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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Nov 18. 2020

팀장의 퇴사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팀장이 퇴사했다. '하루 한 봉지' 견과류와 다이어트 두유와 명함첩 몇 개를 본인의 자리에 남겨두고. 2년 간 다녔던 회사를 누가 볼 새라 조용히, 마중나오지 말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대외적인 퇴사 이유는 건강문제. 그녀가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부당한 상황들을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안타깝다고, 부당하다고 정의의 사도처럼 말했으면서도 실은 나도 그녀를 직장동료로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퇴사한 뒤 우편으로 건네받은 선물에 죄책감이 더 컸다.


사실 난 그녀를 정말 싫어했다. 어쩌면 그녀를 벼랑으로 내몬 이들보다 더. 들쑥날쑥한 감정기복, 잦은 실수, 쇼잉에 혈안이 돼있는 보여주기 식 업무보고. 한 마디로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 때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그녀 쪽으로 고개 조차 돌리기 싫어했고, 다른 동료들에게 그녀에 대한 험담도 죄책감 없이 했다. 그녀를 괴롭혀 퇴사하기까지 한 사람들을 원망하면서도 부끄러워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다. 


팀장이 퇴사하고 일주일이 되어간다. 새로 팀장이 오기 전까지, 실력도 부족한 내가 팀장 대행을 하고 있다보니 비로소 그녀의 고생을 알 것 같다. 누군가의 글을 수정해주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러우면서도 좋은 말은 듣기 힘든 일인지. 팀원들의 기대는 얼마나 벅차고 상사의 지시는 얼마나 어깨를 무겁게 하는지. 그 노고를 이해해 주기는 커녕 거들떠도 보지 않았으니... 그녀는 참 많이도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 


밤늦게 그녀가 선물해준 책을 읽고 있다. 나의 뒤늦은 후회를 그녀가 알고 조금의 위로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그럴 용기는 또 없다. 친한 언니로 만났으면 내가 그녀를 참 좋아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이제 적어도 정상적인 인격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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