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없이 상대를 정하고, 원하는 시간만큼 대련하는 자유 수련 때는 상대를 적극 찾아 나서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가만히 있다 보면 정말 가마니가 된 양 수련 시간이 종료되기도 한다. 지난 번 수업 때 한 관원과 나눈 대화다.
"운동 안 해도 괜찮아요?"
"해야 하는데 말을 못 걸겠어요."
왠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 이후 "저기 가서 말 걸어라", "저기 서 있어라" 극성을 부렸다. 막상 나도 잘 하지 못하는 일이면서.
최근 씨름 선수가 주인공인 드라마 <모래에도 꽃이 핀다>를 보기 시작했다. 성장 서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가 없는 장르다. 유년 시절 신동 소리를 들었던 주인공 김백두는 서른이 넘은 지금, 한물 간 유망주가 됐다. 그런 그를 쭉 응원해온 한 소꿉친구는 “그냥 김백두처럼 니 씨름하라고” 소리친다.
몇 년 전에는 배드민턴 청소년 선수들의 우정과 사랑, 성장을 다룬 드라마 <라켓소년단>에 푹 빠져 지냈다. 10번 넘게 돌려봤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이다. 본인 역할로 특별 출연한 배드민턴 선수 이용대는 자신의 플레이를 흉내내는 한 선수에게 "근데 말이야, 크로스 헤어핀은 누구 거냐? 그거 해, 니꺼. 그거 하난 봐줄 만하더라"라고 말한다.
이런저런 고비(?)를 넘기면서 검도를 수련한지 8개월쯤 됐다. 호구를 입기 시작한 후론 계속 할지 말지 고민의 연속이었는데, '선수 할 것도 아닌데 못한다고 그만둘 이유는 없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어떻게 보면 <라켓소년단> 귀요미들과 <모래에도 꽃이 핀다> 김백두처럼 내 것을 만들어 나가는 단계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실 여기까지는 수련 일지 분량을 채우기 위해 매우매우 노력해서 쓴 글이고, 진짜 쓰고 싶었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은 학생부 수업에서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귀여운 친구를 만났다. 도복을 휘뚜루마뚜루 서툴게 입은 모습을 보고 관장님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자, “다른 거 잘하면 되죠”하고 당차게 대답하는 모습에 반했다. 학생부 수업이었지만 학생은 그 아이 혼자, 성인이 더 많았음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것이 ‘참 담대한 마음을 지닌 친구구나’ 싶었다. 매번 쪼그라드느라 바쁜 나로서는 참으로 인상 깊은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