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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목지 Sep 08. 2023

망가짐의 역할

이대로 가기만 하면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있다. 이제 제법 나를 알 것 같고, 넘침도 부족함도 없이 잘 살고 있다 싶을 때 어김없이 '나를 망가뜨리고 싶은' 또 다른 내가 찾아왔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런 날은 평소보다 더 절제를 못하고, 몸에 나쁜 것을 찾는다. 그리고 내 정신을 공격한다.

"봐바 너도 별 수 없지. 결국 이렇게 무너져서는 한없이 퍼지잖아. 절제도 모르는 한심한 게으름뱅이야."

이 공격이 예전엔 참 나를 많이 괴롭혔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스스로가 다그치는 말에 더더욱 무너져서 좌절하곤 했다. 좌절은 체중의 숫자로 눈에 선명하게 보이기까지 하니 자기혐오는 더 심해졌다.


나를 공격하는 나는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망가지고 싶은 기분은 왜 오는 거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아성찰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늪에 빠져버린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제발.. 일어나!!! 나를 살리려는 또 다른 내가 소리친다.

"일어나."


그래도 일어나기 싫은 몸이 잠을 청한다. 정말 될 때까지 한없이 늘어진다. 이 기간이 하루가 될 때도 있고, 일주일이 지속될 때도 있었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충전되는 게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메말라 죽을 것이라는 직감이 강해졌다. 역시나 나를 살리려는 내가 또다시 나를 달랜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일어나서 환기를 시켜. 그리고 일단 씻자. 그다음에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봐. 잘게 쪼개서 나열해. 하나씩 지워나가는 거야. 괜찮아 할 수 있어. 원래 해오던 거잖아. 걱정하지 마."


회사를 다닐 땐 평일의 루틴이 있기 때문에 한없이 늘어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늘어지고 싶은 나를 외면한다 해서 멀쩡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어떻게든 어딘가 망가졌다. 이 기간이 찾아왔다는 것은 재정비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이 기간을 견뎌내면서 나름의 룰이 생겼다. 잘 살고 있는데 꼭 문제아처럼 굴고 싶을 때가 오면 방어적으로 굴지 말고 여유를 내어주는 것이다.  '늘어지고 싶은 나'는 '자기혐오하는 나'와 상관이 없다. 그래서 '늘어지고 싶은 나'를 무조건 비판하고 멀리하면 안 된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과 기분은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바람직한 이상향에 억지로 나를 끼워 맞추면, 이에 벗어나는 내 감정을 다그치고 외면하게 된다. 그렇게 폭주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안정적인 균형의 시작은 나를 이해하고, 내 속도를 알고, 스스로 대화하면서 찾아온다. 나는 그랬다.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을 텐데, 나의 경우엔 나의 속도를 견디며 기다려주는 것이었다. 예전엔 그게 안 돼서 무조건 다그치기만 했다. 그랬더니 폭주가 시작되었고, 급기야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게 악순환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삶의 흐름을 멋대로 휘두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고여있는 것을 견디고, 빠른 속도에 중심을 잡으면 될 뿐이다. 갑자기 모든 삶이 완벽해질 수 없고, 한심하게만 느껴지는 이 순간도 지나고 보면 소중한 삶이라는 것은 망가져봐야만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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