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제 Feb 05. 2020

꼬레아라이넨 치킨파티

백종원 님의 후라이드 치킨 레시피 위에 모인 핀란드 유학생들



꼬레아라이넨이 무슨 뜻이죠?

korealainen은 핀란드어로 한국인이라는 뜻이다. 한국을 뜻하는 korea에 '~출신 사람'이라는 뜻의 접미사 -lainen을 붙어서 korealainen이 되는 것이다. 핀란드인은 Suomalainen이라고 하는데, 핀란드어로 핀란드는 Suomi이고 거기에 -lainen을 붙여 Suomalainen이 된다. 아무튼 그래서 이 글을 담은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살기" 매거진의 주소도 korealainen으로 정했다.







왜 치킨파티를 하게 되었나?

내가 교환학생을 갔던 알토대학교 경영대학(Aalto University Business School)에 한국인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교환학생의 대다수는 유럽 출신 학생들이었고, 아시아 계 친구들도 물론 있었지만, 싱가포르, 일본, 대만 친구들만 여럿 있었고 한국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도 이걸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한 일본 친구도 이게 신기했나 보다. 그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주변에 한국인이 정말 많았는데, 어째서 핀란드에는 거의 없는 거지?


나는 어쩐지 그 답을 알 것 같았지만 설명하기가 너무 복잡해서, "나는 답을   같지만, 설명하기 어렵다."라고 아주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그 일본 친구가 사진을 한 장 보여주더니 대만 유학생과 일본 유학생들이 조인 파티를 했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핼로윈 파티를 한 듯했다. 피 분장을 얼굴에 바르고 검은색 옷을 입을 모습이었다. 조금 유치하긴 하지만 '나를 빼놓고 너네들끼리 놀았단 말이야?'라는 마음에 약간 질투가 났다.


한편, 같은 때에 헬싱키에 살던 몇몇 한국인 친구와도 자주 만나 시간을 보냈다. 물론 핀란드에서 같은 학교에 다녔던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함께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교환학생 친구도 있었다. 일부러 만나기 위해 찾으러 다녔던 건 아니지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부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서울대학교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끼리 모여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처음 만난 그 날, 저녁으로 불고기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는 불고기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 한국인 교환학생이 없어서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대만과 일본의 조인트 파티 이야기를 듣고 약간의 괘씸함, 질투, 억울함(?)을 느꼈던 이야기도 했다. 그 모든 복잡 미묘한 감정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아 뭐야 짜증나'였다. 그러다가 "우리도 하자!"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그렇게 나가주지!


맞아. 우리도 우리끼리 파티를 열면 된다. 헬싱키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모아 한국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자는 것이 치킨파티의 시작이었다.








파티를 준비해 봅시다 ~^-^~ / 소박하고 즐거웠던 준비과정.

1. 언제 할까?

먼저 우리 셋이서 모두 가능한 날로 골라서 정했다. 셋이서 함께 만들기로 정한 파티였으니 셋이 모두 참석하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것보다 우선이었다.


2. 누구를 부를까?

주변의 아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알음알음 부르기로 했다. 다들 어떻게 아는 건지, 정말 고구마 줄기처럼 알음알음 알고 지낸다. 핀란드에 사는 한국인 사이에는 정겹고 조그만 커뮤니티가 있는 것 같다.


3. 무엇을 위해서?

파티니까 역시 음식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면 뭘 만들어 먹을까? 핀란드에 살면서  먹어서 아쉬운 한식을 한 가지 꼽아보니, 역시 한국에서 먹던 치킨이었다. 기름에 튀겨야 하는 음식이라 혼자 만들어 먹기도 어렵고, 비슷한 걸 파는 곳도 찾기 어려우니까. 그러니 바로 이런 파티에서 치킨을 만들어 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후라이드 치킨을 튀기기로 했고, 다른 분들께도 요리를 부탁했다. 포트럭 파티였다.


4. 이름은 뭐라고 정하지?

파티는 간단하게 "꼬레아라이넨 치킨파티"라고 이름 지었다. 누가(한국인이) 어디에서(핀란드에서) (치킨을 먹기 위해) 무엇을(파티를)하는지 깔끔하게 나와있는 이름이라 무척 맘에 든다. 특히나 파티 이름을 한글로 "꼬레아라이넨"이라고 썼기 때문에, 이걸 보고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생각하고 파티에 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5. 장소는 어디로 하지?

