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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Jan 16. 2022

미용실 쿠폰을 다 채웠다

3만원의 의미

머리가 엉망이었다. 주말, 미뤘던 미용실을 기필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네이버 지도 앱을 통해 첫 고객 50% 할인 프로모션을 하는, 후기도 1,000개 가까이 있는 A 미용실에 예약을 넣었다.


오전에  찾았는데도, 매장은 이미 손님으로 붐비고 있었다. '주말, 다들 미용실에 있는 건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하나?' 그런 하릴없는 생각을 하며  십 여분을 대기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차례. 디자이너와 상담이 시작됐다.


- 염색하신 적 있으세요? 펌은 언제 마지막으로 하셨나요?

- 염색은 안 한 지 꽤 오래된 것 같고, 한 3-4년... (맞나? 염색한 걸 기록해놔야 하나?) 펌은 아마 1년 전쯤 한 듯 싶어요 (맞나? 아마 맞을 거야)


상담 끝에 나온 견적은 16만 원.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리곤 네이버 앱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내가 잘못 봤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일반 펌 6만 원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하고 예약을 했는데, 이 차이는 무엇일까? 근데 검색 결과는 동일했다. 의아함을 가지고 그러나  '왜 이렇게 차이가 나나요?'라는 진짜 궁금증은 드러내지 않은 채 디자이너의 설명을 들었고, 솔직히 '아하'라는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편하게 가자, 라는 마음으로 타협점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겨울 이벤트에 첫 고객 프로모션을 적용해서  10 만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그리곤 '미용실만 오면 이 덤터기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비단 나뿐일까?'라는 미용실을 찾을 때마다 드는, 하지만 너무 익숙해진 질문을 또 던져봤다. 그러다 '뭐 그런 답 안 나오는 질문이 한 둘이니?  머리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라는 자기 합리화를 거쳐 '미용실에서만 볼 수 있는 잡지나 보자', 는 마음이 돼 버렸다.



잡지를 보는데, 샴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샴푸 자세를 취했는데, 스태프가 마스크를 건네줬다. '엥? 나 마스크 쓰고 있는데?' 상황 파악이 안 되고 있는 나에게 스태프는 "마스크가 물에 젖을 수도 있어서요"라고 말했고, 나는 그제야 마스크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시대, 미용실에선 마스크도 교체해야 하는군, 아주 번거로워.'라고 생각했다. 샴푸를 하는데, 물 온도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데다 일정한 온도였다. 음, 편안한데 거기에 샴푸 하는 손길에서 정성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샴푸를 마치고, 일어서는 데 눈가를 덮은 천조각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다. '음... 이전에 내가 다니던 미용실은... 대체...'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었다.



디자이너와 머리카락의 기장을 결정하고, 본격적인 커트가 시작됐다. 근데 '페이스 마스크'라는 걸 이마에 붙여줬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묻지 않도록 하는 조치 같았다. '우와, 신기해.' 처음 보는 도구에 감탄했다.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촌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거든. 그리곤 궁금했던 걸 디자이너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 샴푸 해주는 건, 초보 단계에서 하는 거예요?

- 맞아요

- 얼마 동안 해요?

