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텔라 Mar 06. 2021

이국의 정취

이레카야자와 라탄수납장 그리고 하도(下道)리

이국(異國)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나는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해변 그리고 높게 뻗어 오른 야자수를 떠올린다. 그리고 어느새 언젠가 멋지게 입어보리라 소원했던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누워 있다. 알고 있는 몇 가지 색깔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빛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머릿속을 텅 비운 채,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머리를 쓰다듬는 가벼운 바람을 느끼며 부드러운 모래로 발가락을 간질인다.


 20년 전, 일본 남부를 여행할 때 꼭 제주도 시골 여행을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돌담이며 키 작은 나무들과 따뜻한 겨울바람, 자연환경과 기후가 그랬다. 현지인도 대충 보기엔 나랑 비슷해 보였으니까. 이국의 익숙함은 편안함보다는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아소산 정상에 끓어오르는 온천





 버스를 타고 달려가, 황량한 산길을 따라 올라간 아소산 정상. 달걀이 썩는 듯한 유황 냄새와 구름 같은 연기를 폴폴 뿜어내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에메랄드빛 화산수는, 생생하게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며 경이로운 이국의 감동으로 남았다.


산기슭 온천으로 가는 길, 일행과 조그만 경양식 음식점에 들어가 영어로 주문했다가 주인의 뭇매를 맞은 황당하고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배고파서 들어간 식당에서 훈계를 당한 일은 이국의 불쾌함으로 남았다.


 이국은 '낯섦'과 '다름', '설렘'과 '두려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하는 곳이다. 보통 방학이나 휴가에 여행을 갈 때, 이국은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즐거움, 기대감이 최고로 고조된다. 하지만,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고 위로받으러 간 곳에서 예기치 못한 실망과 불쾌감, 두려움을 맞게 되기도 한다. 그래도 별 탈 없이 일상으로 돌아온 후, 그 모든 일이 추억이 되고 고단한 일상을 지탱해 주는 활력소가 되어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가.



늘 바다가 그립다.

언제부터인지 바다가 늘 그리운 거다.


5년 전 여름 휴가철, 제주도 해변에서 아이들과 1박을 한 것이 계기였을까?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물놀이도 좋았지만, 해 질 무렵, 물놀이 인파가 하나둘 빠져나가고 한적한 모습을 되찾은 해변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해는 넘어가 슬며시 어둑해질 무렵, 야트막한 바닷가 물속을 거닐었다. 해변으로 들어오는 물을 따라 은빛 물고기 떼가 물결인 듯 춤을 춘다. 물결 아니고 물고기라며 종종 물 위로 점프를 한다. 그 고요한 바다의 생명과 가슴을 가득 채우는 자연의 빛깔과 음악을 잊을 수가 없다.

 

잔잔한 파도 소리 노래 삼아 아이들과 밤마실 하다 만난 발발이 게들. 불빛을 비추면 눈이 부신지 꼼짝없이 얼음이 되고 마는 녀석들. '하도(下道)'리, 인적 드문 그 여름 해변에서 이국의 정취를 느꼈다.


서귀포에서 바라본 한라산




내가 자란 곳은 바다가 멀지 않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저 멀리 반짝이는 바다와 섬이 보였다.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면 어디에서도 보이는 웅장한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봄이 되도록 봉우리에 하얀 눈이 보이던 한라산. 그래서 난 산을 더 가까이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철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 허우적대다 죽을 뻔한 뒤로 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가 고향인 '엄마 유전자'의 힘이었을까? 분명 겁도 없이 깊은 바다를 건너 맨손으로 섬까지 헤엄쳐간 엄마 유전자의 힘이었다고 믿는다. 두 번의 시도 끝에, 아홉 달 넘게 수영을 배우며, 난 물 공포증을 이겨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편안하고 자유롭다. 바다에 드러누워 하늘이 눈이 부셔 실눈을 뜬다. 팔은 살살 움직여도 좋고, 양팔을 벌려 온몸을 바다에 내맡겨도 좋다. 바다에 들어가면 아이처럼 마냥 좋고 신이 난다.

 

발로 모래를 헤집어 조개도 찾아본다. 운이 좋으면 발가락에 조개가 걸려든다. 발가락으로 꼭 붙들어 손으로 가져가면 끝! 가끔 모살게가 숨어 있어 화들짝 놀라지만 재빨리 발을 떼면 그만이다. 바다가 나를 감싸고 있을 때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바다에 폭 안긴 채, 집에 가자고 재촉하도록, 해가 지도록 놀아야 한다.

 

이국은 나에게 온전한 휴식이고 설렘이고 즐거움이다. 열심히 부지런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고 보너스이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되어서 마음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도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휴가까지 기다림이 지루해 사계절 이국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아쉬운 대로 집에 커다란 이레카야자나 라탄 수납장을 들여도 좋다. 부담 없이 한두 가지 이국의 소품을 집안에 들이는 것만으로도 행복과 만족감에 미소 지을 만큼 우린 얼마나 쉬운 존재인가. 한 가지, 나처럼 생명을 세심하게 다루는 기술이 없다면 야자수는 비추(非推)한다.


굳이 돈 들이지 않아도, 창밖으로 눈이 평평 내리는 어느 겨울날, 유튜브 채널의 뉴욕 재즈를 틀어놓고, 베란다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반가운 눈을 감상하는 것도 이국(異國)을 만나는 멋진 방법이다. 철 따라 변신하는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때마다 예기치 못한 이국(異國)을 선물한다.

 

단, 일상에서 선물 같은 이국(異國)을 만나려면 사소하지만 숨어있는 것들을 눈에 담아 마음이 울리게 하는 '설렘의 기술'이 필요하다.



비 온 뒤 빗방울 태운 선명한 초록 잎, 바람에 잠이 깬 숲의 웅성거림, 길가 야생화 작은 꽃잎 하나를 수놓은 수많은 빛깔. 이국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방학이 되길 기다려 갈망하듯 이국을 찾는다. 이국은 숨 막힐 듯 돌아가는 일상에서 탈출의 방편이 된다. 꼼짝없이 멀리 못 가게 되면, 대신 어릴 적 내 집으로 날아간다.

  


언제든 원하면 예쁜 바다를 보고 만질 수도 있는 나의 고향. 이국의 기억으로 남은 그곳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비행기를 예약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이국의 설렘은 실감(實感)이 되어 기다린다.

 

 

올겨울에도, 두고 온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그리운 이국의 바다를...


작가의 이전글 겨울을 좋아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