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걸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요. “
내가 예민한 걸지도 모르겠다, 는 따위의 착한 척도 할 만큼 해봤다. 그래서 할 말은 해보겠노라고 마음먹었다. 서로 불편해질 수 있는 ‘할 말’을 한다는 건 말을 뱉기 전에 따져야 할 게 은근히 많은 까다로운 작업이다.
1. 자제해 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화내거나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인상은 아닌가? (인상으로 판단해서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2. 어떻게 말해야 인신공격이 되지 않고, 최대한 감정을 뺀 채 불편함을 전달할 수 있을까? (카페나 영화관이라면 생각할 시간이 충분하지만, 엘리베이터 같이 주어진 시간이 짧은 공간에서는 여기에 대한 답도 빨리 내려야 한다.)
3. 마지막으로,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잠재운다.
오늘은 불운하게도, 엘리베이터에서 연습할 기회가 주어졌다. 타자마자 중년 아저씨가 틀어놓은 트로트가 쩌렁쩌렁 울리며 그 좁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말을 하기 전, 레이저 눈빛을 쏴봤다. (별 기대는 하지 마시라, 보통 이 방법은 안 통한다.) 아저씨는 내 레이저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눈치 보는 기색은커녕 반사를 하고 있었다. 마치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나야. 근데 뭐, 어쩔 건데?’. 그 뻔뻔함 덕분에 용기가 났다. 자, 이제 목소리를 낼 차례다.
“아저씨가 음악 튼 거세요?”
“(파워 당당) 응, 내가 틀었어요.”
잠시 침묵.
“(파워 당당) 불편해요?”
“(억지웃음을 티 내며) 네, 불편해요.”
“아니, 음악이 불편하면 어떡해.”
“(한 차례 감정을 억누르고, 다시 억지웃음 지으며) 불편한 사람도 있어요.”
드디어 그가 음악을 껐다. 목표 달성.
그러나 이어지는 자기주장.
“아니 불편해도 그렇지, 엘리베이터 타는 이 잠깐을 못 참아서 그걸 말하나. “
이 타이밍에 난 내릴 때가 되었고, 읽씹으로 쿨한 웃음만 날려주며 걸음을 서둘렀다. 저 멀리서 내 뒤통수에 던지는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세상 살다 보면 별의별 사람 다 만나. “
본인이 별의별 사람인 건 아는 건가, 다 알면서도 그 뻔뻔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저씨의 뻔뻔함 덕분에 쓸데없는 미안함을 갖거나 심장이 쿵쾅대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이 연습을 한지도 어언 몇 개월.
처음엔 말을 뱉고 나서 괜히 내 얼굴이 더 화끈거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고, ‘괜히 말했나, 이러다 나 쌈닭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온갖 걱정이 들었다.
오늘은 이 연습을 한 이래로 가장 속이 시원했다. 나 이제 적응된 걸까?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조금 더 해보련다.
내 안에 악의가 차지 않도록. 엄한 데 화풀이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