나도 마찬가지야. 처음에는 플라스틱 물병이었지만 바람에 부딪히고, 햇빛을 맞으면서 크기가 줄어든 것뿐이니까.”

 자신만만해 보이는 녀석은 호기심을 보이는 다른 모래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돌아다녔는지 설명해주었다. 그 녀석은 해류를 따라 바다를 표류했고, 반짝이는 자신이 물고기인 줄 알았던 새에게 잡아먹히기도 했다. 새의 뱃속에는 다른 플라스틱이 잔뜩 있었고, 얼마 못 가 새가 죽은 뒤에는 물고기에게 먹혔다고 했다. 물고기 역시 오래 살지 못했다. 다른 모든 쓰레기가 분해되는 동안에도, 자신은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어깨를 으쓱였다. 다만 모든 순간에 쉼 없이 작아지고, 쪼개지고, 미세한 조각으로 변해갔다고 말했다.

 “너희는 이곳에 가만히 있으니 모르겠지만 내 동료들은 지금도 전 세계를 엄청나게 돌아다니고 있어. 이 나라만 해도 나처럼 작은 플라스틱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많을 거야. 사람들이 실제로 우리를 바다에 버리기도 하지만, 부표나 양식업 같은 데에 쓰기도 하고, 생활 쓰레기가 하천에서 흘러오기도 하거든.”

 당당한 그의 모습과 달리 우리는 모두 직감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던 새와 파란 바다를 헤엄치던 물고기가 죽은 이유가 플라스틱 친구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원래 먹어야 하는 것을 먹지 못하고 쓰레기를 먹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나는 계속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쓰레기는 자연성분으로 언젠가 분해될 수밖에 없을 텐데?”

 플라스틱 녀석은 어깨를 또 한 번 으쓱했다.

 “물론 그렇겠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을 뿐. 너네는 여기서 플라스틱이 완전히 분해되는 걸 본 적 있니? 인간이 만든 최초의 플라스틱조차 아직 분해되지 않았어. 몇 백 년 쯤 걸리겠지.”

 모든 존재가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오랜 시간 살아오며 얻게 된 지혜였다. 그러나 플라스틱은 그 동안 우리가 알아온 모든 것을 배신했다. 그리고 이것은 바다의 생명을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죽일 것이었다.

 플라스틱 친구는 점점 더 작아졌고, 그의 말이 정말이었는지 비슷한 플라스틱은 자꾸 늘어났다.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모래사장엔 모래보다 작은 플라스틱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내 옆의 친구가 아주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 이야기 들었어? 작은 플라스틱은 이제 인간의 몸에까지 들어간대.”

 “뭐? 인간들도 플라스틱을 먹어? 새나 물고기처럼?”

 “직접 먹는 게 아니라, 바지락에도, 담치에도, 홍합에도, 고등어랑 소금, 생수에도 플라스틱이 들어있으니까 인간도 피할 수가 없게 된 거야. 어때, 넌 아직도 인간에게 그들만의 해결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는 아직 어떠한 대답도 내놓을 수 없었다. 인간들이 이제 카페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못 쓴다는 얘기도 들어봤고, 어업용 부표를 관리하겠다는 계획도 들어는 봤다. 하지만 이미 죽어가고 있는 생명이 분명히 있고 내 주변에도 너무 많은 플라스틱이 있는 벌어져버린 사태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인간들은 자신들 역시 플라스틱에 의해 죽어가면서도 그것을 깨닫는 것조차 너무 느린데 말이다.

 “너는 항상 인간의 과학기술력, 그들의 양심 같은 걸 믿어왔지만 작은 플라스틱을 검출하고 정화할 능력이 그들에게 있을까? 있다고 해도 비싼 비용이 드는 일을 그들이 하려고 할까? 어쨌든 지금으로선 플라스틱을 덜 쓰는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 역시 그렇게 하려고 할까?”

 긴 시간 인간을 지켜봐왔다. 믿었던 것이 그들의 기술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나와 같이 자연에 기대어 살았다. 모래성을 쌓고 두꺼비집을 만들며 자라난 아이들은 내가 바람에 흔들리듯 바람을 따라 바다로 나갔고, 내가 파도에 휩쓸리듯 물결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잡은 양식에 감사해했고 바다가 영원히 그들의 기원이자 생존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아끼고 보살폈다. 그것은 그들이 착하고 양심적인 존재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술을 만들만큼 뛰어났던 그들의 지성 그 자체였다. 다시 그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해볼 수 있진 않을까? 나는 작은 기대를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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