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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제 Feb 19. 2020

문이 닫혔다고요? 일단 돈을 내세요.

핀란드에서 발견한 무척이나 다른 생활방식

태어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기에 줄곧 한국에서만 살았다. 비자를 받아 3개월 이상 살아본 건 핀란드가 처음이었다. 핀란드에 오기 전에 "외국에 살면 우리나라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내가 직접 경험해보니 정말 그랬다. 한 학기 짜리 교환학생이었지만, 핀란드에 사는 동안 정말 많은 걸 배우고 느꼈고,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됐다. 그래서 핀란드에서 발견한 우리와 무척이나 다른 생활방식을 정리해보았다. 꼭 핀란드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해 보였지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도 섞어 적었다.






우리나라와 핀란드의 10가지 다른 점


양치를 잘하지 않는다.

번호키 대신 열쇠를 주로 사용한다.

지하철을 탈 때, 그냥 타러 들어간다.

변기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는다.

화장실에서는 손을 말릴 때, 수건을 쓴다.

빈 병은 슈퍼에 되팔 수 있다.

문이 없는 엘리베이터가 많다.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느슨하게.

식사는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

길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1. 양치를 잘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다. 말 그대로 양치를 잘하지 않는다. 한 번은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양치를 하고 있었는데, 한 덴마크 친구가 나를 신기해하면서 물었다. "왜 지금 양치하는 거야?"


내겐 밥 먹고 양치하는 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그런 질문을 들은 게 더 신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양치는 자기 전에 하는 것이고 공공장소에서 양치하는 건 이상한 일인 듯했다.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에 학교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사람은 나 말곤 없었다. 사실 이건 핀란드 사람들의 특징은 아니고, 그냥 보편적인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학교에서 배웠던 양치인 "아침-점심-저녁", "식사 후, 하루 세 번", "333" 같은 것들은 꼭 당연한 게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양치를 안 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구내염이 잘 생기는) 타입이라 그냥 꿋꿋하게 양치했다.




2. 번호키 대신 열쇠를 주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의 번호키는 정말 편리하고 좋은 시스템이다. 특히나 나는 어릴 때 열쇠를 깜빡해서, 집에 못 들어갔던 적이 많았다. 열쇠를 깜빡하고 챙겨 나오지 않은 날에는 집 앞에서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쓸쓸하게 기다리곤 했었다. 요즘은 번호키를 주로 사용하니까 열쇠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없어져서 정말 다행이다.


한편, 핀란드에서는 아직도 열쇠가 더 보편적이다. 내가 살았던 헬싱키(Helsinki)의 학생 아파트 HOAS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모양이 모두 똑같은 전자식 열쇠(?)를 사용했다. 그래서 외출할 때마다 열쇠를 깜빡하지 않으려고 여러 번 확인하며 챙기곤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열쇠를 깜빡한 적이 있었다. 그 날은 친구를 만나러 외출하려던 참이었고, 무심코 방에서 나오는데 문이 닫히자마자 열쇠를 방안에 두고 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HOAS 시큐리티에 전화를 걸어 문을 열어달라고 했는데, 시큐리티는 곧 도착한다고 했지만, 도착할 때까지는 자리를 지켜야 했고, 외출한 룸메이트도 언제 올지 알 수 없는데, 약속에도 늦을 것 같았다. ㅠㅠ 안절부절못하며 건물 안을 배회하고 있는데, 마침 룸메이트가 1층 현관으로 들어왔다. 룸메이트에게 빠르게 상황 설명을 하고 함께 우리 방으로 올라갔고 방안에 있던 열쇠도 찾았다. 그리고 때 마침 시큐리티도 도착했다. 나는 "문이 열려서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시큐리티를 돌려보냈는데, 얼마 후 시큐리티 비용(문을 여는 데 드는 비용)으로 33유로를 내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하하하... 마치 "문이 닫혔다고요? 일단 돈을 내세요."라는 것 같았다. 결국 문은 룸메이트가 열었고, 시큐리티는 그냥 돌아갔지만 여전히 33유로는 내야 했기에 너무 아까웠다. (물론 금액이 청구되는 게 맞지만, 그래도 아까워...)


사실 우리에겐 번호키는 어렵지 않다. 4~8자리 숫자 정도 외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다른 언어권에서는 꼭 그렇진 않다는 걸, 핀란드에 와서야 알게 됐다. 숫자 1-2-3-4-5를 읽을 때 한국어에서는 한 음절 씩 일-이-삼-사-오 밖에 되지 않으니 외우기 쉽지만, 영어만 해도 one-two-three-four-five처럼 음절이 길고, 핀란드어도 yksi-kaksi-kolme-neljä-viisi로 길다. 언어가 다르기에 숫자 외우기가 더 어렵고, 그래서 번호키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3. 지하철을 탈 때, 그냥 타러 들어간다.

