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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라 Aug 15. 2023

회상 1

몰입의 기억

교사임용 시험 결과 발표의 그 날을 기억한다. 하필 설날이었다. 중요한 시험의 결과는 왜 꼭 설날을 즈음해서 나오는 것인지...  다수의 마음이 괴로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공감하며 국민청원이라도 넣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합격자 발표는 명절은 지나고 해야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이다.


서울 신문에 합격자 발표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교직에 계신 친척 한 분이 신문에 난 그 지면을 아빠께 건네었던 모양이었다. 친가 가족들이 있는 북 제주로 1시간 넘게 달려가 뵌 적도 없고 기억도 못하는 조상님께 무사 무탈함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종일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동안 곱게 접힌 신문 지면은 아빠 주머니에서 기쁠 지도, 슬플지도 모를 소식을 숨죽여 새기고 있었다. 어두워진 시간 집에 도착해서야 종일 담소와 안주로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아빠는 주머니에서 고이 접어둔 합불 소식지를 조심스럽게 꺼내셨다.


차마 그곳에서는 꺼내기가 어려우셨다고 한다. 두근거리는 맘을 다독이며 종일 마음 졸이셨을 아빠. 전혀 내색도 않으시고 집에 와서야 펼쳐 보신 거다. 남의 일인 양 수험번호도 안 챙기고 무념무상으로 있던 나 대신 얼마나 애가 타셨을까. '그냥 이번엔 시험 삼아 보는 거지만 이왕 합격하면 더 좋고' 늘 이런 말을 했었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말한 대로 현실이 되었다. 


드디어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합격을 확인한 순간, 얼싸안고 펄펄 뛰며 기뻐했던 온 가족의 모습을 기억한다. 맏딸이 사회에 첫발을 제대로 들이기 위한 쉽지 않은 관문을 넘었다는 사실에 부모님께 그 기쁨은 남달랐던 것 같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기로 몰입한 시험공부였다. 대학 다닐 때 교육학 책도 사고 학원에도 다녔지만 막연히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 당장 합격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안일한 생각이 가득했었다. 생각대로 당시 거주하던 이문동 보습학원에서 잠시, 1호선 전철을 타고 달려 중계동 학원가에서 중학생을 가르치며 시험공부를 짬짬이 해오고 있었고, 어느 날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본 때를 보여줘야겠다며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참 감사한 해고 통보였다.


학원 경력을 호봉에 인정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다시 찾아갔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복수한 것 같은 통쾌함과 자존감 회복이라는 두 가지가 당시 감정의 정체였을 거다. 사실 그 일이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독한 마음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 그만 방황하고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계기가 되었던 결정적 사건이었다. 거절이라고 하는 당시에는 엄청난 경험이 내 마음속에서 존재감이 꿈틀거리도록 했던 거였다.


결국은 그 일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공부하는 내내 기분이 상당히 좋았고, 짧은 기간이지만 이왕 하는 김에 합격이라는 영광이 오게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몰입했다. 아니면 내년에 더 공부하면 되니까 라는 생각으로 당시 최선을 다하되 부담없이 즐기자는 자세로 공부를 했었다. 새벽에 집중이 가능한 시간까지 공부하고 늦은 오전에 깨어 아점을 먹고 독서실로 갔다. 저녁을 먹으러 잠시 집에 들러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을 깔깔대며 시청하고 곧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주중엔 독서실, 주말엔 학원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사용하기에 적합한 모드로 계획표를 짰다. 공들여 노력한 과정이 결실을 맺어 보답으로 돌아와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  목표를 정해두고 그렇게 즐겁게 공부했던 경험은 그 이후로 아직은 없는 듯하다.


독서실에는 주로 중고생이 많이 있던 걸로 아는데 한 번은 아침에 갔더니 내 자리에 누군가 낙서를 잔뜩 해놓았다. 한 명이 아닌 여러명이 그런 듯 했다. 당시 화장기 없이 포니 테일을 하고 다니던 때라 내가 또래로 보였을 만도 하다. 꼬맹이들 관심이 귀엽다 생각이 들면서도 당시엔 혼자 자취를 하던 때라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일면 일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이런 식의 지나친 관심은 상대방에게 결례이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자리를 다른 층으로 옮겼던 기억...


사실 난 지난 일은 잘 기억을 못 하는 편이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이렇게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각인이 될 만큼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몰입의 기억으로 존재한 그 시간은 나에게 성공이라는 긍정적인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내 삶에 전환점이자 자존감을 세워 준 기념비적일이었다. 하지만, 곧 나에게 닥칠 현실은 합격의 그 순간만큼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라는 현실은 결코 녹녹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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