- 사람마다 다른데, 보통 2년 정도

- 우와, 2년이 나요?.. 그렇게 길게요... 아까 저 샴푸해 준 스태프, 잘하더라고요. 압도 적당하고, 편안했어요

- (웃음) 그 친구 거의 2년 째에요. 곧 승진(?) 해요

- 축하해요




안경 닦으라고 챙겨준 티슈


중간중간 대화를 나누며 롤을 말고, 중화를 하는데  안경에 혹시 액이 묻지 않았는지 티슈를 건네주었다. '우와' 나는 또 감동을 먹었다. 동남아 2달 여행하고, 한국 돌아왔을 때 진짜 '우와 우와'를 입에 달고 다녔는데 그때가 떠올랐다. 또 세척이다. 근데 얼굴에 마스크도 모자란 지 무릎에 담요까지 덮어 주었다. 거기에 머리 마사지까지... 나는 또 이 지점에서 이전까지 내가 다니던 미용실을 아니 떠올릴 수 없게 되었는데... 확실한 건 미용실에서의 시간이 평상시와 다르게 느리게 흐른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는 것이었다. 미용실에서 시간은 느린 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이전에 내가 다니던 미용실은 이런 곳이었다. 집 근처에 위치한, 1층 아니고 2층에 자리한 ,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운 고급스러움과 거리가 먼,  대신 30,000원이라는 숫자를 크게  여러 번 강조한 프랜차이즈 미용실. 그 미용실을 자주 지나치면서 저렴한 가격에 또 늘 붐비는 손님에  호기심에 찾았는데 그곳에서 쿠폰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착한 가격에 쿠폰 도장을 다 찍겠다는 이상한 도전이 더해져 진짜 쿠폰 한 장을 빼곡히 채웠다.  쿠폰의 노예(?)였다.  좋게 해석하면, 쿠폰의 도장이 차곡차곡 쌓이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나였다. 그렇게 한동안 그 미용실만 찾았다. 그리고 부연하면 쿠폰 한 장을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아주 아주 아주  길었다. 중간에 가게 브랜드를 변경할 만큼



보통 주말 조금 이른 시각, 나는 그 미용실을 찾았다.  한산한 분위기에서 조금 여유롭게 머리를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내 기대는 항상 기대에 머물렀다. 갈 때마다 손님과 스태프로 붐비는 현장이었으니까.  재래시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나는 그곳에서 항상 대기했고, 대기 후 자리에 앉으면 디자이너는 '아, 또 속았다'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했고, 그럼 나는 비록 3만 원은 아니지만 최고가도 아닌 중간 5만 원을 선택하곤 했다



그곳은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패스트푸드점과 공장 사이 어디쯤 되는 곳이었다. 하고 싶은 머리를 말하면, 바로 보조 스태프가 세팅을 했고, 세팅이 끝나면 어디선가  다른 고객의 머리를 손질하던 디자이너가 와서 거칠 것 없는 스피드로 작업을 마치고, 자취를  감추는. (그게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하이라이트는  머리를 감겨주는 부분, 매번 예상치 못한 드라마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런 식이다.  물의 온도가 들쑥날쑥할 때가 있는가 하면, 시종일관 차가운 물을 경험하기도 하고,  샴푸가 얼굴을 침범하기도 하고, 한마디로 능숙함과 거리가 먼 거침의 다양한 모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어서 '한 마디를 해야 하나?' 싶다가 '이 착한 가격에 이런 서비스까지 요구하는 게 맞나?' 내적 갈등을 겪게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나는 전반적으로 부품(?)처럼 나의 머리카락을 다루는 곳을 꽤 오래 다녔다. 그 가게에 대해선 더 궁금한 게 없는 그래서 '그래, 이만큼이면 충분하다. 그만 결별하자'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미용실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펌을 하고, 계산을 마치고, 문 하나만 열면  미용실을 나오는 데, 나를 담당했던 어여쁜 디자이너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 진짜 1년에 한 번만 미용실 찾으세요?

- 네(웃음) 한 번 짧게 자르고, 계속 기르다가 중간에 묶기도 하고, 좀  더 기르다 잘라야겠다 싶으면 1년 후가 돼더라고요 (웃음)







살면서 처음 들어본 생소한 질문을 받고, 나 역시 궁금해졌다. '어쩌다 나는 1년에 한 번 미용실을 다니게 되었을까?

분명 2-3달에 한 번 미용실이 찾던 시기도 있었는데, 근데 요몇년 정말 1년에 한 번미용실을 찾았다.'




........





공교롭게도 '요몇년'은 30,000원을 강조한 그 미용실을 다니던 시기와 일치한다. 나는 가게 전면을 가득 메운  3만 원의 심오한 의미를 쿠폰 한 장을 다 찍고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 기분이 되었다.





정리해보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돈 아끼고, 시간 아끼고, 거기에 건강한 모발까지

근데 여기가 끝 아니다.  이별 후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하다.


 



모든 건 다 의미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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