헬싱키에서 처음 지하철을 탈 때 정말 신기했다. 당연스럽게도 어딘가 개찰구(게이트)가 있어서, 거기에 카드를 찍어야만 문이 열리고, 거길 통과해야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헬싱키 지하철에는 개찰구가 없었다. 교통카드(Travel Card)는 주머니나 가방 속에 잘 넣은 채로 그냥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그냥 타러 들어간다고 해서 돈을 내지 않는 건 아니다. 핀란드에서는 보통 하루, 일주일, 한 달 등 일정 기간 동안 무제한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쓰기에, 탈 때마다 카드를 찍지 않는 것뿐이었다.


지하철에 개찰구가 없는 게 신기했던 나머지 핀란드인 친구에게 돈을 안 내고 지하철을 타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아주 단호하게 "결단코 단 한 번도 돈을 내지 않고 지하철을 타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 순간, 서울에서 지하철 개찰구 밑으로 지나가며 무임승차하던 사람들, 그리고 파리에서 개찰구 위로 점프해 넘어가며 무임승차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들과 상반된 핀란드의 모습은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알고 보니 오스트리아와 독일에도 비슷한 시스템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지하철을 탈 때, 현지인 친구가 내 카드를 validate(카드 찍기) 해주면서 "좋아. 이제 너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어."라고 (영어로)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아주 뚜렷하고 확고하게 "지하철을 탈 때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지하철을 탈 때 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대중교통이 무료인 몇몇 지역만 빼고). 하지만 개찰구가 없는데도 당연하게 돈을 내야 한다고 여기는 점이 무척 다르게 느껴졌다. 아무도 모르고, 누가 쳐다보지 않는데도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걸 당연시하는 것 같았다.


한편, 핀란드에는 시큐리티라고 불리는 검표원도 있다. 지하철, 버스, 트램 등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시큐리티를 나도 여러 번 마주쳤다. 이들은 보통 3~4명 정도가 동시에 나타나서는 차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교통카드를 검사했다. 그런데 이런 때마다 꼭 한 명씩은 무임승차한 사람이 나왔다. 한 번은 늦은 저녁 트램을 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시큐리티를 마주쳤고 거기에 있던 한 할머니가 돈을 안 내고 트램을 탔는지, 담담한 얼굴로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 할머니는 80유로의 벌금을 물게 됐겠지. 핀란드의 이런 면을 볼 때면, 핀란드가 무척 행복하고 이상적인 복지국가인 듯해도, 역시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다.




4. 변기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변기는 물을 내리면 위쪽에서 물이 나오면서 동시에 아래쪽에서는 물이 빠진다. 그래서 시원하게 변기를 내렸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핀란드 변기는 물만 나오다가 그냥 끝나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변기가 하수구로 물이 완전히 빠진 뒤 다시 물이 차는 구조라면, 핀란드에서는 위에서 물이 나와서 아래 있던 물을 계속 밀어내는 구조. 핀란드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 것 같지만, 나에겐 좀 이상하고 찜찜했다.




5. 화장실에서는 손을 말릴 때, 수건을 쓴다.

내가 본 대부분의 핀란드 화장실에는 이 "수건"이라는 게 있었다. 공중 화장실에서 수건이라니, 여러 사람이 함께 써서 비위생적인 건 아닐까 싶겠지만, 이건 보통 수건이 아니다. 우선 이 수건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말려있다. 이 수건을 잡아당겨 뽑아내고 거기에 손을 닦는다. 그리고 잠시 기다리면 뽑힌 천은 자동으로 안쪽으로 말려들어간다. 확실히 이걸 쓰면 페이퍼 타월처럼 쓰레기를 만들지도 않을 거고, 핸드드라이어처럼 전기를 많이 쓰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 천을 대체 어떻게 세탁하고 다시 화장실에 가져다 놓는 건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경기도 광명에 있는 이케아(IKEA)에 가본 적이 있었다. 이케아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무렵이었는데, 한국에 있는데도 화장실이며 계산대까지 모든 게 무척 북유럽식이었다. 어쩜! 이렇게 북유럽을 그대로 옮겨왔는지! 나의 핀란드 라이프가 떠올랐다. 계산대에서 계산 완료된 상품들이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이지 않도록 하는 칸막이(divider)라던지, 공중화장실인데도 1인용 Gender Neutral(젠더 뉴트럴, 성중립) 화장실이 있는 것도, 화장실 칸막이나 인테리어까지 전부 북유럽 스타일이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도 그 "수건"이 있었으니까 내심 이케아에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건은 없었다. 아마 천을 세탁하고 다시 가져다 놓을 협력업체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6. 빈 병은 슈퍼에 되팔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슈퍼에서 알루미늄 캔이나 페트병(PET병)에 든 음료를 사면, 병 보증금도 함께 낸다. 보증금은 병마다 다른데 작은 알루미늄 캔은 0.15유로, 작은 PET병은 0.20유로, 큰 PET병은 0.40유로 정도다.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모이면 적지 않다. 이 보증금은 빈 병을 슈퍼에 팔아 다시 받을 수 있다. 길에서 커다란 봉투에 빈 병을 가득 들고 슈퍼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종종 목격했는데, 여기선 다들 이렇게 집에 빈 병을 모아두었다가 슈퍼에 되팔러 가는가 보다.


