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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목지 Sep 12. 2023

돌고 돌아 비빔밥



나는 먹을 것을 전날부터 계획하는 편이다. 무언가를 정해놓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는 사람으로 태어나버렸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무색하게도 열심히 세워놓은 계획을 어처구니없이 바꿔버린다.

이런 변덕에는 나에게조차 반발을 사서 계획을 점점 대충 하기 시작했다. 재료를 미리 사다 놓는다거나, 손질을 해놓는다거나, 같이 맛집에 갈 사람을 섣불리 모색하지 않는다. 이제야 나의 즉흥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젯밤에 나는 분명 외식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학원에 다녀오면 너무 피곤할 테고, 집에 오면 바로 청소하고 공부를 시작해야 할 텐데 요리를 하기가 너무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지치고 힘든 나머지 곧장 귀가해버렸다. 조금만 힘내면 요리를 안 해도 되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이런 결정을 해버린 내가 어이없었지만 별 수 없었다. 당장 간단히 해먹을 메뉴를 궁리했다.


집에는 본가에서 보내준 못난이 채소들이 있고, 얼린 밥, 그리고.. 면종류, 고추장 된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답은 정해져 있다.

비빔밥과 비빔국수.


콩나물을 살짝 쪄서 무침을 하고, 상추를 뚝뚝 뜯어 고추장에 비벼 먹는 양푼비빔밥.

소면 삶아 차갑게 헹구고 콩나물무침과 상추를 넣어 초고추장에 비며 먹는 비빔국수.



비빔밥과 비빔국수는 크게 실패하지 않다는 점에서 최고의 메뉴이다.



비빔밥과 비빔국수의 장점은 있는 재료를 대충 넣어도 맛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단하잖아!

생채소를 바로 넣으면 제일 간편하지만, 콩나물이나 버섯처럼 익힌채소를 넣을 경우에는 굳이 끓는 물에 데치지 않아도 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물 세 숟갈 정도를 냄비에 넣고 채소를 올려 찌는 것이다. 뚜껑은 열어놓아도 된다. 그 상태에서 김이 올라올 때까지 끓이다가 휘휘 저어 주면 콩나물이 아주 아삭하게 익는다.

찬물에 헹궈서 물기 탈탈 털어놓고 나머지 재료를 준비하면 된다.



비빔밥과 비빔국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참기름을 휘익 두를 때이다. 이땐 정말 마음이 흡족스럽다.

이제 맛있을 일만 남았다는 듯 자신있게 휘두룬다.

그러고 나서 비비는 경건한 행위가 끝나면 넉넉하게 한 입을 크게 떠먹는다.

콧소리가 나오면서 눈이 질끈 감긴다.

역시 비빔밥과 비빔국수는 배신하지 않아.

어쩌면 오늘의 변덕이 좋은 결정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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