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인문프로젝트-플라스틱바다를 구해줘
이 글은 청년인문프로젝트 삼삼오오 청년인문실험의 팀 아나바시스의 팀원들이 작성한 글입니다.
이혜진
이곳에 머물게 된 지도 벌써 6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말이지. 실은 내가 광안리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야. 고기잡이 경력만 해도 우리 동네에 나보다 오래 된 사람은 없지 싶어. 그런데 사람들이 어느 날 주차타워에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하더라고. 그 때부터 이 주차타워 꼭대기에서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바다를 한눈에 바라보게 된 거야.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바다에 살면서 고기를 실어다 날랐지만, 이렇게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는 건 처음이야. 나한테는 바다가 어디 회사 사무실 같은 곳이니까 말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밤바다가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고. 광안대교에 불 켜진 게 그렇게 멋있다나? 야광 불빛을 바라보면서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시고 남녀가 만나서 연인이 되기도 하고 그런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지. 여름에는 피서객으로, 가을에는 불꽃축제, 겨울에는 어방축제로 복잡해서 혼이 빠질 지경이야. 나는 위에서 젊은이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보내.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 어떤 이야기를 하나 궁금해서 말이야. 그런데 아쉬운 건 그 친구들이 그저 바다를 바라보기만 한다는 거야. 진정으로 바다를 느끼지 않는다는 거야. 바다를 느끼지 않고, 그저 젊음에, 즐거움에 취해 있기만 하다는 거야.
광안리 야경이 그렇게 아름답다지만 말이야. 새벽 바다의 고요함이 얼마나 잔잔하고 묵직하게 마음을 울리는지 모를 거야. 아침 햇살에 비치는 찬란한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무 찬란해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는 것도 말이야. 나는 매일 기도를 올리곤 했어. 새벽에 고기잡이를 나갈 때면 오늘도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많은 고기를 잡아서 풍족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막일하며 살아온 사람이라 종교도 없지만 그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거야.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 교만해서는 안 된다.’ 수십 년 동안 매일 바다에 나가면서 하루도 잊지 않았던 말이야. 매일 되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어.
우리 애들은 내가 허구헌날 비린내 나는 옷을 입고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다니니까 봐도 못본 척 하기 일쑤였지. 그래도 바다는 나에게 고마운 곳이야. 거기서 잡은 고기며 온갖 것들로 애들 맛있는 것도 사주고 대학까지 보냈으니까. 바다에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얻었으니, 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다짐했어. 바다에 돌려줄 것은 없지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거야.
그런데 요즘 바다가 이상해. 어딘가 아픈 것 같아. 그물을 끌어올리면 생선도 생선이지만 플라스틱 쓰레기가 같이 걸려오기 일쑤고 말이야. 뉴스를 보면 그 생선들도 플라스틱을 먹었다나 뭐라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플라스틱이 생선들 내장에 들어 있다고 하는 거야. 그걸 사람들이 먹으면 몸 안에 남아서 병이 될 수도 있고. 이전에는 어떤 바다거북이 목에서 비닐이 나오기도 하고, 플라스틱에 목이 끼어서 죽어가는 바닷새들도 있더라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바다에서 나는 신선한 것들을 육지 사람들에게 전해준다는 자부심으로 수십 년을 살았는데, 그게 사람들에게 병을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등골이 오싹해져.
그래서 요즘은 다시 기도를 해. 더 이상 바다로 나가지는 않지만, 내가 아니라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서 말이야. 우리 좋자고, 우리 즐겁자고 마음껏 먹고 마시고 함부로 내버린 것이 죄스러워서. 그 작은 것들이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말이야. 광안리는 언제나 축제 중인데, 나 혼자 제사를 지내는 셈이지. 광안리에는 야경이 빛나는 밤바다도 있지만, 검고 고요한 새벽바다도 있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침바다도 있고, 그걸 지키고 싶은 나 같은 어부도 있어. 보잘 것 없는 내 기도를 누군가 들어줄는지 모르겠지만 말야. 오늘도 주차타워 꼭대기에서 이렇게 기도를 해. ‘우리가 더는 교만해지지 않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