얼핏 아무 빈 병이나 주워서 팔면 될 것 같지만, 사실 모든 병을 다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핀란드에서 판매되는 병에는 각 병마다 병 가격이 적혀있고, 가격이 적혀있지 않은 병은 슈퍼 가져가도 돈을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빈 병을 되팔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한 번도 빈 병을 팔아본 적이 없었다.




7. 문이 없는 엘리베이터가 많다.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핀란드에도 오래된 건물이 많다. 대부분은 리모델링을 거쳐 살기 나쁘진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건물만큼 반짝반짝하고 깨끗하진 않다. 다른 건 오래됐어도 고풍스러운 멋이 있지만, 오래된 엘리베이터는 정말 낯설었다. 안쪽 문이 없어서, 정말로 기대면 안 되고 손대면 안 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처음 탔을 때 뭔가 좀 무서워서, 문 맞은편에 바짝 붙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곤 했었다. 또 한 번은, 문은 있지만 쇠창살로 되어있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창살 사이가 뚫려있어 바깥이 훤히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잘못하여 창살 사이에 손가락이라도 끼면 정말 끝장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8.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느슨하게.

핀란드는 우리나라와 똑같이 실내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약간 다른데,  간단히 말해 신발에 느슨하다. 핀란드에서는 실내에서 신발을 벗지만, 우리나라처럼 엄격하게 현관에서 반드시 벗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현관 신발장도 없고, 보통 현관문 근처 어딘가에 신발을 벗어둔다. 우리나라와 비교해 신발을 벗는데 느슨하다.


한편, 일단 실내이면 사무실이나 강의실에서도 신발을 벗는다. 꼭 벗어야 하는 곳도 있고, 개별적으로 벗기도 한다. 모두가 신발을 신고 있더라도, 누군가 원한다면 양말을 신은 채로 다니기도 하는데, 누구도 이걸 이상하게 보거나 지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겨울 부츠는 오래 신고 있기 불편하니, 실내에서 신발 벗게 되었나 보다 싶었다.




9. 식사는 어디에서나 할 수 있다.

핀란드에서는 도서관이든 수영장이든 건물마다 카페가 있다. 심지어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의 메인 빌딩 1층 로비는 카페테리아와 연결되어 있는데, 학생들은 자유롭게 식사를 가져와 로비에서 밥을 먹곤 했다. 핀란드 공공 도서관 OODI 1층에도 카페가 있는데, 여기서 음식을 가져와 다른 층에 가서 먹기도 한다. 과제를 하러 자주 찾았던, 헬싱키대학교 도서관도 먹는 것에 좀 더 자유로웠다. 이야기를 해도 되는 곳, 음식을 먹어도 되는 곳, 이야기를 하거나 음식을 먹으면 안 되는 곳이 나눠져 있어서,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밥은 식당에서 먹는 것이며, 도서관에서는 간식이나 음료에 엄격한데 비해, 핀란드는 식사 장소라는 개념에 더 자유롭고 식사도 신발처럼 느슨하다.




10. 길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핀란드에서는 길에서 맥주를 마시는 게 매우 흔하고 평범한 일이다. 이것도 식사 장소에 느슨한 것만큼이나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핀란드 라이프에 익숙해진 나머지, 무심코 맥주를 마시다가 친구를 따라 한 상점에 들어갔다. 그 상점에는 핀란드인 직원이 두 명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아마 몰랐겠지만, 상점 안에서 마시는 건 불법이야"라고 말해줬다. 나는 정말 깜짝 놀라서는 바로 "Oh, I'm sorry, I didn't know that."라고 말하고는 바로 상점 밖으로 나왔다. 두 핀란드인 직원이 내가 '모르고 그랬을 것'이라 여기며 친절히 알려준게 고마웠다. 몰랐기에 그랬던 거지만, 정말 큰 일 날 뻔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친구를 따라간 게 아니었다면 상점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고, 내가 물건을 사려던 거였다면 맥주는 안 마시고 있었겠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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