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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Sep 10. 2021

[영화 에세이]#20. 시네마 천국

시네마 천국


자그마한 틈으로 응축되어 빚어진 빛 무더기가 스크린에 부딪힌다. 잔뜩 구겨진 빛이 표면에 난반사되어 활짝 펴지고는 영화가 된다. 음영이 드리운 이곳, 영화관에서 우리는 어떠한 빛을 찾을 수 있는가. 무엇을 되돌아보게 하는가.


무엇이 그리 즐거웠을까. 지금이야 집밥이 그리울 나이가 사뭇 다가왔음에도 어릴 적에는 외식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다지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나지는 못한 탓에 외식을 자주 하지도, 그리 근사한 외식도 아니었건만, 간만에 집 밖을 나서 아빠 차 뒷좌석에 몸을 싣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밥만 먹어 배만 채우면 되겠는가. 마음도 살찌워야지. 우리는 없는 형편에도 나름대로 문화생활도 하려고 했다. 그럴 때 영화는 무난하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두어 시간을 보내기 적당하였고, 어릴 적 나에게 영화관이란 딱 그 정도의 곳이었다.


영화가 삶과 비슷해서인지, 삶과 달라서인지, 그냥 영화라는 단어 자체가 근사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외식도 하지 않았고 가족끼리 영화관을 찾지도 않았지만. 명작으로 유명한 작품들부터 해서 조금은 생경한 작품들도, 지루하지만 영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 작품들까지 정성스레 영화를 감상하고 감상을 적었다. 뽐낼 실력은 아니건만 어두운 영화관 구석에 앉아 영화와 함께 있는 듯한 감정이 그리 좋았다.


한때는 프랑스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누벨바그’와 ‘누벨 이마쥬’라는 단어가 멋져서 그 시대의 작품들은 탐독했다. 돌이켜보면 레오 까락스의 작품 외에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었지만. 하루는 재개봉한 <퐁네프의 연인들>(1994) 을 보고 나서 흥분에 차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완벽히 이해하지도 못했음에도 영화가 주는 감흥을 진주처럼 빚어 혀끝에 담았다. “퐁네프의 연인들 보고 왔어요.” 이어 감상평을 말하려는 순간, 어머니는 말하였다, “그 영화 엄마도 참 좋아하는데!”


나의 시절보다 어머니의 시절에 더욱 가까운 영화이지만, 어머니가 이 영화를 좋아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다. 어머니는 그다지 시네필같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니가 이 영화를 너무도 좋아하여 아버지가 어디서 포스터를 가지고 와 건네주었다고 한다. 부모님이 사랑하는 영화를 자라난 아이가 다시 사랑하는 것이란 얼마나 근사한 일이던가. 비록 다른 시절, 다른 극장에서 관람하였건만 이 영화는 우리의 삶에 담기게 되었다.


그 이후 이따금씩 내가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날이면 우리는 영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재개봉한 <시네마천국>(1988)을 보고 돌아온 날에는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이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살아온 조각들이 하나둘 담겨 나의 손에 쥐어지는 것에 대하여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고이 접어 지층을 쌓아 올리는 것에 대하여 생각했다. 어버이의 아름다운 순간들로 이루어진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한 영화가 나의 아이의 극장에서 상영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좋은 영화를 볼 때는 부모님을 모시고 영화관에 가게 되었다. <콜드 워>(2018)를 보여드린 후 어머니는 언제부턴가 이렇게 좋은 영화들을 잊고 살았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다시금 영화는 우리의 즐거움이 되었고, 영화관은 우리의 낙원이 되었다.


‘영화란 지루한 부분이 커트 된 인생이다. - 알프레드 히치콕’


추억은 필름 조각이다. 그 필름 조각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일 테다. 슬픈 순간도 행복한 순간도 있겠지만, 작은 틈새로 어둠을 비집고 맺힐 빛나는 것일 테다. 나의 영화는 어머니, 아버지의 영화와 어느 면을 맞닿고 있다. 어버이의 시절과 나의 시절을 너머서 지금 나란히 앉은 어느 영화관에서도 맥을 잇고 있다. 언젠가는 부모님의 영화는 막을 내리고 나도 나의 영화를 아이들에게 건네주겠지만 영화는 끊임없이 흐르고 희미해지는 영화관도 끝끝내 기억될 것이다.


서울극장이 사라진다고 한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았던 나의 시네마천국은 사라지지만 나는 이곳을 먼 후일에도 기억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언젠가 희미해질,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을 곳들에 대해 글을 지으며 나는 감사를 전하고 싶다. 세상 모든 영화관에게. 어느 누군가에겐 시네마천국일 곳들에게. 우리에게 영화를 선사해준 모든 이들에게.

영화 <시네마 천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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