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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Nov 29. 2019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어른이 된다는 것

61세에 신춘문예 등단 시인이 된 그녀  

 지난해 말 엄마가 모 신문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작품 응모를 완료한 그날부터 손꼽아 기다렸을 그 전화. 2019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소식을 전해들을 당시 엄마의 두 손은 얼마나 떨렸을지. 신춘문예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지 3년 만에 엄마는 어엿한 시인이 됐다. 


 당선 소식을 전해들은 엄마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59년생 당선자는 흔치 않다고, 매년 같은 지역 사람을 뽑던 지방 신문사에서 서울 지역 출신을 뽑은 건 정말이지 이례적인 일이라고, 엄마는 몇 번이고 힘주어 말했다. 반복하는 말은 질색하는 나도 이때만큼은 잠자코, 몇 번이고 엄마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신춘문예 철이면 새벽까지 시를 습작하고, 낙방될 때마다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던 엄마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엄마의 당선소식을 떠올릴 때마다 코끝이 시려온다. 


 신춘문예는 국내 대표 문학 신인 등용문으로 손꼽힌다. 매년 각 일간신문사에서 권위 있는 심사의원들의 심사를 거쳐 가장 우수한 문학작품 한 편을 장르별로 선정해 발표한다. 엄마가 당선된 신문사에는 그 해 1,500편의 작품이 응모됐다고 한다. 그중 엄마의 작품이 당당히 1등으로 뽑힌 것이니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울 일이다. 




 # 미안해 엄마, 사실은... 


 엄마는 30대 초반 즈음 아이 둘 딸린 이혼녀가 됐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10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왔지만, 모든 싱글맘들이 그렇듯 엄마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자마자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엄마는 줄곧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24시간 가게를 운영한 적도 있었기에 말 그대로 밤낮 없이 일했다. 어렸을 적 내 기억 속에 엄마는 일을 하러 밖에 나가 있거나, 아주 가끔 쉬는 날이면 바닥에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누워있는 모습 뿐이었다. 


 외할머니 말에 따르면 엄마는 학창시절 학구열이 뛰어난 소녀였다. 녹록지 않은 살림 탓에 엄마의 고등학교 진학을 반대했던 할아버지는 엄마의 책가방을 찢어버리셨다. 하지만 엄마는 눈 깜짝 하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실로 꿰매준 책가방을 들고서 먼 등교길을 나서던 그 시절, 엄마의 꿈은 그 누구의 꿈보다 밝게 빛났을 거다. 학창시절부터 글과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엄마는 고등학교 시절 당시 꽤 유명한 화가에게서 문하생으로 들어오길 제안받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엄마의 꿈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혔다. 엄마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유명한 화가, 교수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아직까지 하신다. 


어린 시절 엄마도 이런 모습을 꿈꿨을지도.


 지난 날에 대한 후회를 늘 읊조리던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난 무슨 생각을 했던가.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모든 것들은 엄마의 핑계라고 생각했고, 조금 더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지 못한 엄마를 삐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게 알게 모르게 행동으로도 나타났었는지, 엄마는 나와의 말싸움 끝에 종종 '너는 엄마를 무시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를 가장 무시하고 상처줬던 건 엄마 자신이었을 수도 있다. 엄마는 종종 '너는 엄마처럼 살지마', '잘난 여자들은 이렇게 안할텐데', '엄마는 못났잖아' 라는 말을 익숙하게 흘리곤 했다. 


 아직 지혜로움을 쌓지 못한 나는 그럴 때마다 자학하는 엄마를 나무랐다. 엄마는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줬어야 했는데 말이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일을 하면서도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하고, 특수대학원에 가고, 미용자격증과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딴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주 1회 문학스터디 모임에 나가고 결국 신춘문예 시 부문까지 당선된 사람이 어디 흔한가.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사셨다. 

 


 신춘문예 당선 이후 엄마에겐 계속해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고 있다. 엄마는 신이 났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는 원고료에도 몇 번이고 정성스레 고쳐 쓴 시를 기꺼이 내놓으신다. 앞으로 더 열심히 작품을 발표해서 이름을 날려야 한다고, 올해는 더 큰 중앙지 신춘문예 당선을 목표로 해야겠다고 의지를 불태우는 지금의 엄마를 보면 내가 그동안 엄마를 한참 잘못 알았구나 반성이 될 정도다. 엄마는 지금 스스로에게 조금은 자랑스러운 어른이 된 것 같다.  


 # 나도 노력해볼께 엄마처럼. 


 서른 즈음의 나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특히 작년 하반기는 미숙한 나 자신을 한없이 원망하고 나무라면서 자존감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던 시기였다. 스스로를 하찮은 인간으로 몰아세우던 날 밤이면 어김없이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사회에서 늘 당당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셨다. 그래서 늘 '넌 엄마처럼 살지마' 끝에 '넌 엄마랑 달라'를 꼭 붙이셨다. 엄마의 바람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어른'이 된 엄마를 보며 나도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발버둥쳤다. 자기계발 서적을 몇 권이나 읽고,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업무 관련 스터디 양을 늘렸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했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할지 나름의 방식을 설정했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은 나를 인정하고, 아낄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1년도 이런 시간으로 나를 치유하고, 채워나갈 생각이다.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자랑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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