헬싱키 지역의 학생 아파트인 HOAS는 학생 아파트이지만 기숙사 같은 개념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핀란드 아파트에 있는 (사우나라던지, 사우나 같은)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세 명 중 한 친구는 헬싱키 파실라(Helsinki Pasila)에 위치한 HOAS에 살았는데, (내가 살았던 HOAS에는 사우나만 있었지만) 그 HOAS 건물 꼭대기층에는 무료로 빌릴 수 있는 파티룸이 있었다. 덕분에 파티 장소는 쉽게 정할 수 있었다.


6. 홍보는 어떻게 할까

아주 신기하게도 핀란드에서는 페이스북에서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난다. 핀란드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여는 이벤트가 공유되고, 내가 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행사 정보도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다. 잡다한 유머나 짤방, 연예인이나 정치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다음 주에 열리는 벼룩시장 소식이 있는 곳이 페이스북이라서, 페북은 정말 생활 필수 앱이고 활용도도 높다. 그래서 우리도 페이스북으로 파티를 홍보하기로 했다. 홍보라고는 했지만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저 파티 날짜와 장소를 공지하는데 썼다. "꼬레아라이넨 치킨파티"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이벤트를 만들었고, 주변 한국인 친구들을 이벤트에 초대했다.


그때 만들었던 페이스북 페이지



이제 사전 준비는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달력에 적어둔 파티 날이 되었다.





백종원 님의 후라이드 치킨, 포트럭파티,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

파티는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디너파티였다.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오후쯤 되어서 장소에 도착했고, 정말 고맙게도 다른 두 친구가 먼저 와서 장을 보고 요리 준비도 했다. 사실, 우리 셋은 모두 닭을 튀겨본 적도 없고, 튀기는 걸 가까이서 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백종원 님의 후라이드 치킨 레시피를 보고 그대로 따라서 만들어보기로 했다. 왜냐면 백종원 님의 레시피는 쉬운 데다가 맛있을 것 같아서다.


<백종원 님의 후라이드 치킨 레시피>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그날의 후라이드 치킨 만들기는 비닐봉지에 닭과 튀김옷을 넣고 마구 흔들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백종원 님의 후라이드 치킨 레시피를 다시 검색해보았는데, 적당히 그럴듯하게(다시말해 쉽게)가 레시피의 핵심인 것 같다.


재료

닭고기, 튀김가루, 식용유, 맛소금, 후추, 우유 그리고 비닐봉지


만드는 법

1. 닭고기에 적당히 칼집을 낸 뒤, 맛소금 반 스푼과 후추를 듬뿍 넣어 밑간을 한다.

2. 닭고기가 살짝 잠길 정도로 우유를 부어 30분 정도 재운다.

3. 닭고기에 튀김가루를 넣어 조물조물 튀김옷을 입힌다.

4. 비닐봉지에 튀김가루를 한 컵과 튀김옷을 입힌 닭을 비닐봉지에 넣는다.

5. 비닐봉지를 풍선처럼 묶은 뒤, 튀김가루가 닭고기에 골고루 묻도록 흔들어준다.

6. 적당히 달궈진 기름에 닭을 넣고 7분 30초 동안 튀긴다.

7. 튀긴 닭은 건져 올려 수분과 기름을 뺀 뒤, 바삭바삭하게 한 번 더 튀긴다.


파티 시간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건물 앞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문을 열어주기 위해 1층까지 내려갔다 오곤 했다. 포트럭 파티였기에 모두들 간단한 요리를 준비해 왔었는데, 잡채를 만들어 온 사람도 있었고 김밥을 싸온 사람도 있었다. 이 먼 곳에서 잡채랑 김밥을 만들기 위해 수고했을 생각을 하니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후라이드 치킨, 김밥, 잡채, 떡볶이 그리고 핀란드 감초 사탕(살미아끼)




“반갑습니다!” 외치며 건배를 하고, 우리는 치킨을 먹었다. 그리고 치킨이 맛있다는 이야기, 이렇게 모이게 되어서 기쁘다는 이야기, 그리고 핀란드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 배경음악으로 2000년대 초반의 한국 노래도 틀었다. 그날 모였던 대부분이 대학생이었으니, 2000년대 초반의 노래라면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듣던 추억의 노래다. 한 소절만 들어도 뭉클한 추억에 잠기게 하는 god 촛불 하나, 동방신기 풍선, 거북이 비행기 같은 노래들이 나왔고, 우리는 모두 함께 따라 불렀다.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잡아 줄게



대부분이 그 날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노래를 부르며 우리가 지금, 여기 핀란드에서 이 순간을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속감 혹은 동질감, 그것도 아니면 공감이나 향수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꼬레아라이넨 치킨파티를 생각하면 뭉클하고 따뜻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핀란드 생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아래 글도 읽어보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핀란드에서 쓴 생활비&지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