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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Jan 01. 2021

자격이 있는 사람만 엄마가 되면 좋을텐데

엄마, 사실 그건 내게 상처였어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천운영 작가의 단편 소설 <세 번 째 유방>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안겼었다. 


"내가 아니면 넌 태어나지도 못했을 아이였어." 

깔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식의 문장이었던 것 같다. 주인공을 낙태할 뻔 했다가 실수처럼 낳은 엄마는 코미디 프로 대사처럼 저 말을 던지고 깔깔 웃는다. 그 옆에 있었던 아빠, 다른 가족들도 함께 깔깔 웃는 가운데 주인공만 우두커니 혼자가 됐다. 바로 그 장면 때문에 난 한동안 그 소설을 머릿속에서 놓지 못했다. 


바람난 남편과 별거하면서도 그 남자의 아이를 몇 번이나 뱃속에 품었던 여자. 여자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반드시 일을 해야했지만 입덧이 너무 심했고, 두어 번의 낙태를 했다. 그 다음에 가진 아이가 나였다. 여자는 이번에도 아이를 지우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고, 수술용 옷을 입었고, 차가운 수술방 침대에 누웠다. 여자는 수술실에 가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역국을 끓여놔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엄마는 "수술할거면 집에 들어오지도 마"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나중에 알고보니 남자 아이면 바람난 사위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엄마의 차가운 목소리가 마음에 걸려서였을까. 여자는 간호사가 마취용 주사를 챙기기 위해 잠시 수술방을 비운 사이 침대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래서 겨우, 소설 속 주인공처럼 태어난 것이 나였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마치 무용담처럼 종종 내 앞에 꺼내놓곤 했다.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깔깔 웃으면서. 내가 초등학생일 때 이 얘길 처음 들었으니 충격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처럼 무책임한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연애를 할 때 피임에 특히 신경쓰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세상 참, 불공평하지. 엄마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기다리지만 품에 안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2년 전 가정을 꾸린 친구는 통 아이 소식이 없자 얼마 전 산부인과를 찾았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자궁인지 나팔관인지, 몸의 구조가 자연 임신은 힘들고 인공수정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진단이었다. 의사가 임신의 어려움을 폐경 상태에 빗대어 설명했다고 하니 심각성은 짐작할만 하다. 친구는 집으로 돌아와 펑펑 울었다. 둘만이어도 충분하다는 남편의 말은 아무 위로도 되지 않았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 늘 아이가 있는 행복한 가정을 꿈꿨던 친구였다. 


내가 요즘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개그맨 심진화, 김원효 부부도 마찬가지다. 좋은 엄마, 아빠가 될 만반의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지만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고 있다. 내가 누군가의 아이를 이토록 바래온 적이 있었던가. 서로를 아껴주는 두 사람이 너무 예뻐서, 예쁜 아기를 기다리는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두 사람의 아이를 기도하게 된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넘나 사랑스러운 개그맨 심진화, 김원효 부부 (이미지 : jtbc '1호가 될순없어' 화면 캡처)
엄마를 꿈꾸는 심진화. (이미지 =SBS '밥심' 화면 캡처) 


그렇다면 난 어떤 엄마가 될까. 엄마에 대한 결핍이 있는 내가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엄마가 될 수나 있을까. 자격이 있는 사람만 엄마가 되면 좋을텐데. 만약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말이다. 


아, 너무 엄마 욕만 한 것 같아서 덧붙이자면 엄마는 요즘들어 모성애가 폭발했다. 

젊은 시절 발휘하지 못한 모성애를 3년 전부터 폭발적으로 분출하고 있달까. 모성애도 한 생애에 다 써버려야하는 총량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가끔 장난으로 "왜 엄마인 척 하고 그래", "요즘 왤케 모성애가 폭발해"하면 엄마는 그저 허허 웃는다. 딸이 구박해도 웃기만 한다. 나쁜 엄마인지, 착한 엄마인지, 매일 헷갈리게 하는 이상한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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