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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영 Sep 15. 2023

히틀러의 죽음

<연설중인 히틀러>


히틀러의 죽음

1945년 4월 29일, 독일 제 3제국(3rd Reich) 총통 히틀러는 이제 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음을 짐작합니다. 동쪽에서 소련 스탈린의 붉은 군대가 이미 베를린 깊숙히 들어와 있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동쪽의 방어선이 무너진 것입니다. 스탈린의 붉은 군대는 무자비한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이들은 파죽지세로 몰려와 총통의 정원 거의 앞까지 도달했습니다. 히틀러가 숨어있던 벙커는 지하 깊숙히 숨어있었지만 이제는 포탄의 진동이 벙커 안에서도 직접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쪽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키며 바다로 들어온 미국군과 연합군 세력은 파죽지세로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머지 않아 베를린의 서쪽에 다다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독일의 수도는 양쪽으로 포위당하게 됩니다. 포위당한 군대는 전략적으로 두가지의 선택지만 있을 뿐입니다. 항복하거나, 아니면 끝까지 저항하다가 철저하게 전멸하는 것.  

포위섬멸작전의 무서움을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있었 것은 바로 독일군이었습니다. 포위섬멸작전은 원래 독일군이 자랑하는 최고의 전술이었기 때문입니다. '전격전'이라고 부르는 이 전술로 독일군은 유럽의 열강들을 차례로 무너뜨려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이 그 죽음의 공포를 느낄 차례가 된 것입니다. 


다음 날 30일 새벽, 희미해져가는 현실감각을 겨우 부여잡은 히틀러는 이제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마지막을 준비해야할 때가 온 것입니다. 

히틀러는 무엇보다 지금껏 미뤄왔던 에바와의 결혼식을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전쟁중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뤄왔던 것이죠. 물론 전쟁을 승리하고 성대한 식을 올리려 했던 것이었지만 이런식이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애인이었던 에바 브라운은 붉은 군대가 베를린에 밀어닥치고 있는 상황에서도 히틀러곁을 떠나지 않았던 지고지순한 여인이었습니다. 히틀러는 울고 있는 에바 브라운의 손을 꼭 잡고 호적을 담당하는 사무관을 불러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서약의 증인은 끝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던 측근 괴벨스와 보어만 두사람이었습니다. 결혼식 중에도 어두컴컴한 벙커안에는 간간히 포탄의 폭발음이 들려왔습니다. 폭발의 진동으로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는 결혼식에서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전쟁기간중에 결혼하는 것은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믿었기에, 지금, 땅에서의 이력을 끝내기 전에 나와 오랜 세월 우정을 나눈 뒤 자유의지로 완전히 포위된 도시로 들어와 나와 운명을 함께 나누려는 이 아가씨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자신의 소원에 따라 내 아내로써 나와 함께 죽게 될 것이다...나 자신과 내 아내는 파면이나 항복의 수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지난 12년동안 민족에게 봉사하면서 내 일상의 업무 대부분을 처리한 이곳에서 즉시 불태워지는것은 우리의 의지다."


<에바 브라운>

4월 30일 새벽 4시, 두 사람은 유언장이자 동시에 결혼 서약서이기도한 역사상 가장 모순적인 문서에 각각 서명합니다. 새 신부가 된 에바 브라운은 너무 기뻐 흥분한 나머지 서명란에 자신의 원래 성인 브라운의 B를 쓰려다가 곧 지우고는 다시 남편의 성을 붙여 에바 히틀러라고 고쳐 서명했습니다.

결혼서약을 마친 후, 어두컴컴한 벙커에서 히틀러는 조촐한 피로연을 열었습니다. 자신과 에바 브라운, 그리고 최후까지 그의 곁에 남은 부하들은 마지막으로 샴페인 잔을 부딪히면서 자신들이 지난 날 꾸었던 꿈과 영광스러웠던 날들을 회상했습니다. 폴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를 차례로 점령하며 제국의 승리를 의회에 보고했을 때, 수만의 군중으로 가득찬 의회와 광장은 쏟아져나오는 박수와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었는데.. 

짧은 피로연이 끝난 후 두 부부는 부하들과 마지막으로 가볍게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작별인사의 의미를 알고있는 부하들은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를 딱 붙이고 몸이 떨리는 것을 겨우 막아보려했지만 온몸이 덜덜 떨리는 것은 막을수가 없었습니다. 작별인사는 곧 히틀러의 파멸을 의미했고 이는 다가올 자신들의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측근들은 군인들이기도 했지만 정치인들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재판을 통해 사형당하게 된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작별인사를 마친 두 사람은 피로연 자리를 떠났습니다. 잠시 뒤, 히틀러의 방에서 총소리가 들렸왔습니다. 서둘러 부하들이 달려가보니 총통은 피를 흘리며 소파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 에바 브라운, 아니 에바 히틀러는 총상은 없었지만 옆에 쓰러져 죽어있었습니다. 아마 히틀러가 독약을 마신게 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하들은 두 부부의 주검을 밖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서 포탄이 터지고 있는 히틀러의 정원 안쪽에서 두사람을 불태웠습니다. 그렇게 2차세계대전은 끝이 납니다.


