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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제 Nov 05. 2020

누군가 땅콩알레르기가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답은 2명 중, 1명


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면, 소용 없는 것

핀란드에서는 식당 메뉴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메뉴 옆에 써있는 V, L, G라는 글씨를 볼 수 있다. 풀어쓰면 비건(Vegan), 락토프리(Lactofree), 글루텐프리(Gluten free)이다.  V는 유제품, 달걀, 우유, 생선같은 온갖 종류의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비건을 위한 음식이다. L은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보통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락토프리 음식이고, G는 곡류에 들어있는 불용성단백질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글루텐프리 음식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많아도, 내가 먹을 수 없다면 소용없다"고 생각한다. 진수성찬보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가 더 중요하다. 어차피 소화하지 못하거니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긴다. 이 생각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먹을 수 없는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들에겐 맛있는 음식인지보다 더 중요한 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허기를 채울 수 있는가 이다.







누군가 땅콩 알레르기가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같은 시기에 핀란드에 교환학생으로 온 홍콩 친구들 두 명을 위해서, 내가 손수 나서서 한국음식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메뉴는 호떡이었다. 달달하고 맵지 않아서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호떡은 밀가루 반죽에 흑설탕, 계피가루, 땅콩을 넣어 만들면 되는데, 문득 친구들 중 누군가가 땅콩 알레르기가 있진 않을까 걱정됐다. 마침 호떡 반죽을 끝내고 호떡 소를 넣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혹시 땅콩 알레르기 있는 사람?"


그러자 두 친구 중 한 명이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미리 물어보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친구를 위해 땅콩없이 따로 설탕만 넣은 호떡을 몇 개 만들었다. 친구는 그걸 보더니 "너 정말 친절하다!(You're so sweet!)라며 고마워했다. 정말 뿌듯했다.


고백하건데 이전까지 한국에 살며, 누군가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지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은 그때도 그랬다. 겨우 두 명 중에 누군가 땅콩알레르기가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그래서 그저 늘 하던대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누군가에게 땅콩 알레르기가 있을지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에 하나'라는 생각으로 땅콩을 먹을 수 있는지 물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도 핀란드에 오지 않았더라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늘 해왔던 대로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친구에겐 더 맛있는 호떡 같은 건 소용 없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가 더 중요할테니까.



왼쪽은 땅콩, 계피, 설탕이 들어간 호떡

오른쪽은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친구를 위해 만든 설탕만 들어간 호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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