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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Dec 29. 2018

내가 노예가 된 순간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누구든 처음부터 노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럼 나는 언제부터 노예가 된 거지?


첫째,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사라진 순간부터였다.


그러니깐, 질문을 하지 않은 순간부터였다.

더 이상 세상이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커 갈수록 보이는 어른들의 모습은 세상을 당연하단 듯 살아가고 있었다. 그 속에 살아가는 나도 어느새 세상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굳이 질문하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문제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난 스스로에게도 질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그 흔한 질문과 고민조차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기억에 남는 건 없고 시간만 흘렀다.

누군가 내게 시키는 일도 ‘그걸 왜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빨리 처리할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했다.


한때, 회사 상사는 거래처 접대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면 내게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나를 데려갔다. 회사의 새로운 아이템을 영업하기 위한 자리에 경력도 쌓이지 않은 나를 데려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다. 상사가 시키는 일이었고, 난 상사의 말을 따를 뿐이었다.

난 그렇게 멍청한 노예가 되고 있었다.


호기심과 질문을 잃은 순간부터 노예가 되었다.



둘째,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킨 순간부터였다.


나는 언제부터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다 이야기하지 못하고,  괜찮지 않은 걸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된 걸까?


생각해보면 원래의 나는 지금과 달랐다. 예전의 난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았고, 친해지려 하지도 않았다. ‘쟤 진짜 싫어, 걔는 나랑 안 맞는 거 같아’ 등의 질투 섞인 그런 감정이 아니라 나와 마음이 안 맞는 것 같으면 굳이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저 관심이 없었다.


나와 맞는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충분히 바빴다. 솔직한 얘기를 하는데도 시간이 부족했고 거짓을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다.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었고 가끔은 아무 말하지 않아도 편했다. 그런 관계만을 유지하려 했다.  


유독 싫어했던 건 단체 활동이었는데, 학교에서 하는 단체 활동은 모두 싫었다. 운동회, 수련회, 봉사활동.

살면서 참가해야 하는 단체 활동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럴 때마다 난 친구에게 살려 달라고 말하고 숨어 버리기도 했다.


그만 큼 싫어하는 일이었기에 빠질 수 있는 자리 혹은 정말 싫은 불편한 자리는 어떻게 해서 든 피하려고 했고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자리에서도 최대한 겉돌았다.

학생 때 수련회 가면 찍는 단체사진도 선생님 몰래 숨어 찍지 않으려 했다.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았다.

관심 있는 것엔 열의를 갖기만, 관심이 없는 것은 철저히 외면했다. 이런 내 성격 때문에 사회성이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지만, 그 말조차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일 뿐이니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는 싫어하는 감정에 집중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았다.

 

NOYES /@limlimnoart


지금 생각하면 ‘그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까'싶다.

하지만 사실 반대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변했을까?’


영업분야로 취업을 하고 일을 하다 보니,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그러는 동안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런 자리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거나 가끔은 거짓을 얘기해야 하는 내 모습을 볼 때 힘이 들었다. 자리가 어색하지 않게 할 말이 없어도 이야기를 꺼내야 했고,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낯설지 않은 척 친근하게 대해야 했다.

특히 이건 나에게 가장 힘든 일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하면 안 된 다니 첫 만남이 낯선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아무튼 일을 하기 위해선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나와 전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어야 했고 아니, 듣는 것 이상으로 그 말에 공감하는 척 표현해야 했다.

그리고 쉴 틈 없이 나오는 성희롱에 무뎌져야 했다.


너무나도 의미 없는 대화들이 오고 갔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은

큰 스트레스였다. 가끔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창피해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회사와 일에 적응해 갈수록 예전의 내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찾으려고 해도 내 시간은 점점 사라졌고, 생각은 멈추게 되었다.


내 모습을 숨기고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킨 순간부터였다.



난 그때부터 노예가 되었다.





이 림 /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내가 노예가 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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