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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Dec 28. 2018

상처 받지 않을 자유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왜 내 상처를 봐주지 않는 거야?'
'왜 내 고민을 들어주지 않는 거야?'


학창 시절 난 고민이 많고, 상처가 많은 아이였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줄 사람이 간절하게 필요했지만 마음속에 맴도는 말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굳게 닫혀버린 입은 열 생각을 안 했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겨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그 흔한 진로상담을 할 때도, 선생님에게 혼이 날 때도, 연애 얘기를 할 때에도 쌓여 있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혹은 못하고 있는 건지 아니 이런 고민을 해도 되는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학교 상담실을 찾아갔다.

“무슨 일 때문에 왔니?”
“그게.. 마음이 답답해서요.”
“상담하고 싶니?”
“아뇨, 잘 모르겠어요.”

그곳까지 왜 간 건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나 뭘 원해서 여기까지 온 거지?'

선생님은 머뭇거리고 있는 나를 상담실 안으로 데려갔다.

“뭐가 답답하니?”
“모르겠어요. 그냥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언제부터인가 난 아픈 것을 아프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상처 받은 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사실 궁금한 게 많았고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난 점점 표현이 서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말을 잘 못하겠어?”
“네..”
“그럼 말하지 않아도 돼.”


어렸을 적 말이 없는 내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넌 성숙한 아이구나.”

난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성숙한 아이가 되었다.

그땐, 사람들 말에 나도 스스로를 성숙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난 말이 없는 편이긴 했어도,

표현은 할 수 있는 아이였다.  
가끔 하고 싶은 말이 생기기도 했고, 갖고 싶은 게 생겨 욕심부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성숙하다는 칭찬 속에 가둬 두었고, ‘언니답게’ 그리고 ‘성숙하게’ 행동하기를 강요했다. 가끔은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나도 동생처럼 다 표현하고 싶다고’ 울면서 애처럼 굴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성숙해야 하니까 말하지 않는 것이 제일 나을 거라 생각했다.

성숙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까 ‘언니답게’ 내 욕심과 표현을 속으로 삼켰다.


내가 점점 커가자 이번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궁금한 게 그렇게 없니? 왜 묻지를 않니?

궁금한 게 뭐가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 봤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과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도 내 생각을 얘기해야 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긴 시간 참았던 입을 뗄려니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니 그보다 얘깃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난 대화를 이끌거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로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에게 대화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학교에선 종종 내 생각을 발표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발표를 하기 위해선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되고 싶은 것 등. 주로 나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번에 어른들은 나에게 표현하기를 강요했다.

어른들 생각에 따라 난 가끔은 말을 삼켜야 했고,

가끔은 없는 말을 해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

아마 난, 이 말이 필요했나 보다. 선생님의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사실 표현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삼키기만 했던 나는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이제 와서 그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힘이 들었다.

그 한마디에 잊고 있던 감정들이 튀어나와 눈물이 났다. 말할 수 있는 자유, 말하고 싶지 않은 자유

모두 나에게 있었다. 하지만, 왜 대체 왜...


그날은 그동안 밀려 있던 마음을 모두 쏟아냈다.




이림 /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상처 받지 않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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