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헤이즐’은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던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온 그날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바로 서점으로 가 원작 소설인 ‘The Fault in Our Stars’ 원서를 구매했다. 영어 공부 겸 읽기 위해서 샀다기보다는 그저 소장용으로 샀었다. 시간이 흘러 회사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쯤 시험 영어가 아닌 자기 계발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책장 속 자기 자리 그대로 지키고 있던 이 책이 눈에 들어와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완벽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영화를 보고 읽는 거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원서를 한 권 읽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마침 그때 한창 책 읽는 게 좋아서 책을 많이 읽을 때라 영어 공부도 원서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로 영어 원서 읽기에 관한 여러 방법들을 찾던 중 ‘바른 독학 영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홀수 달마다 원서 읽기 모임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모임장인 유튜버가 매일 읽을 분량을 정해주고 분량마다 필요한 단어들을 정리해줘 단순 책 읽기에 그치지 않고 공부도 될 것 같았다. 거기다 무료였다. 무료라는데 해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원서 읽기 모임의 첫 책은 ‘The Giver’로 원서 읽기 초보자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고 했다. 이 책도 영화화된 적이 있어 영화를 보고 궁금해서 이 책을 읽는 분들도 많았다. 책의 수준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내용도 굉장히 흥미로워 매일 정해진 분량보다 많이 읽어 한 달보다 일찍 책을 완독 했다. 한 달만 제대로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내가 너무 잘 따라가서 스스로한테도 놀랐다. 스스로한테 잘했다고 말하는 걸 어색해하는 사람인데 생각보다 영어 실력이 괜찮은 거 같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 번 더 하고 싶었다. 그 뒤로 두 권의 원서를 더 읽었고 총 3달을 한 번도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갔다. 달마다 조금씩 올라가는 수준에 읽는 속도는 점점 더뎌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는 내 모습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해의 마지막 원서 읽기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높은 수준에 완독을 못 할 것 같기도 했고 다른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어 원서 읽기는 총 3권의 완독으로 끝을 냈다.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는 쉽게 포기하고 도망친다고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하지만 원서 읽기를 했던 저 시기만큼은 나는 꾸준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가장 잘 믿어줬던 때였다. 그런 때가 있었음을 잊고 여전히 나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지내왔는데 원서 읽었던 때를 다시 떠올리며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내 뒷머리를 쓰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