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교육 마흔한번째 이야기
몇 주 전부터 일부러 아이 하교 길에 집까지 걸어오고 있다. 서울에서는 걸어서 등하교를 했었는데 학교가 집에서 가깝지는 않아 1km 정도, 20분을 걸어 학교에 갔었다. 농촌유학을 오면서 오히려 걷거나 운동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2km 정도 되는 거리지만 얼마 전부터 올 때는 걸어오거나 자전거를 탄다.
어제 바람이 좀 불길래 고민하다가 아이와 걸어오긴 했는데 이제 한파가 시작되면 걸어서 집에 오기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와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 길, 아이에게 일주일에 체육관이나 운동장에서 뛰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었다.
"금요일 방과 후 뉴스포츠 시간 말고는 거의 앉아 있어요"
그나마 따뜻할 때는 수업 시간에 주변 산책도 가고 운동장에서 놀기도 하고 했다는데 요즘은 대부분 교실에 있다는 거다.
"급식 먹고 나서 체육관에 인라인 타러 갈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클레이 하거나 미술만 주로 해요"
"체육 시간이 없는 거네...?"
"네! 그런데 형들이랑 누나들은 체육 교과서가 있대요. 그래서 체육관에서 체육 몇 시간씩 해요"
"그래?"
몰랐다. 초등 저학년은 체육 교과 자체가 없다는 걸. 유치원을 다니는 7살 둘째는 여러 가지 신체활동을 많이 한다. 첫째도 서울에 있을 때는 등하교 시간 걷고, 집에 일찍 하교하면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았었다. 그래서 신체활동의 공백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농촌학교에서 차로 등하교하고 돌봄 후 집에 늦게 들어와 뛰어놀 시간이 줄어들면서 과연 학교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신체활동을 하고 있는가 뒤늦게 관심이 생겼다.
집에 와서 관련된 기사와 자료를 찾아보았다.
초등 저학년 ‘체육 교과’ 없는 나라는 한국뿐…“전문성 떨어져”
일본·핀란드 등 선진국 1∼2학년 체육 독립 초등 담임별 체육활동 편차·수업 부담 커져 <한겨레 2022년 9월 8일 자 기사>
정말이었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한국의 초등학교 저학년(1∼2학년) 수업 시간표에는 ‘체육’이 없다. 통합교과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체육·음악·미술 융합 수업이 있을 뿐 전문적으로 기초 운동 역량을 익히는 시간은 없다. 벌써 40년이나 됐다. 전문가들은 초등 저학년에 독립된 체육 교과를 편성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말한다. <기사 중에서>"
물론 체육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다. '통합교과'로 진행되며 약간의 신체활동은 있지만 오로지 체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수업이 없다는 건 충격적이었다.
"엄마, 소근육만 발달할 것 같아요"
어제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집으로 오는 길, 아이가 한 말은 어쩌면 진짜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현실이다. 신체활동이라고는 하지만 음악, 미술 융합 수업이다 보니 몸 전체를 사용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건 힘든 현실. 결국 체육도 가정의 몫이고 사교육의 몫인 건가.
초등 저학년은 한창 성장하는 시기이고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는 시기이다. 마음껏 뛰고 놀아야 하지만 이런저런 여건(놀이터에 아이들이 없고,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며 돌봄 공백이 생기고 학원에 가야 하고)으로 하교 후 마음껏 뛰어놀기도 어려운데 학교에서까지 아이들이 한 시간이라도 제대로 뛰고 땀을 흘리고 신체를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분출하지 못한 에너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2022년 교육부 예산은 89조 6251억 원, 유아 및 초·중등교육에 70조 73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학교체육 활성화에 대한 예산은 이중 128억 9150만 원으로 교육부 유아, 초·중등 예산의 0.018%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했다. "유아 및 초·중등교육 예산의 단 1%만 배정해도 7073억 원을 학교체육 활성화를 위해 쓸 수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2022년 대한체육회 학교 진흥포럼에서 제기된 의견>
0.1퍼센트도 아니고 0.018퍼센트의 예산이 학교체육 활성화에 배정됐다는 기사를 보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의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 있는 교과 과정에 대한 고민이 가장 우선일 텐데.
당장 정책적인 변화를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기사처럼 학교와 교사들이 같이 고민하다 보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까.
인근 시흥배곧초등학교 학생들은 몇 년째 매일 아침 등교에 앞서 단체 달리기를 한다. 학교 앞 왕복 1㎞ 도로를 20분 동안 달리는 것이다. 달리는 학생들은 저학년 중심으로 400여 명이다. 이들이 정문 앞에 쌓아놓은 수북한 책가방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경기 시흥배곧누리초등학교 송성근 교사는 ‘규정에 없는’ 1·2학년 체육수업을 ‘스스로’ 창 착해 진행하고 있다. 날씨, 장소에 구애 없이 간단한 규칙, 손쉬운 동작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놀이 중심 체육수업이다. 손과 발로만이 아니라 온몸을 이용해서 하는 팔 벌려 가위바위보가 좋은 예다. < [기획-잘 놀아야 잘 큰다④ 시리즈 끝] 거꾸로 가는 초등 저학년 체육수업, 대안은 없을까 중에서>
“체육시간을 돌려주세요”… 골골 아이들의 외침
‘있으나 마나’한 체육교육에 학생들 체력 날이 갈수록 추락 <주간 동아 2010년, 3월 23일>
10년 전 기사 제목을 보며 또다시 한숨. 다음 주 교장선생님과 학부모들 간담회가 있는데 그때라도 이곳 농촌학교의 장점(학생 수가 적고 체육관 시설이 뛰어나다)을 살려 아이들이 신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달라고 건의해야겠다. 비록 농촌유학은 끝나지만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농촌유학 올 아이들이 건강하고 튼튼한 체력을 기를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