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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Jan 17. 2022

손절이 필요해

손절을 잘 하고 싶다

읽씹





호스텔 마당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외국인 한 명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그의 깜짝 놀라는 소리에 책에서 눈을 뗐다. 비가 온 직후라 그런, 불빛을 중심으로 나방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는데, 졸고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잔혹한 킬러로 활약하게 되었고, 나도 그 희소한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는 캐나다 출신의 이십 대 초반 아이였다. 그는 자기 얘기를 쉼 없이 이어갔다. 스쿠버 다이빙이니, 스키 같은 즐겨하는 레포츠와 여행 이야기, 캐나다의 폭등하는 땅값, 그곳에서의 생활,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피로해지고 있었다. 일방통행인 대화가 주는 피로함이었다.  거기다 그 아이는 모국어, 나는 외국어. 그 아이는 즐거울지 몰라도 나는 즐겁지 만은 않았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방으로 들어가 쉬고 싶어졌다. 작별을 고했다. 근데 그 아이가 페이스북 계정을 알려달라고 했다. 알려줬다. 그러자 그 아인 바로 검색을 하곤, 친구 요청을 했다. 이런 실시간 진행이 부담스러운 건, 그가 나에게 호감으로 다가오지 않아서겠지?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친구를 맺었다.   





방에 들어와 잘 준비를 하는데,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다 다친 어깨가 쑤신다. 와서 마사지를 해 주겠니? 이런 걸 물어봐서 미안해.





뭐 생각할 게 있나?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 더 나가지 말고, 그리고 정확히 표현하자, 그렇게 싫다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스마트폰 전원 버튼을 꺼버렸다. (당시 내 핸드폰은 충전에 문제가 있었고, 보조 배터리의 문제인가 싶어 보조배터리를 새로 구입했는데도 충전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날을 위해 스마트폰을 쉬게 해야 했다)




다음 날, 나는 핸드폰을 켰다. 어제 확인하지 못한 그의 메시지가 보였다. 방이 너무 넓다. 넘어와서 같이 자지 않을래? ...





술도 안 먹은 맨 정신으로 보낸 메시지에서 차라리 알코올 성분을 발견하길 바랬다. 너 때문에 '선의'의 다른 사람까지 내가 색안경 끼고 보게 될까 봐, 그러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게 베스트일까,를 고민했다.




나의 선택은 '읽씹'이었다.

읽었다, 그리고 답장할 가치를 못 느꼈다. 안녕 뭐 이런 의미였다.






대신 그 메시지는 캡처해 두었다. 나중에 유명해지면, 누가 알아? 이 메시지가 발목을 잡게 될지, 나 같은 소시민이 취할 수 있는 복수 한 방은 남겨두자. 그런 애가 제 정신인 척 연기할 때 본색을 날 것 그대로... 자승자박 전술을 써 주겠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한참 후, 페이스북에 접속했는데... 그 아이가 날 차단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대화가 유쾌하지 못했고, 그래서 일찍 방으로 들어갔고, 그 후 페이스북 대화도 내가 먼저 로그아웃했다. 그 다음은 읽씹...어찌 보면 당연 손절인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화가 났다.






그 후 나는 몇 번의 손절을 더 당했고, 또 내가 누군가를 손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변이 없는 한 손절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또 내 인생에 등장할 것이다.






나는 주식 투자를 꽤 오래 했다.  그리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지난 시간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손절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손절을 실천하지 못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듯 그다지 등락 없는 가격 변화를 주식 투자에도 적용했고, 그렇게 내가 판단한 바닥은, 지하 1층, 2층, 3층... 한없이 침전하는 모습으로 내 판단 실수를 잔혹하게 확인시켜줬다. 바닥이니까 오르겠지, 너무 싸잖아, 오르겠지, 조금만 인내하면 나아지겠지, 가 아닌, 큰 그림, 추세를 봤어야 하는데, 한 마디로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그렇게 몇 번 커다란 실수를 하고, 주식 시장을 보니, 주식 시장엔 설령 코스피지수가 떨어지더라도 오르는 주식이 더 오르고, 떨어지는 주식은 한 없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기업 가치가 대외적인 변수로 저평가된 거라면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제 가치를 찾아 갔다. 참고로 그렇게 손절 못 친 주식 중 하나가 현재 -90%다.  수업료 치자, 토닥토닥





나는 주식 외 부문도 손절에 관해서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수 많은 징후와 추세가 있는데도 근거 없는 낙관적인 전망을 이어가면 정말 최악의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방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내 선택을 믿고, "페이스북은 안 해요."라고 거절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 아이와의 만남을 최소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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