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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목지 Sep 04. 2023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우울에 관해서1

intro. 우울을 등지는 방법1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경험은 두번이다. 전부 경미한 증상이라고 했다. 찾아왔으니 처방은 해준다만 그닥 올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눈초리를 받곤 했다. 한번은 의사가 우는 나를 보고 피식 웃는 바람에 그만 다녔고, 한번은 약 값이 부담되어 그만 두었다.

병원을 찾은 건 이러다 파편처럼 깨져버릴 것 같은 아침을 맞이하고서였다. 참다 참다 눈 앞에 까만 것만 보여서 나를 살리기 위해 찾았다. 그런데 막상 가면 차분해지고, 멀쩡해진 것 같고, 내가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하는 표정으로 나를 설명했다. 나도 자신이 없어서다. 내가 병원을 찾아야 할만큼 힘든걸까.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이 하기 싫어서 나에게 마땅한 핑계거리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원 대기실을 거쳐 의사에게 진단을 받고 상담실에서 내 앞에 주어진 체크리스트를 바라보니 그제야 문득 드는 생각이다.


어쨌든 나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2년간은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했다. 의사선생님 말대로 꾸준히 먹는다면 양극성 장애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 나는 약을 먹고 있지 않고 불현듯 찾아오는 갑갑함에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멍을 때리고 있다.

그래, 지금 나는 가난하고 약값으로 숭덩숭덩 나가는 돈이 아까워 이 갑갑함을 친구삼으려 한다. '우울함'이라기 보다는 '갑갑함'이 맞는 거 같다. 이 감정의 근원을 찾기엔 나를 수식하는 모든 것이 지분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하나 읊는 것은 무의미 할 것 같다. '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고민하고 되뇌이고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형편만큼 늘어진 후에, 무언갈 하고싶단 생각이 들면 우선순위를 정하고 하나하나 실행에 옮긴다.


가장 좋은 것은 방청소였다. 내 눈앞의 환경을 일단은 깔끔히 정돈하는 것.

창문을 연다. 늘어진 빨래 먼저 개고, 제멋대로 놓여진 잡동사니를 정리하고, (아 수납장은 너무나 필요하다. 일단 집어 넣으면 방안이 환해진다.) 그리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마지막으로 바닥청소를 깨끗이 하는 것이다. 쓰레기통을 비우는 것으로 완성이된다. 그런데 말이 쉽지 너무나도 귀찮은 행위이다. 더러운 것을 비워가는 중에 자기혐오도 심해진다. 화장실까지 청소할 여력이 있으면 좋겠다만 일단은 내일 하기로 한다. 그러고 나면 완전히 에너지를 다 써버리지 않은 채로 약간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눕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갑갑함을 벗어나는 1단계이다. 사실 단계까지 정해가면서 우울증 탈출을 메뉴얼화시킬 생각은 없는데 그냥 하나하나 적어보려고 한다. 탈출이라는 말을 썼지만 잠시 벗어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갑갑하고 무섭고 우울한 그 찝찔한 감정은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닌 것 같다. 내 인생의 일부분이라는 걸 받아 들이고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를 잘 이용하는 것? 이게  나름대로 사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쓰다보니 좀 씩씩한 것 같은데 내일은 또다시 만성 무기력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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