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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Dec 03. 2019

내가 이직을 하게 된 이유

 6년 차 직장인의 이직 사유 

  난 20대 중반부터 일을 시작해 어느덧 6년 차 직장인이 됐다. 직장생홛동안 이직을 세 번이나 했다. 세 번째 이직을 하고 나서 친언니가 걱정스런 눈으로 내게 말했다. '넌 왜 진득하니 한 곳에서 일을 못하니?' 순간 멋쩍어서 대답 대신 웃으면서 상황을 넘겼다. 지금 회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나도 내 재직 기간에 대해 꽤 오랜 고민을 했다. 1년, 1년 9개월, 그리고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서의 1년 6개월. 한 회사에서 2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들었다. 끈기 없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받게 될까 두려웠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한 회사를 7년 째 다니고 있는 대학동기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난 이직을 할 것이다. 내 미래를 불안하게 뒤흔드는 회사라면 당장 박차고 나오는 것이 맞다고 확신한다. 


  # 이런 곳 가지 마세요. Hell이었던 첫 번 째 회사 

 

  대학교 3학년, 진로를 기자로 결정하고 부랴부랴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낙방을 경험하며 마음이 조급해질 때쯤 모 경제지에서 인턴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봤다. 6개월 간의 인턴기간이 있고, 이후 평가를 거쳐 수습기자로 전환시켜준다는, 취업준비생이었던 내겐 꽤나 희망적인 채용공고였다. 4학년 때 언론사에서 4개월 간 인턴기자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이 경험 덕분인지 다행히도 합격통보를 받았다.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불안하고 무료한 인턴기간이 이어졌다. 나는 이 기간동안 두 명의 동기들과 함께 뉴스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한 '이슈용' 기사를 작성했다. 하루 20~30개 정도의 연예 기사들을 영혼없이 쏟아내며 6개월을 버텼다. 오전 8시부터 6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10분도 휴식시간을 갖지 못했다. 인턴들을 관리하던 부장은 주기적으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수습 전환이 안될 것'이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고, 정규직이 너무도 간절했던 나와 동기들은 기계처럼 의미 없는 기사들을 인터넷뉴스팀이라는 바이라인으로 송고했다. 회사에서는 '기사 쓰는 연습'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거리를 댔지만 다른 연예 기사들을 짜집기해 만들어낸 글이었기에 훈련이랄 수 없었다. 주말에도 오전에는 집에서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주말 임금은 따로 없었다. 이건 명백한 고용노동법 위반이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경영지원팀에서 아연실색하며 당장 주말 근무를 그만 두게 했다. 지금이라면 미련 없이 곧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텐데, 그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처절하게 그 시간들을 버텨냈다. 

첫 회사는 나를 참 힘들게 했다. 

 

 인턴기간이 끝나고 난 수습기자가 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첫 회사에서 만 1년을 채운 뒤 완전히 업종을 바꿨다. 대학시절부터 오랜 기간 꿈꿔왔던 직업을 포기하기까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여전히 후회는 없다. 그 시간동안 난 내 자신을 잃어버렸었다. 오전 7시까지의 출근, 주말 근무는 당연했고 퇴근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던 선배의 호출은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했다. 어떤 선배는 화장실을 갈 때에도 메신저로 보고하라고 할 정도였다고 하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까. 술을 참 좋아했던 팀장 덕에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술자리가 이어지는 날이 많았다. 가장 심할 때에는 주 5일 동안 연달아 저녁 술자리가 이어지던 날도 있었으니, 위장이 남아날리 없었다. 


  내가 팀에 배정받은 뒤 팀장은 '난 여자 후배 싫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사람과 술을 참 좋아했던 그녀는 술을 잘 마시는 남자 후배가 좋다는 말을 숨기지 않았다. 난 오기가 생겨서 팀장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는 술을 한 잔도 빼지 않았다. 술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는 취기가 오른다 싶을 때 쯤이면 화장실에 가서 속에 있던 술과 안주들을 모두 게워냈다. 술이 너무 취해 어쩔 수 없이 술을 피할 때면 어김없이 '선배 비위 못 맞추는 후배'라는 뒷말이 따라왔다. 이후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더 이상 떠올리기 싫다. 그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어낸 지금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혹시 이처럼 불합리한 상황에서 버터여할까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당장 그 지옥에서 스스로를 구출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썩어가는 쓰레기통에 자신을 방치하지 말자. 내 진가를 알아주는 곳은 반드시 있다. 


  쓰다보니 전 회사 욕이 길었다. 그래도 이 기간동안 남은 것이 있다면 적어도 기자생활에 미련이 없고, 3명의 동기들과 몇몇 좋은 선배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 기간을 똑같이 견딘 후 참기자로 성장하고 있는 나의 동기들, 선배들을 늘 응원한다.  


내 자존감까지 갉아먹는 회사는 과감히 버리길.

 

 너무 안정적이어서 나를 불안하게 했던 두 번 째 회사 


  첫 번째 회사가 너무 힘들어서 조금은 편하게 일하고 싶었다. 하루에 반드시 취재 기사 1개를 써내야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나는 B2B 기업에 마케팅/홍보 담당자로 재취업했다. 두 번째 회사는 업계 1위로 서비스명만 말해도 아는 사람들이 많았고, 영업이익이 40%가 넘는 아주 안정적인 회사였다. 1년에 두 번은 한달 월급만큼의 성과급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임직원들의 평균 재직기간이 5년 이상이었다. 칼출근, 칼퇴근이 가능한 회사. 어쩌면 신의 직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안타깝게도 이 회사는 마케팅, 홍보 업무에 대한 니즈가 별로 없었다.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매출이 오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두 번째 회사에서 다양한 홍보 업무를 배우고 주체적으로 일을 실행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는 영업 지원 정도의 업무를 바랬던 것 같다. 나는 언론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팀장의 눈치를 봐야했고, 사수라 할 수 있는 선배도 없어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배우는데에 한계가 있었다. 회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부족하다고 느낀 다음부터 난 퇴근 후 학원에 다녔다. 그렇게 1년 9개월을 다니다 원하는 스타트업 회사의 기업홍보팀으로 이직 할 수 있었다. 몸은 편안했지만 마음은 매일 힘들었던 두 번째 회사. 첫 번 째 회사보다 오래 일했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안정적인 회사 대신, 힘들더라도 배울 것이 많은 회사를 갔더라면 지금 나는 더 성장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 바로 지금, 세 번 째 회사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는 내가 가고 싶었던 업계, 내가 하고 싶었던 업무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전 회사들에서 경험이 부족했다보니 지금의 회사에서 수습 3개월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아 버텼고 지금은 적응을 마치고 나름 즐거운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1년 반 동안의 시간동안 내가 생각해도 업무 스킬이 많이 늘었고 이제야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세 곳의 회사에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내가 어떤 회사를 원하는지 만큼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회사를 택하는 데 있어 첫 번째 조건은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일이 없고, 그래서 오는 여유로움은 내게 안정감 보다는 불안함, 막막함을 가져다 준다는 것. 3년 뒤, 5년 뒤에는 일을 참 잘 하는 사람, 자기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꼭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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