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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번리 Jul 21. 2021

인 더 하이츠: 존재하기 위한 외침

믿고 보는 린 마누엘 미란다


우리는 언제나 여기 있어 


사람들은 미국인을 생각하면 대부분 백인들을 떠올릴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 매체 대부분이 미국인이라고 하면, 백인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동양인 외에도 미국에는 다른 인종이 존재한다. 남미 대륙에서 건너온 라티노들이다. 미국에 살지만, 스패니쉬가 모국어인 그들이 한국 정서에는 조금 낯설 수도 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뮤지컬 <해밀턴>을 접하게 되는 순간의 나도 그랬다. 분명히 미국의 10달러의 주인공인 알렉산더 해밀턴과 그 주변 인물들은 백인일 터인데, 조금 낯선 얼굴들이 스테이지에 등장하는 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물론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랩을 도입하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린 마누엘 미란다와 그를 중심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은 백인 중심의 브로드웨이에 도전장을 던지며 미국에 처음 건너온 사람들도 결국에 이민자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남미에 사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힘겹게 사는 지금, 그들의 이야기는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 스토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화려한 이면 속에는 그런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흘려져 있는 데도 말이다. 미국의 인종 차별 문제가 더 불거지는 지금, 린 마누엘 미란다가 <해밀턴>을 만들기 전에 만들었던 뮤지컬 <인 더 하이츠>가 영화화된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 뮤지컬은 뉴욕에 살고 있는 라티노들이 "우리는 언제나 여기 있어!"라는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엘 수에니토'를 꿈꾸는 사람들 


<인 더 하이츠>는 뉴욕에서 라티노들이 살고 있는 워싱턴 하이츠에서 대대적인 정전이 일어나기 전 후의 며칠 간의 이야기이다.  워싱턴 하이츠는 원래부터 라티노들이 거주하던 동네였으나, 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가족 같이 살던 이웃사촌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 우스나비 또한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운영했던 작은 펍을 다시 운영하려는 꿈을 꾼다. 우스나비와 거의 남매처럼 지내는 니나도 워싱턴 하이츠에서 이례적으로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속할 곳이 없다고 느끼고, 자신의 학비를 아버지가 대는 것을 어려워하자 학교를 자퇴하려고 한다. 우스나비가 짝사랑하는 바네사는 미용실에서 일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꿈을 품고 다운 타운으로 이사 가려고 한다. 


이렇게 워싱턴 하이츠의 인물들은 어찌 보면 그렇게 거창한 꿈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꿈이다. 이런 작은 꿈을 그들은 '엘 수에니토'라고 부른다. 영화에서 우스나비에서 복권을 사간 사람이 96,000달러의 당첨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복권에 당첨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저마다의 애환이 담겨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과 막막한 삶 속에서도 워싱턴 하이츠의 주민들은 그 작은 꿈을 붙들고 살기에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뮤지컬 영화지만 <인 더 하이츠>는 이렇게 라티노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기에 현재 미국에서 출발선부터 다른 그들에게 똑같은 경쟁을 강요하는 것의 불평등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이 희망의 카니발


비싼 임대료 때문에 하나둘 떠나가는 이웃과 갑자기 뉴욕을 강타한 정전, 그리고 정신적 지주인 클라우디아 할머니의 죽음까지. 이 모든 일련의 사건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워싱턴 하이츠의 주민들은 무기력함을 느낀다. 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항해보려고 해도 그들은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별다른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는 주민들에게 동네 미용실의 대니엘라는 그게 클라우디아 할머니가 바라는 것이었냐고 외친다. 클라우디아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작은 것에도 감사하면서 웃을 수 있었던 유머 덕분이었다.  푸에르토리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출신은 전부 다 다른 그들이었지만, 그들의 정신에는 아무리 더워도 지쳐도 다시 일어나서 춤을 출 수 있는 불굴의 정신력이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는 힘이 없지만, 다 같이 모였을 때는 힘이 된다. 우스나비의 조카인 소니가 불법 이민자의 아들이기에 미국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니나는 스탠퍼드로 다시 돌아가 고통 받는 자신의 이웃을 위해 더 공부하기로 한다. 우스나비 또한 클라우디아 할머니가 남겨준 복권 당첨금을 소니가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도록 쥐어준다. 그들은 그들의 미래 세대에게 더 나은 현실을 물려주기 위해 연대한다. 지금 현실이 막막하더라도 자라나는 그들의 아이들이 그들의 희망, 엘 수에니토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춤을 출 수 있다. 



Immigrants, we get the job done!


나는 <인 더 하이츠>를 보는 내내 뮤지컬 <해밀턴>의 "Immigrants, we get the job done!"이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Yorktown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라파예트와 해밀턴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미소를 주고 받으면서 하는 대사이다. 그 한마디에는 미국에서 힘겹게 살아온 이민자들 모두에게 보내는 찬사일 것이다. 미디어 매체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주류들의 이야기만 전달하지만, <인 더 하이츠>같은 영화는 이민자들의 수고와 고난, 정체성의 이야기를 세상에 외치는 통로이다. 그들은 존재하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있다! 뉴욕 워싱턴 하이츠에 살고 있다! 라고 외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외침이 한국에 사는 나에게 전달이 되었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내 안에서 존재하기 시작했다. 비록 한 걸음을 뗀 시작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충분히 "we get the job done"이라고 외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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