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다. 회사 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지하철에 올랐다. 회사를 벗어났는데 도통 회사 일을 떨쳐낼 수 없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자주 가던 익명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이유는 딱 하나 퇴근 이후 회사를 떠올리지 말자.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달렸다. 근데 첫 번째 댓글이 나쁘게 달리니까, 두 번째, 세 번째도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쾌한 댓글이 달렸다. 당혹스러웠다. 1명도 아니고, 여러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으니까. 나는 부연 설명을 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이런 의도로 글을 썼어요. 뭐 이런 뉘앙스였다. 하지만 벽을 마주한다는 게 이런 걸까. 그들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계속 자기가 옳고, 나는 틀리다고 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하지만 나는 일일이 다 해명을 했다. 제가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글을 썼는데, 그 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댓글을 달다보니 내려야 할 정거장에 도착했다. 나는 개찰구가 아닌, 의자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마저 댓글을 달았다. 장난 삼아 쓴 글인데, 얼마만큼의 진지함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하니? 여기가 국민신문고니? 이런 질문을 되레 던지기도 했다. 또 다짜고짜 욕을 하는 댓글엔 단호하게 반사 두 글자를 날 렸다. 반사는 참 유용하다.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 입장을 설명했다.
그렇게 몇 대의 지하철을 보내며 지하철역에서 나는 고독하게악플에 대응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근데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 조낸 귀엽네 ㅋㅋㅋㅋㅋㅋ
장난 삼아 올린 글이 더 이상 장난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향해 가고 있었고 나는 날카로운 말에 한껏 날카로워졌다. 그런 와중 한없이 가벼운 댓글을 마주하니, 허탈했다. 유명 국회의원의 노룩 패스처럼 1초 컷으로 그 댓글을 보고, 쓰던 댓글을 마저 썼다. 여전히 평행선이었다. 좁혀지지 않는 간격만큼 스트레스는 우상향 했다. 회사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도 아니었다. 악플이 그보다 힘이 셌다. 연예인 악플과 자살, 흔해진 기사의 타이틀이 더 이상 무미건조한 글자가 아닌, 폭력으로 다가왔다. 가족을 언급하고, 심지어 그냥 죽어라, 라는 악플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때 내가 경험한 건 그야말로 신생아 수준의 악플에 불과한데, 그 약한 수위에도 내 멘털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일일이 댓글을 달아 소통의 공백을 줄이려고 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노룩 패스를 지향한다)
그때 ‘띵똥’ 알람이 울렸다.
“A회사 다니는 3*세, 키 19*, 한강이 보이는 곳의 자가 소유...... 쓰신 글 보고, 호감이 생겼습니다. 알아가고 싶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토록 화가 치솟는데, 누군가 그 글을 보고, 이런 쪽지를 보내다니...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극소수의 악플에 집중하느라, 다수인 평범한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 나를 일깨워주는 고마운 쪽지이기도 했다.
그날 내가 올린 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예전에 다니엘 헤니를 홍대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말라서 화면만큼 멋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근데 최근에 나 혼자 산다에서 LA 집을 보게 되었는데... 그 후로 다니엘 헤니만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보다.
아마 대부분은 왜 이글에 악플이?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날 악플러의 주된 공격 지점은 이거였다. 너 때문에 여자들이 욕을얻어먹는다. 모든 여자가 너처럼 속되지 않다 였다. 지금 같으면 내 발언이 대한민국 여자를 대변할 만큼의 중요도를 가진다면서 그런 나에게 왜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최소한도 안 지키고 함부로 대하는 건데...라고 적고 싶지만...다이아몬드 보고 남자 친구 보니까 더 훈남이네, 콘셉트로 광고상 받은 유명 다이아몬드 광고는 뭐라고 할 건데... 하지만 그 당시엔 당황해서 아니 화가 나서 뇌가 잘 안 돌아갔다. 왜 하고 싶은 말은 아니했어야 하는 말은 뒤늦게 찾아올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악플을 경험했다.악플의 '악'이 무엇인지를, 콕콕 찌르는 두통과 마구 뛰는 심장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굳이 억지로 좋았던 걸 꼽자면 회사일을 정말 떠올리지 않게 됐다는 것과 젠더 문제는 장난 삼아 언급할 일이 절대로 절대로아니라는 깨달음 그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