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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Mar 03. 2019

월요일을 사랑하는 사람

남들과 다른 요일을 산다

지난 2년 간 나의 주말은 '토-일'이 아닌 '일-월'이었다.

화요일 아침 방송에서 일하다 보니 제작 일정상 토요일에 자막 작업을 하고, 피디들이 최종 편집을 하는 월요일에 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막 데이'인 토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빡센' 날이었다.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데도 그랬다.

가편집 영상이 업로드 되는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해야 했는데, 태생적으로 저녁형 인간인 나로선 그렇게 이른 시간에 눈을 뜨자마자 일을 시작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자막을 써서 넘겨야 선배 작가가 검토를 하고 피디들에게 넘겨줄 수 있는 상황이라, 내가 늦어지면 선배도, 피디들의 일도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꾸 마음이 급해져서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면 악착같이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르며 눈꼽을 뗐다. 쫓기듯 허둥지둥 자막 작업을 하다 보니 토요일이면 항상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씻지도 않은 꼬질꼬질한 얼굴로 집에 처박혀 일하기 일쑤였다. 잠시 요깃거리를 사러 집앞 편의점에 나갔다가 토요일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현타’를 느끼기도 했다.

남들에게는 가장 여유롭고 꿀 같은 토요일에 홀로 집에서 일하는 건 조금 외롭고 서글픈 일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만 빼고 모두가 주말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소외감마저 들었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어려웠고, 친구들과 일정을 맞춰 여행을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불금을 즐기는 것은 물론, 맥주 한 잔 하며 <프로듀스 101>을 맘 편히 못 보는 것도 한스러웠다.(마음 불편한 상태로 끝까지 다 보긴 했지만..)


그렇게 토요일 늦은 오후까지 자막을 다 마무리 짓고 나면, 남들보다 한발 늦은 나의 주말이 시작됐다. 하지만 토요일을 즐기기는커녕 피곤에 쩔어 그대로 침대에 뻗어버릴 때가 더 많았다. 가끔은 ‘청춘의 주말을 이렇게 흘려 보낼 수 없다’며 화장을 하고 홍대의 밤거리로 뛰쳐나가기도 했지만 입이 찢어지게 하품만 하다 돌아오곤 했다. 내게 토요일은 남들의 월요일만큼이나 피곤한 날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월요일이 되면 이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회사원들이 '월요병'을 앓으며 직장으로 간 월요일 아침. 나는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나만의 휴일을 즐겼다. 주말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핫 플레이스도 월요일 오후가 되면 거짓말처럼 한적해졌다. 인기 있는 전시나 미술관도 비교적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고, 좁은 익선동 골목에서 (주말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생샷을 찍는 것도 가능했다. 소문난 맛집도 웨이팅 없이 프리패스. 평일 낮에만 가능한 은행 업무도 맘 편히 볼 수 있었다.


불타는 금요일 밤과 토요일의 여유를 내준 대신 월요일의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나니, 회사원으로 일할 때 얻었던 월요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월요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더니. 그 말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얼마전 나는 새로운 프로그램에 취직을 했다. 매주 방송이 나가는 요일에 따라 제작 일정이 달라지는데, 이번에는 토요일 방송이어서 나의 휴일은 목요일과 토요일이 되었다.

구성안과 대본을 쓰는 월요일, 화요일, 그리고 자막 작업을 하는 금요일이 가장 '빡세’다. 녹화를 하는 수요일과 구성안 초안을 쓰는 일요일은 비교적 여유롭다. 프로그램을 또 옮기기 전까지는 매주 이런 흐름의 일주일을 살게 될 것이다. 아마 목요일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퐁당퐁당 징검다리 넘듯 쉬는 일정의 장점과 단점을 오롯이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구성안을 쓰는 일요일 저녁부터 새로운 한 주의 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월요병'이 아닌 '일요저녁병'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이미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이렇듯 나는 남들과 조금 다른 일주일을 산다.

그러다 보니 남들 다 놀 때 일하고, 남들 다 일할 때 놀 때도 많다. 남들 다 놀 때 일하는 건 생각보다 서럽고, 남들 다 일할 때 노는 건 생각보다 짜릿(?)하다. 혼자 놀아야 할 때가 많아서 놀아봤자 외롭고 심심할 때도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른 템포로 흐르는 일상. 일반적이지 않아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더 두드러지는 삶. 프리랜서는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는 말을 가장 잘 증명해 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생활의 ‘얻는 것’이 너무 좋아서, 잃는 것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아마 프리랜서인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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