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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May 09. 2020

줌파 라히리 - 축복받은 집

잔잔하게 밀려오는 그들의 이야기

한숨에 읽게되는 몰입도 높은 책이 있는가하면, 한숨 쉬어가며 천천히 읽게되는 하는 책이 있다. 


 줌파라하리의 단편선은 후자에 가깝다. 각 단편속 인물의 이야기가 긴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마치 잠시나마 그들의 삶에 잠시 들어갔다 온것처럼 느껴진다. 각 작품은 늘 잔잔한 일상에서 시작하지만, 말미엔 독자들을 화자와 같은 절망, 고독, 희망 등의 감정으로 이끈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인도, 주로 콜카타 출신이며 고독감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라는것 이외에는 그다지 공통점이 없는 인물들이나, 책을 마치고나면 그들이 마치 한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작가가 가족이나 지인, 지인의 지인 등 주변인물들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차용이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떠나왔지만 파편적으로 남아있는 것들.

 줌파 라히리는 인도 서벵골주 이민가족 출신으로, 마찬가지로 다문화를 경험한 오바마가 사랑한 소설가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축복받은 집"의 기저엔 이민자로서 갖게되는 복합적 정체성이 깔려있다. 소설을 통해 그녀는 지나온 과거로 남겨졌지만 여전히 그들의 일부인 것들에 대해 다룬다. 떠나왔지만 여전히 삶의 한켠으로 남아있는 것들. 이를테면 서벵골식 음식에 대한 자세한 묘사, 중매결혼(또는 그를 연상시키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결혼)이 가져오는 절망이나 불안, 소설의 주요 장치가 되는 정전, 도둑질, 파티 등의 소재들은 독자로 하여금 충분히 인도를 연상시킨다. 과거 머나먼 고향땅에서 가져온 그것들은 각자의 현재상황과 얽혀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소설속 자주 등장하는 인도 콜카타의 풍경. (다소 충격적이였던 극로컬적인 사진은 최대한 배제하였다.)


저마다의 삶. 주목받지 못했던 이야기. 

또 한가지는 주류 사회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본인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삶의 터전을 옮기고 그안에서 작은 성취를 이끌어 낸다는 것은 일생으로 볼때 대단한 역사이지만, 주류에선 그저 "그들" 또는 "그 부류"로 되어버리곤 한다. 그녀는 저마다 다른 모습의 절망과 슬픔, 행복과 희열, 아픔과 치유를 그들의 일상적 삶을 통해 이끌어낸다.


나는 이 신세계에서 거의 삼십 년을 지내왔다. 내가 이룬 것이 무척이나 평범하다는 것을 안다. 성공과 출세를 위해 고향에서 멀리 떠난 사람이 나 혼자뿐인 것도 아니고 내가 최초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지나온 모든 행로와 내가 먹은 모든 음식과 내가 만난 그 모든 사람들과 내가 잠을 잔 그 모든 방들을 떠올리며 새삼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 때가 있다. 그 모든게 평범해 보이지만, 상상 이상의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줌파 라히리 "축복받은 집" -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 中)


 공식 인구만 해도 14억에 달하는 인도. 어딜가든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이기에 나도 모르게 그들은 각 개인이기보단 어떠한 한 무리처럼 느껴지곤 했다. 책을 마치고 그간 다녀온 인도 여행 사진첩을 다시 열어보니 공간마다 가득 차있던 각기 다른 사정의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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