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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Mar 06. 2021

엄마, 나 무서운 꿈 꿨어.

"엄마, 나 무서운 꿈 꿨어"   


가끔 큰 아이가 공포스러운 꿈을 꾼다. 쫓기거나 괴물과 맞서 싸우고,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고 반대로 죽기도 한다. 꿈이 너무 생생하고 사실 같아서 잠에서 깨면 지치고 많이 힘들어한다. 겉으로 센 척 강한 척해도 세 아이 중 제일 여리고 쉬이 흔들리는 아이. 천성은 타고나는 거라지만 아이가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은 소리 없이 소용돌이친다. 엄마와 아빠는 첫 아이에게 미숙하고 부족했다. 부모의 불안과 상처는 고스란히 딸에게 투사되어 오래도록 그 위상을 떨치는 중이다.      


딸에게 말 한마디, 끼니 챙기는 거며 부족한 게 없는지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아니 눈치를 보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순간엔 ‘이렇게까지는 하지 말아야지, 이건 정확히 알려줘야지’하고 굳은 결심을 한다. 하지만 딸아이가 무심한 척 내 마음을 저울질하는 동안 딸의 엄마는 속으로 갈팡질팡 힘겨루기를 하곤 한다. 


‘안쓰러워 보상해주려는 마음 때문에 딸에게 독이 되는 결정을 내려서는 안돼.’ 

‘그러지 말아야지, 이건 아니지.’ 


그러다가도 어느새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하는지 갈등하는 나를 발견한다.      


하루는 지독한 꿈을 꿨는지 아침에 일어나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딸. 마음의 짐, 괴로움, 미움 등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그 마음을 받아 주기만 해도 될 것을, 속도 없이 ‘네가 이런 건 이해해. 넓게 생각해.’라며 말을 보탰다. 엉엉 통곡하며 울부짖는 딸. 오래도록 뒤틀린 일은 저 혼자 뒤틀리고 말 것이 아니다. 슬픔, 분노, 미움은 꼬리를 물고 엮여 연쇄반응을 일으켜 가지를 뻗어 자라났다. 여전히 마음이 지옥인데 섣부른 훈계라니......      


아직도 멀었다. 매일 실수하며 매일 깨닫고 매일 ‘찐’ 엄마가 되는 연습을 한다. 이럴 때 ‘남의 편’이 도움이 되어주면 좋을 텐데, 엄하고 굴곡진 가정에서 자란 남편은 나보다 더 아빠 노릇이 서툴고 실수가 잦다. 인연의 끈을 타고 내려와 나와 남편의 품에 안긴 ‘보물’ 같은 첫아이는 부실하고 모자란 부모의 실수와 잘못으로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치고 상처 나기 일쑤였다. 



울먹이는 아이의 말을 듣고 대화를 하며, 어떻게 마음을 풀어줘야 할지 이유를 짚어 보았다. 최근에 큰일은 없었지만 한두 가지 영향을 끼칠만한 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평소 리듬이 깨질만한 일이라면 그게 씨앗이 되어 그 아일 흔들어 놓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딸은 마음속 ‘불신(不信)’을 송두리째 뽑아내려고 애쓰는 중인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딸을 괴롭히는 존재들. 딸은 그것들과 목숨을 걸고 맞서서 싸우고 있었다. 


“죽자 사자 덤비는 걸 막아내느라 너무 힘들었겠다. 그래도 엄마가 보기에는 긍정적인 사인(sign)으로 보이는데...... 앞으로는 무서운 꿈도 덜 꾸고 점점 더 좋아질 거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 분석 같은 것은 공부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앞으로 좋아질 거란 나의 믿음이 전해진 걸까? 딸아이도 울음이 잦아들었다.    

      


                                                                                        





빼꼼히 열려있는 문, 인기척을 하고 들어간 딸의 방. 괜찮은지 물어보는 말을 꺼내다 어질러진 책상 위로 시선이 갔다. 물 잔 두 개, 간식 접시와 휴지, 책, 화장품 등을 정리하다 갑자기 그 말이 튀어나왔다.


“미안해. 엄마가 좀 더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미처 신경을 못 썼어.” “엄마가 사과할게. 엄마가 많이 미안해.”   

   

 ‘미안해’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러 간 건 아니었는데...... 

손 끝에 힘을 주고 책상 얼룩을 지우다, 명치 깊숙이 쾌쾌 묵은 진심이 날숨을 타고 기어 나온 거였다. 나조차 적잖이 놀랐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아도, 멈칫하며 돌아서는 딸아이 마음이 느껴졌다.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봤을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럴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단지 빙판길 같은 딸아이 마음 한구석, 얼음이 녹고 맨땅이 드러나 맘껏 싹을 틔울 수 있게, 단단한 줄기로 자라 꽃도 피우고 향긋한 열매도 맺을 수 있게, 새하얀 염화칼슘 한 수저쯤 올려놓았길 바랄 뿐이다. 그러기를 마음 깊이 ‘기도(pray)’할 뿐이다. 온 마음을 다해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마음에 새길뿐이다.  


‘기도’하면 다 이루어질 것 같다. 아니, 다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특정 신을 향한 종교적 믿음에서 나온 ‘기도’는 아니다. ‘희망(hope)’하고 ‘바라(wish)’는 대신 늘 ‘기도(pray)’한다. 나는 오늘도 딸을 위해 온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딸을 그리며 딸을 향한 뜨거운 사랑, 용기, 감동을 담아 나의 마음을 전한다.      



‘원하는 대로 당당하게 살아! 

슬픈 일, 궂은일이 있더라도 절망을 바꾸어 희망의 빛을 비춰야 해! 

그게 본래 너의 모습이야! 사랑해 나의 딸! 

엄마가 영원히 사랑하는 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게!

엄마가 언제나 기도할게!’     



‘나를 믿고 나에게 온 나의 딸이 행복해야, 그래야 나도 행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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