꿈꾸는 괴물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과 함께 희망차게 시작한 근대는 이렇게 인류사 최악의 괴물이었던 히틀러의 죽음과 함께 문을 닫게됩니다. 근대가 이런식으로 종말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근대는 인류사에 전에 없던 빛나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의 탄생으로 자유시민들이 등장했고, 자유시민들은 과학을 발전시키며 놀라운 기술 문명을 이루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희망과 꿈으로 가득차 있었던 이 시대는, 자그마치 5천만명의 죽음을 일으킨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전쟁을 일으킨 어느 괴물의 죽음과 함께 끝나게 됩니다.

히틀러의 죽음은 단순히 독재자의 죽음이 아닌 근대의 종말을 상징합니다. 그는 어떤 존재였고 왜 괴물이 된 것일까요? 믿기 어렵겠지만 히틀러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괴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냥 하는말이 아니라 그는 정말로 꿈을 꾸었습니다. 다만 황당하게도 그 꿈이 '세계정복'이었을 뿐입니다. 어린시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개구쟁이 소년들이나 꿀 법한 꿈을, 히틀러는 진짜로 현실에 실현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꿈이 깨어지면서 괴물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과 그 가족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을 값으로 지불한 채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사실 근대는 모두에게 그런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꿈을 꾼 사람은 비단 히틀러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근대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꿈을 꾸었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자신들이 믿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처럼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이상하게도, 그렇게 꿈을 꾸었던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근대의 마지막에 가까이 가면서 모두 낭떠러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물질의 이중성:입자와 파동>

양자역학의 등장

그렇다면 히틀러가 아닌 다른 근대의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요? 모던을 상징하는 분야, 과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근대의 과학자들은 물질이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기 원했습니다. 세상은 어떻게 탄생했고,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밝혀내는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물질을 계속 잘게 잘게 쪼개다 보면 언젠가 물질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자들의 노력 끝에, 처음에는 원자핵과 전자라는 물질의 구조를 밝혀내었습니다. 이들은 점점 진실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찰 기술이 조금만 더 발전하면, 이제 진짜 원자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으리라, 창조신의 꿍꿍이를 내가 밝혀내고 말리라! 그런데 관찰과 실험을 거듭할수록 과학자들은 점점 미궁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실험 결과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양자역학'의 등장입니다. 이상하게도 물질은,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가지 형태로 동시로 존재한다는 현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왼쪽 그림에서처럼,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물질은 잘게 쪼게다 보면 동그란 작은 알갱이, 즉 입자가 나타날 것 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물질들의 세계를 관찰해 보니까 물질은 물결치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오른쪽의 그림에서처럼 물질은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물결처럼 파동치며 저 물결의 어느 지점에 '랜덤'하게 위치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물결의 속도는 빛의 속도만큼 빨라서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위치할 수도 있고 거의 동시에 바다 건너 뉴욕에 위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눈 앞에 있는 볼펜이든 핸드폰이든 신발이든, 우리 주변의 물질들이 점같은 입자가 아닌 물결치는 파동, 게다가 확률로 존재한다는 실험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아무도 없습니다. 이 이상한 실험결과는 마치 누군가에게 '사과는 사과이기도 하지만 물결치는 거대한 바다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소리를 한다면 아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화를 낼텐데, 미친사람의 헛소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말입니다. 이는 과학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험 결과는 있었지만 합리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끝까지 이 이상한 실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던졌던 말입니다. 세상이 파동치는 확률로 존재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입니다. 실험 결과는 분명 눈 앞에 있었지만 인류사 최고의 천재의 머리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했던 과학자들의 꿈은 이렇게 깨지게 됩니다. 


꿈이 깨어진 것은 근대의 사상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근대의 사상가들의 가슴을 가장 뜨겁게 만들었던 사상은 공산주의였습니다. 지난 수천년간 인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낮은 계급의 사람들을 부리고 착취하며 떵떵거리고 살아가는, 불평등의 사회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민혁명 이후 전 세계에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을 본 사상가들은 희망을 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박차를 가하면 모든 인류가 평등한 사회가 올지도 모른다! 4백년 전 토마스 무어가 예견했던 '유토피아'를 근대에는 드디어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지배자 계급을 떨게 만들자. 노동자들은 아무것도 잃을것이 없으니 다만 손의 족쇄를 끊어낼 뿐이다. 우리 앞에 승리할 세상이 놓여있다.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이여, 결집하라!"


