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Dec 15. 2023

무도라곤 무한도전밖에 몰랐지만

호구를 장만한 자의 호구일지

369369 하나 둘 짝

직장인들이 우스갯소리로 내뱉는 369 법칙이 검도관에도 적용되는 걸까. 검도관을 다니는 중에 어쩌다 보니 3개월에 한 번 정도 위기가 찾아오는 듯하다. 회피 성향을 안고 살아가는 나는 그럴 때마다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된다. 30대 중반에 이러지 말아야지, 책임져야지, 같은 생각을 올 한 해 참 여러 번 했다. 무도라곤 ‘무한~도전’밖에 모르고 살았으면서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검도관에 입관했다가,(까지 쓰다가 멈춰서 지금 다시 이으려니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나기도 했다.

369 법칙의 9는 빗겨가길 바라면서 호구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해야겠다. 검도장에 100번째 방문한 날=100번째 수련 날, 내 호구가 나왔다. 대련을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지만 역시 뭐든 장비 ''부터 살려야 하나 보다. 개인 호구가 생기니 왠지 모를 애정이 좀더 샘솟는 것 같다. 앞으로 검도 수련에 얼마나 더 매진할 진 모르겠으나, 기념품 같은 개념으로 호구를 샀다.


나를 찾아가기

이전 글에 이어 수련 100회를 지난 지금, 대련이나 기합 등 눈앞에 놓인 ‘산’을 넘었느냐 하면 여전하다 할 수 있다. 기합 크게 내지르기는 여전히 쑥스럽고, 대련 연습도 여전히 망설여진다. 상대의 시간을 쓰는 만큼, 내 실력에 대한 자신이 없으니 상대가 지루해할까 눈치보게 된다. 같은 이유로 초반엔 무작정 머리 치기를 계속해서 시도하기도 했다. 그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조언을 받기도 했다. 성급히 달려들지 말고, 본인 페이스를 유지하라는 조언이었을 것이다.
아주 약간의 틈만 있어도 쉬어가는 나와는 달리, 자율 대련 연습에 성실히, 열정적으로 임하는 또 다른 초보자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련을 시작하며 약간의 슬럼프를 겪었던 동기는 얼마 전부터 “나한테 몰입하니까 대련이 재미있어”라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상대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 어제도 나보다는 상대의 움직임이나 감정 상태를 집중한 채 대련을 마쳤을 때였다. 상대로부터 “어느 순간 내 앞에 훅 다가와 있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외로 내가 잘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하핫.

그러고선 본인의 약점은 이것이라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전 대련에서는 내가 친 동작을 복기하며 대련 과정에서 하나씩 숙지해 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상대다. 다른 사람들이 대련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씩 배우고 있다.
그러니까 못하는 게 당연한 초보자로서 상대방이 아니라 내 움직임에 몰입해서 대련에 집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부턴 더 성실히(?) 임해봐야지.

관장님이 종종 성인반 관원들에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찾으러 오신 분들"이라는 표현을 하곤 하는데, 그간 잘 와 닿지 않았는데 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

호구일지가 호구 없는 호구일지에서 멈추지 않고

호구를 구매한 자의 호구일지로 한발짝 나아가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호구일지 끝.

매거진의 이전글 검도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