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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지않는돌고래 Apr 11. 2021

아이와 함께 6시간 정도 버스를 타면서 느끼는 것들

새벽의육아잡담록


1.

주말은 버스를 타는 날이다. 보통 4시간을 타고, 6시간을 타는 날도 있다. 


2.

방향감각이 극도로 떨어지는 인간에게 버스와 지하철이라는 선택지가 있다면 100% 지하철이다. 버스는 영속적 좌절이라는 이름을 가진 괴물이기 때문이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허, 참. 몰라도 너무 모르시는 말씀. 복잡한 버스 환승을 할 바에야 인류가 당면한 주요 갈등의 원인을 찾아내어 분석하는 게 훨씬 쉽다(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해결하라는 건 아니니까 뭐). 


버스를 잘 못 타 비웃음 당한 일이 많아 거부감이 있는데(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정도로 인간을 아래로 보는 나쁜 놈들...), 첫째인 하루가 최근 전철에서 버스로 관심사를 옮기며 주말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버스를 탄다.  


지난 주말에는 7016번, 7011번, 704번, 06번, 05번, 262번을 탔고 몇몇 버스는 종점까지 갔다가 회차했다.


...... 


종점까지 가고 싶어서 간 건 아니고 중간에 잘 못 내리면 집에 못 돌아오니까 그랬다. 


...  


3.

주말마다 4시간, 때때로 6시간씩 버스를 타니 나 같은 인간도 생각이란 걸 한다. 


짐이 많은 경우, 그리고 저상버스가 아닐 때, 등에 배낭을 메고 한 손엔 중간에 산 무언가를 들고, 한 손엔 하루를 둘러메고 버스 계단을 오른다. 이쯤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배려받을 상황이 등장한다. 


제삼자가 보기에 먼저 타면 편하다든지, 자리를 양보해주면 편하다든지, 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태어난 지 3년 된 사람은 버스 속력이 급격히 변하면, 날아가지요)


이때, 배려는 젊은 사람보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40대 이상의 여성이 압도적이다. 


난, 이런 걸 느낀다. 


아, 해봐야 아는구나. 


4.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나 아이 손을 잡고 가는 아빠가 눈에 보인 지 3년 좀 넘었다. 


유모차 때문에 낑낑대는 이가 있으면 달려간다. 임산부나 아이를 낀 인간은 내 세계관에선 제1 용기의 대상이다.  


왜. 


해봐서 아니까. 


5.

한국에선 아이가 사라지고 있다. 


나는 65명쯤 되는 인원이 한 반에 있고 그래도 선생님이 부족해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등교하는 코찔찔이 과밀 시대에 학업을 시작했는데 요즘엔 한 반에 20명이 안 되는 곳도 있단다. 


출생률과는 별개로, 버스를 멍~하니 4시간에서 6시간쯤 타다 보면 아이가 사라지는 사회에선 2차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왜 나는 성소수자, 장애인, 빈부 격차, 환경, 마사오... 아, 마지막 건 환경 문제에 포함되나, 여튼 등등에 대해 부동산이나 세금 문제보다 덜 민감할까.  


행동으로 발현되는 앎의 절대치가 부족하다. 앎의 틈을 메꿔줄 감수성의 절대치가 부족하다. 


불과 몇 년 전, 아이 손을 잡고 가는 사람과 유모차를 밀고 가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용기가 부족했던 건 내가 막돼먹은 인간이어서가 아니다. 


...... 


... 뭐 막돼먹은 것도 조금 있는 건 사실이지만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눈 앞에서 나타나고, 모르는 만큼 눈 앞에서 사라진다. 


6.

출생률 따위 될 대로 되라는 주의지만 이와 별개로 아이가 사라지는 사회, 그 자체는 인구, 노동, 경제, 복지 등으로 연계되는 사회 문제와는 다른, 인간이 가진 소중한 무언가를 잃게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7011번 버스의 창밖을 바라보다 들었다(262번일 수도 있지만 뭐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아이 혹은 아이와 반드시 함께 움직여야 할 어른에 대한 한 국가의 정책 혹은 사회안전망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인간 개개인이 가지는 ‘작은 인간’에 대한 감수성, ‘작은 인간’에 대한 이해도, 혹은 그 ‘작은 인간’과 함께 다녀야만 하는 인간에 대한 감수성의 절대량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 


장애인, 성소수자, 빈부격차, 환경 같은 문제처럼, 일단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까. 옆에 없으니까. 


개나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만 해도, 아니, 키우지 않아도, 그런 사람과 살아보거나, 옆에서 보기만 해도 개와 고양이에 대한 감수성이 다른 법이니. 


7.

아이가 줄어드는 세상은 내 눈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으로, 내 눈에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은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세상으로, 아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세상은 아이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으로. 


서서히, 서서히, 아이와 관련된 감수성이 사라지는 세상으로.  


음. 


...... 


이래서 차를 사는군. 


...... 


나도 신호등을 구분할 줄 아는 눈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 


아. 그전에 돈 문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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