칼 마르크스는 이렇게 뜨겁게 외치며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뛰어놀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꿈인가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이 꿈도 깨어지게 됩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받아들였던 소련과 중국, 북한 같은 나라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가장 불평등한 정치제도인 '독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와 가까운 북한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슬프게도 이 실패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상가들의 꿈도 마찬가지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던 것입니다.


<모나리자와 도형>

모더니즘 회화

이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책 '미술사 도슨트:모더니즘 회화'에서는 근대의 화가들을 다루었습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주의부터 시작된 근대의 예술가들은 회화를 완성시키는 꿈을 꾸었습니다. 물질을 밝혀내고자 했던 과학자들처럼, 화가들도 그림을 계속 발전시키다 보면 언젠가는 '궁극의 회화'를 창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미술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 이 시기는 고흐, 피카소, 잭슨 폴록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을 탄생시키며 계속 발전해 나갔습니다. 지금도 서점에 가면, 가까이는 유튜브에 미술을 소개하는 영상을 찾다 보면 가장 많이 다루는 미술들이 바로 이 모더니즘 회화의 그림들입니다. 미술이 가장 치열하게 발전했던 만큼 이야깃거리도 풍부한 시기였기 때문이죠. 그렇게 치열하게 연구하던 예술가들은 마지막에 정말 가장 완벽한 '궁극의 그림'을 발견했을까요? 그 그림은 어떤 그림이었을까요? 

예술가들은 우선 그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세상에는 수천 수만장의 그림들이 존재하는데 이 그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그저 무언가를 똑같이 따라그리는 것이 그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는 정답이라고까지는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세모나 동그라미 도형같이 무언가를 따라 그리지 않은 그림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따라 그리는 것은 그림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 그림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의 진짜 본질은 무엇일까요? 

예술가들은 마지막에 그림이란 궁극적으로 '평면을 다루는 예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그림들을 모두 살펴봤더니 하나같이 '평면'에다 무언가를 그린다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입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든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든 고흐의<별이 빛나는 밤>이든 어떤 그림이든 아니면 삼각형 그림이든, 예외없이 모든 그림은 '평면에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였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봐도 예외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가장 '보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드디어 정답을 발견했습니다. 그림의 본질은 '평면적 예술'이구나!


<잭슨 폴록 ‘Autumn Rhythm, No. 30’ 1950>

그렇다면 가장 완벽하게 평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그림이라는 논리도 성립합니다. '궁극의 그림'을 그릴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우선 예술가들은 옛날처럼 사람이든 꽃이든 어떤 형태를 그리는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어떤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은 평면을 입체처럼 보이도록 속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까지의 그림은 보기에는 좋았지만 '궁극의 그림, 즉 '평면적 그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평면적 그림은 어떻게 그려야 할까요? 많은 예술가들은 입체가 존재하지 않는 평면적인 그림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궁극의 그림'을 대표하는 그림이 바로 잭슨폴록의 그림입니다. 잭슨 폴록의 그림은 그저 혼란스러운 낙서처럼 보이지만 아무런 '입체'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평면'에 가까웠습니다. 사기처럼 보이기는 해도 예술가들은 진심으로 가득했습니다. '궁극의 그림', 즉 가장 평명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잭슨 폴록을 중심으로한 예술가들은 곧 예술가들의 꿈을 곧 완성될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꿈을 이룰 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됩니다. 잭슨 폴록의 그림에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볼까요. 아무리 잭슨폴록의 그림이 평면적이라고 해도 물감들을 자꾸 뿌리다 보면 먼저 뿌린 물감과 나중에 뿌린 물감의 높낮이가 생기게 됩니다. 높낮이는 깊이, 즉 '입체'를 암시합니다. 잭슨폴록의 그림이 평면에 가까이 가기는 했지만 완벽한 평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잭슨폴록보다 더 단순한 그림, 예컨데 흰색 물감을 완전히 평평하고 촘촘하게 칠하면 평면이 완성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그런 그림들이 등장했지만 마찬가지로 완벽한 '평면'은 될 수 없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물감 분자들 사이에도 높낮이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들은 눈앞의 풍선을 놓친 아이처럼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궁극의 그림', 회화를 완성하는 꿈은 이룰 수 없었습니다. 세계정복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은 히틀러처럼, 인간은 절대로 물질을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은 과학자들 처럼, 유토피아는 결코 이룰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상가들처럼, 예술가들도 회화를 완성 할 수 없다는 것을 종말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마치 모두 약속이나 한듯이, 모더니즘의 세계는 20세기 중반에 거의 동시에 모두 종말을 맞이합니다. 누가 일부러 그렇게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 것 같은데, 마치 세계를 움직이는 어느 거인이 손을 한번 크게 휘젓기라도한 것처럼, 모더니즘의 시대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함께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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