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도움이 불편한 이유

타인의 선의의 마음이 불편하게만 받아들여진다면

by 표현

나에게는 고쳐야 하는 버릇 같은 게 있다. 언제 이 버릇을 갖게 된지도 모르겠지만 고쳐야 한다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다들 그런 버릇 하나쯤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손톱을 물어뜯는다거나, 자리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다리를 떠는 행동 같은 것. 그래서 누군가 그걸 발견한다면 고치라고 말해주는 그런 행동들. 나는 흔히 드러나는 행동 같은 것이 아니라 타인이 발견해주지 못하지만 내 머리가 고치라고 말해주는 버릇이 있다.


이상하게도 난 누군가가 날 도와주려고만 하면 불편함을 가장 먼저 느낀다. '지금 내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나?', '내가 안쓰러운가?' 하는 선의에 대한 감사가 아닌 의심의 질문들이 감사함이 들어올 자리조차 내어주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버릇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선명하게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깨달은 순간 왜 그런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답이 분명히 내려지지 않는게 문제지만.


내가 이 버릇을 알아차린 건 최근이다. 갑작스레 경제적 상황이 나빠졌고, 맘편히 4년동안 대학을 다닐 수 있겠단 생각이 들지 않아 휴학을 결정했다. 가족들에겐 괜찮다고 말했지만 한편으론 막막했다. 휴학을 했지만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면 남들보다 늦춰지기만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나에게 가까운 친척이 해결방안이라 생각하는 의견을 말해주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고마움보단 불편함이 앞섰다. 참... 어쩌면 열등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말하는 해결방안도 그렇게만 다가왔다. 삐딱하기 짝이 없었다.


도움이라는것이 참 그렇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때 누군가 손 내밀어주길 바라면서도 말하지 않아도 손을 내밀어 줬을때 당혹감이 밀려온다. '말도 안했는데 보기에 불쌍해 보인거야?' 라는 편협한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내 열등감이 타인의 선의조차 못보게 눈을 가린것이겠지. 물론 정말 악의가 섞인 선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순수하게 내민 손 조차도 뿌리치진 말자.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자. 이 못된 버릇을 어서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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