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육아잡담록
1.
연말의 일이다.
결산 시즌이라 내내 퇴근이 1-2시간 늦어졌다. 평소엔 말을 드릅게 안 듣는 필진들이 연말에 원고를 쏟아내는 건 아마 ‘너도 좁돼봐라’라는 복수심이 작용한 듯하다. 다행히 원고는 잘 나갔으나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매일 1-2시간 줄었다.
외향적인 기질이 아니라 사람을 잘 만나지 않거니와, 오랫동안 접촉이 없어도 상실감을 느낀 적이 없는데 아이 혹은 아내와 매일 일정량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으면 삶에서 뭔가 하나 빠진 기분이다. 그 기분은 좀 피하고 싶어 한다.
해서 보통 저녁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으나 하루에게 같이 분리수거를 하러 가자 했다. 하루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가, 분리수거장이 있는 주차장의 자동차 관람이며, 나로서는 시간의 절대량을 채우지 못했으니 농도로 보상받고 싶었다.
신이 난 녀석은 나간 김에 화석을 깨서 공룡도 보자 했고(그런 아이용 화석 발굴 키트가 있습니다) 옆 아파트의 놀이터도 가자 했다.
자동차를 보고 화석도 깨고 조금 걸어 놀이터도 갔다.
2.
저녁 8시, 영하의 날씨, 아무도 없는 텅 빈 놀이터에서 이 놀이 기구, 저 놀이기구를 타며 해맑게 웃는 자식을 본다. 행복하다. 기쁘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빠 시소 타자.
아빠 무서우니까 여기 보고 있어.
아빠 일루 와봐. 하루 손잡아.
으헤헤헤헤. 으헤헤헤헤해.
나는 이 순간을 ‘인간 행복의 극한값’이라 표현한다. 육아라는 극한 노동을 견디게 하는 힘 중 상당 부분이 이 짧은 순간에 기대는 게 아닌가 한다.
나는… 나는… 아… 이 순간… 이 순간을 위해…
그런 감정이 온다. 해맑게 웃는 아이의 순수함은 코로나보다 전염력이 강해 별 것 아닌 일에도 가슴이 뜨겁고 눈도 뜨겁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에게 오랜만에 그 '순간'이 왔다 들떠서 썰도 푼다.
3.
돌아와, 식탁에서 자동차 퍼즐에 집중하는 하루를 뭉클하게 바라보며 아까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건넨다.
하루야 다음에 아빠 분리수거하러 갈 때, 또 같이 놀…
아니! 다음엔 안 갈래. 다리 아파.
… …
… …
개객끼야!
어른이었으면 바로 개객끼야! 했을 터인데 내 자식이라 속으로만 개객끼야! 했다. 눈도 안 마주치고 퍼즐에 집중,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본인의 의사를 강력하게 밝히는 이 색기는, 과연 내 색기구나 했다.
옆에서 아내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