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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Mar 18. 2019

잔나비 2집 [전설] 리뷰

패기로운 앨범 이름의 값 그대로


잔나비 2집 [전설]

2019


★★★★


 전작 [MONKEY HOTEL] 리뷰에서도 이야기했듯, 초기의 잔나비는 지금처럼 독보적인 밴드가 아니었다.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추구하기보단, 우선 대중에게 인지도를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이 좋아하기보단 먹히는 사운드를 만드는 것을 우선해 왔다. 그들도 [MONKEY HOTEL] 이전의 작업물들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해 쓴 곡들이 몇 개 있었음을 인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곡이 '봉춤을 추네'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팝 밴드 Maroon 5를 대놓고 참조한 곡이었다.


 여러 OST를 제작하며 점점 자신들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시작한 그들은, 마침내 오랜 탐구와 성찰의 결과물인 [MONKEY HOTEL]로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다. <슈퍼스타K>에 나와 이승철에게 독설 듣고 탈락당하던 때와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괄목상대였다. 이후 발매한 싱글 'She'와 'Good Boy Twist', '처음 만날때처럼'은 점점 견고해지는 그들의 사운드를 확인할 수 있는 멋진 결과물들이었다. Maroon 5 워너비가 아닌, 올드 팝 사운드라는 토대에 자신들만의 유치한 듯 익살스러운 개성을 뒤섞은, 잔나비만의 음악 세계는 차근차근 넓어졌고, 진화했다.


 그런 의미에서 [전설]은 무섭게 성장한 잔나비의 음악 세계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일단 전체적으로 익살스럽거나, 화끈한 로큰롤의 느낌은 많이 축소되었다. 'The Secret of Hard Rock'이나 'JUNGLE'같은 느낌을 기대한 팬들은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대신 잔나비가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할 수 있었던 요인인,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가 극대화되었다. 그래도 '전설', '나쁜 꿈'같은 곡들이 가진 사운드를 들어보면, 특유의 유치하지만 재미난 감각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MONKEY HOTEL]에서 그나마 지적받을만한 점이었던, 다소 과하고 유난스럽다는 느낌을 줄인 덕분에, 청자의 부담이 훨씬 덜하다. 편안한 사운드 속에서 충분히 재미를 찾을 수 있다.


 다소 직관적이고 단순한 구성으로 어필한 전작에 비하면 훨씬 세밀한 터치가 들어갔다는 느낌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레트로한 질감이 강화되었는데, 스트링 사운드나 예쁜 화음으로 수려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투게더!' 같은 곡들이 있는가 하면, 재지하고 블루지한 감성으로 향수 냄새 아련하게 가득한 'DOLMARO' 같은 곡들도 있고, 그들의 최대 히트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의 강점을 그대로 흡수하여, 비슷하지만 여전히 강력한 매력을 가진 잔나비식 발라드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같은 곡도 있는가 하면, 강렬한 기타 리프와 웅장함이 마치 The Stone Roses를 연상케 하는 '나쁜 꿈' 같은 곡도 있다.


 전체적으로 올드 팝의 향기가 강하지만, 각 트랙의 테이스트는 모두 다르다. 단 한 곡도 날림으로 쓰지 않고, 트랙마다 확고한 개성을 살리려고 한 노력의 흔적이 드러난다. 이러한 레트로적 개성의 앨범을 마무리하는 '꿈과 책과 힘과 벽'은 예쁜 키보드 사운드 위에 얹어진 아이들의 화음이 인상적인데, 이는 아련한 감성을 자아내는 수법 중에서도 가장 뻔하지만, 워낙 앨범의 유기성이 쫀쫀한 덕분에, 그 뻔한 방법으로 쉽게 청자의 마음을 끌어낸다. 마지막 트랙까지 달리는 동안,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압박감조차 보이지 않는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음악을 통해 청자를 아련하고 촉촉한 감정으로 부드럽게 인도한다. 킬링 트랙이 없는 것 같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준수한 퀄리티와 유기성, 흡입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MONKEY HOTEL]이 독보적인 사운드 구축의 시작점이었다면, [전설]은 드디어 완성된 잔나비 사운드에 한껏 취할 수 있는 앨범이다. 앨범 이름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잔나비의 음악은 '전설'이라는 단어처럼 은근히 유치하지만 대놓고 멋지다. 게다가, 그 유치함을 너무 과하지 않게 조절하는 능력도 생겨난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대중적으로 쉽게 어필할 만한 감성과 밴드씬에서도 독보적으로 다가오는 사운드가 합쳐지면 어떤 록스타가 탄생하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정말, '전설'의 시작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재밌고 아름다운 원숭이로 밴드씬에 남아 멋진 음악을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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