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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흥디자인 Nov 30. 2022

황금초밥


별다른 계획이 없는 일요일, TV나 보며 뒹굴뒹굴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부서에 있는 막내 사원이 결혼을 한다나. 지난 몇 개월 동안 그 사원과 말을 건네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지만, 회사 동료의 결혼식이라고 하니 안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나와 말을 별로 하지 않았을 뿐 이 사원은 부서 내에 알아주는 인싸인 모양이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동료들은 이 결혼식에 꼭 가야 한다고 부추겼다. 



점심 시간 언저리에 시작되는 결혼식이니 후딱 해야 할 일을 해치우고 낮부터 맥주 한 잔을 하자는데, 안 갈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낮맥은 못 참지 않은가. 게다가 결혼식장이 집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귀찮은 건 한 순간이지만 즐거움은 몇 시간 갈 것이다. 대충 회사를 갈 때 입는 양복을 차려입고 가면 될 것이다. 축의금은 조금 아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 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갔다.



도심에 있는 예식장은 어느 정도 고급스러움을 주려 노력한 모습이었다. 하얀 대리석 바닥에 요상하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는 유럽 스타일의 장식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벽 위로 샹들리에가 번쩍였다. 화려하고 눈이 부셔 제법 결혼식장다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붐볐다가 사라지는, 어색한 분위기와 환대가 오가는 이상한 공간. 하지만 누구나 주인공이든 아니면 배경 인물이 되던 간에 한 번은 겪었을 그런 공간. 결혼하는 당사자에게는 이 공간이 특별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정작 그 이외의 사람들은 사소한 것 - 밥이 맛있나 없나, 주차공간은 제대로 되어 있는가, 또는 식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붐비는가 - 을 따질 수 밖에 없는 그런 시시한 공간이니 말이다.



화려하고 실속 없이 번쩍이는 결혼식장 입구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막내 사원과 그 사원의 아내가 될 여성분이 곱게 차려입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옆으로 막내 사원이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화장한 모습과 함께 멋진 양복을 입고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결혼식에서 신부만 때 빼고 광내는 게 아니라 신랑도 그에 못지 않는 꾸밈을 받는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 자식도 꾸미면 꽤 괜찮군, 이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웃음과 칭찬으로 인사치레를 하고, 축의금을 낸 다음 재빨리 우리의 메인 이벤트인 '밥'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무슨 민족인가. 밥에 진심인 민족이 아닌가. 그러니 밥은 먼저 먹고 축하해 주마, 밥이 맛있으면 이 결혼식은 성공적일 것이고 그 반대라면 두고두고 부서 사람들에게 말이 나올 결혼식이 되겠지. 이런 생각으로 식당으로 들어섰다.



식장 만큼이나 식당 또한 요상한 유럽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뷔페식으로 꾸며진 것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실속 없어 보이는 인테리어와 달리 이 뷔페는 무척이나 실속 있다. 초밥도 생선 살이 두툼하고 갈비찜에도 고기가 두툼하다. 이 자식, 자신만 꾸민 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회사 생활 생각해서 음식도 푸짐하게 잘 차려냈고만. 아까 인사나 제대로 해줄 걸이라고 생각하며 접시 위로 하나둘씩 음식을 올렸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조금씩 좋아졌다.



접시에 한가득 푸짐히 음식을 담고 테이블을 찾으니... 아뿔싸. 아직 친한 동료들이 오지 않았다. 빠르게 식을 보고 밖에서 맥주를 마실 생각에 동료들에게 전화도 안 돌려보고 바로 식당으로 직행한 것이 문제였다. 테이블엔 나보다 더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으신 분들 밖에 없었다. 하... 그렇다고 저 차장님 부장님과 밥을 먹긴 싫다. 금 같은 일요일에 시간 내서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온 것도 억울한데 밥도 상사와 먹을 순 없다. 특히 이 맛있는 음식을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상태로 밀어 넣긴 싫단 말이다. 이미 저들은 술이 한 잔 들어간 거 같은데, 그러면 회식이나 다를 바가 없다. 저 차장님 부장님이 안 보이는 자리로 빠르게 이동해야 한다. 



재빠르게 회사 사람들을 피해 구석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친한 동료가 어디냐고 묻는 카톡이 도착했다. 어서 빨리 식당으로 오쇼, 라고 보내고 내가 차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한참 음식을 음미하고 있는 중간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 내용이 들려왔다. 아마도 나는 결혼식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사이에 낀 듯했다. 다들 식장에 걸맞은 양복 같은 유니폼을 입었고, 그래서 나도 직원처럼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쩐지 구석 자리로 가는데 뭐라 잡는 직원이 없더라... 식이 시작되기 한참 이르게 식당에 들어선 것도 원인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먹었다.



"언니, 우리는 다음 타임 준비해야지? 그럼 빨리 식사하고 들어가야겠다."



"어, 맞아. 근데 다들 너무 많이는 먹지 마. 일하려면 조금 배가 비어있어야 나중에 덜 힘들어."



"아니 근데.... 이 결혼식 세팅이 잘못된 거 아니야? 내가 알기로는 식대가 5만 원짜리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좋은 걸로 깔아놨대?"



"그러니까 지금 주방에서 난리 났잖아. 음식 빨리 빼야 한다고. 아, 잠시만."



언니라고 불리는 직원이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라고 말하자마자 상대편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 얼핏 들렸다. 언니 직원의 쩔쩔매는 모습에 주변 직원들이 안절부절못했다. 모두들 울상이다. 언니 직원은 빠르게 전화를 끊고 주변 직원들을 일어나게 했다. 아무래도 잘못 세팅된 뷔페를 빠르게 새로 갈아엎어야 해서 다음 타임 직원들도 모두 불러 모은 모양이었다. 밥을 먹던 직원들은 빠르게 주방으로 빨려들어갔다. 어딜 가나 질량보존의 법칙으로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수습하는 사람들만 죽어나는 모양이었다. 하, 밥 맛있어서 더 뜨려고 했는데, 아까 초밥 만들던 셰프님이 조금 있다가 황금 초밥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거라도 빨리 건져야겠다, 싶어서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서 뷔페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던 중에 동료를 만났다. 형! 벌써부터 밥을 먹다니, 너무 꼰대 아냐? 라고 웃는 놈의 목소리가 제법 쾌활하다. 뭣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그렇게 꼰대라서 나는 니 놈이 못 먹은 밥을 착실히 맛있게 먹었다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밥도 많이 먹는다고! 라고 외치며 빠르게 뷔페를 뜨러 갔다. 아직 그 직원들이 이 잘못된 멋진 음식들을 치워버리기 전에, 빨리 우리는 밥을 먹어야 한다. 



저 멀리, 빛나는 초밥이 보였다. 영롱한 금빛의 초밥은 막 만들어져, 집어가려는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어리둥절해 하는 동료를 채근해 각각 다섯 개씩 초밥을 챙겼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얹어진 탱글탱글한 생선 살에 무려 금빛 종이가 수북하게 얹어져 있다. 먹기만 해도 절로 부자가 되는 느낌이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초밥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 황홀한 초밥을 입에 넣는 순간....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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