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예술 쪽으로 진로를 꿈꿨던 내가 상상한 미술학도의 모습은 한쪽으로 약간 삐뚤게 베레모를 쓰고 한 손에는 두꺼운 미술 서적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디자인을 전공한 동생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실상은 야작으로 날 새는 건 기본이고 집보다 학교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 편한 옷차림으로 학교에 가는 모습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나의 그 터무니없는 상상 속 모습을 계속 이야기하자면 모든 미술학도들은 미술사를 배울 줄 알았다. 그래서 막연히 미술사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진로는 미술과는 먼 다른 곳으로 향했고 그 마음은 점점 잊혀 갔다.
2014년 여름, 엄마와 패키지 투어로 유럽여행을 갔다. 유럽 여행 일정 중 가장 기대되었던 곳은 프랑스에 위치한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가장 많이 본 모나리자도 봤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 콘서트장 2층에서 자그마해진 내 가수를 보는 듯한 거리에서 봤다. 회화 작품이며 조각 작품이며 모두 웅장하고 아름답고 멋있었지만 어떤 의미로 만들어진 작품이고 어떤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인지를 잘 알지 못하니 충분한 감상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그대로 한국으로 들고 와 미술사 책들을 이것저것 샀지만 읽지는 않고 책장에 고이 모셔뒀다.
어느 날, 역사 공부 모임 단톡방에 오랜만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미술사 책 읽기 모임을 개설할까 하는데 참가하고 싶은 분이 있는지 우선적으로 물어본다는 메시지였다. 어쩜 이렇게 관심 있는 주제만 쏙쏙 골라 모임을 만들어주시는지 날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만 맞으면 참여하고 싶다고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답장을 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로 미술사를 읽어보는 모임이 시작되었다. 미술사하면 어렵고 무거울 줄 알았는데 책의 저자인 양정무 교수님이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책 내용을 체계적으로 한 번 훑고 각자의 생각을 나눠보는 자리도 가졌다. 격주로 모임을 가졌고 돌아가며 한 사람씩 그날 읽을 부분의 내용을 정리해 모임을 이끌어갔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이렇게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것도 알아가고 각자의 의견을 들으며 여러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러웠다. 혼자 읽기에는 어려웠을 두꺼운 한 권 한 권을 지나 내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았던 작품들이 나오는 4권을 읽을 때는 그때 봤던 작품들과 느낌이 다시 떠오르면서 너무 신나게 읽었다. 이제라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작품들의 배경과 의미를 알 수 있어 기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걸 알고 루브르 박물관을 갔다면 완전 새로운 시각으로 좀 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4권 중세 시대를 지나 5권까지 갔던 미술사 책 읽기 모임은 아쉽게도 코로나로 잠정 중단되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 종종 이야기를 나눴던 분이 모임이 중단되고 두 달 정도 뒤 개인적으로 카톡이 왔다. 혹시 모임이 언제 다시 열리는지 아냐는 카톡이었다. 아무 이야기가 없던 터라 건강 조심하며 코로나가 끝나면 꼭 다시 모임에서 보자는 답을 보냈고 그 답은 여전히 유효한 채로 아직까지도 모임은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만약 다시 모임을 하게 된다면 1권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지만 재밌고 유익했던 미술사 모임이 하루빨리 다시 열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