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졸업 후 두번째 직장 근처로 이사한 뒤, 나는 근처 한인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번째 그 성당에 간 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미사 후 청년들끼리 저녁을 먹으려고 성당안에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뉴 페이스’를 발견한 동생이 (지금의 남편) 서루른 한국말로 나에게 다가와 성당에 처음왔냐고 물었다. 새로운 동네에 아는 것이 없던 나는 동생과 이런저런 말을 하게 되었고 이야기 한지 15분쯤 지났을까, 그가 나에게 집도 가까운것 같은데 만나서 밥 한번 먹자고 했다. ‘설마 진짜 연락하겠어? 그냥 이야기 끝내기 쑥쓰러우니까 전화번호 한번 물어본거겠지’ 하며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 다음날 동생은 연락했고, 그로부터3-4일 뒤 우리는 Manhattan Beach에서 첫 데이트를 했다.
해질 무렵 주황빛의 따뜻한 햇빛을 유독 좋아하는 나는, 그날 직장에서 좀 지쳤었던 걸로 기억한다. 퇴근 후 혼자 Manhattan Beach에서 앉아 파도와 석양을 보다 갑자기 나는 그 동생이 생각났다. 혼자 있으니 맨하튼비치로 나오라고 문자를 보내보았더니, 이내 30분내로 달려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해변가를 걸으며, 또 근처 Pub에 앉아 꽤 많은 이야기들을 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녹아들었고 우리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다음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그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게 확실히 느껴졌다. 두번 째 데이트 몇일 전 그가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며칠날 저녁에 레스토랑을 예약해놓았으니 그냥 그곳에 오면 된다고. 해지는 석양을 좋아한다고 몇번 강조했던 터라 그가 당연히 일몰을 따스하게 비출 수 있는 넓은 창이 있는 레스토랑일 것이라 생각했다. 왠걸. 그 장소로 직접 가보니 햇빛은 거의 들지 않고 사람들과 담배연기 그리고 요리 연기가 가득한 일본 이자까야식 레스토랑이었다. 사람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Bar쪽에 앉아서 팔을 조금만 펼치면 옆사람의 팔이 닿아서 움직임을 조심해야 했었다. 서로를 알아가고싶은 호기심이 가득한 그 때에, 쳐다만 봐도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수 있는 그때에, 그 남자는 그런곳을 예약했다. 아! 이때 이 남자가 생각보다 눈치가 없다는 것을빨리 눈치챘어야 했었다.
음~.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래서 두번째 데이트 장소로 사람과 연기가 가득찬 곳을 예약한 눈치없는 그도, 일본 사람들만 찾아서 사방에서 일본어만 들려오던 그 이자까야 레스토랑도 다 용서가 되었다. 충분히 맛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입에서 사르르 녹는 부드러운 에그푸딩을 디저트로 먹고 있을때 그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너가 일몰이 보이는 레스토랑을 예약할줄 알았는데 왜 이곳을 선택했어?” “아! 나는 그냥 맛있는것만 생각했거든. 바다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저녁바다 보러가자~ 일몰은 없지만 그래도 바다보러가자!”
어머. 이남자 나를 위해 지금 바다보러 가자네! 내심 감동하며 그의 차에 탔고 그는 깜깜한 저녁 근처 해안가로 운전 하기 시작했다. 도착하고나서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디 바다가 있는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여기 잔디언덕 조금만 너머가면 나와”. 기대반 의심반으로 언덕을 조금 넘었는데도 도무지 나는 어디가 바다인지 알수가 없었다 (미국은 한국만큼 가로등이 많지도 밝지도 않다). 그가 나를 위해 선택한 장소는 역시나 내 허를 찔렀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도무지 내 눈으로는 바다가 어디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여기 난간에 기대서 눈을감고 들어봐. 적어도 귀로는 바다가 바로 앞에 있는걸 느낄수 있어”. 자세히 보니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것이 희미한 달빛 아래로 슬쩍슬쩍 비추어 왔었다.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난간에 기대어 눈을감고 바다를 있는 그대로 느꼈다. 짠내음내를 품은 바닷바람이 내 온몸을 휘감으며 귀로 거대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것.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으로 바다를 느껴보는것은 생각보다 참으로 편안하고 멋진 일이었다. 그때 그가 나에게 팔을 벌리며 물었다. “Would you like to kiss me?”
‘뭐? 지금 니가 다가와서 키스를 해도 모자랄판에 나보고 너한테 키스하고싶냐고 묻는거냐?’ 어이 없음과 황당함이 휘몰아쳤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어이가 뺨을 때렸다). 그리고 이남자가 생각보다 눈치가 더 없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가 당황하고 부끄러워 할까봐,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있지, 우리 너무 빨리 가지말자. 언젠가는 이 순간을 정말 그리워할 날들이 올텐데, 우리 이 설레는 순간들을 더 오랫동안 가슴에 간직해보자”. 그리고 그가 말했다. “그래. 나는 너 존중해”. 그런데 그때 그가 깜짝놀라며 깜깜한 바닷공기 사이로 반짝이는 그 무언가를 가리키며말했다. “잠깐! 저게 뭐지?” 나는 예쁘게 반짝이는 반딧불들이 우리앞에서 빛을 내뿜는거라 생각했다.
“Oh, Shit, they are racoons! (야 저거 너구리야)” 우리가 밤하늘 아래 바다를 느끼며 키스를 할까말까 고민하고 있을때, 저 난간너머로 너구리때는 계속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 두마리가 아니라 7-8마리 정도의 너구리 떼의 눈빛이 밤하늘 아래에서 총총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너구리 떼를 확인하자마자 아무말도 없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그냥 냅다 불빛이 있고 사람이 보이는 곳으로 뛰었다. 다행이 너구리 떼는 난간 너머로 넘어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우리가 뛰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는듯 했다. 우리는 너구리에게서 떨어져 안정권에 있음을 확인한 후, 그제서야 다시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우리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