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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Dec 09. 2021

악플의 특징

악플을 경험했다





퇴근길이었다. 회사 일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지하철에 올랐다. 회사를 벗어났는데 도통 회사 일을 떨쳐낼 수 없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자주 가던 익명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이유는 딱 하나 퇴근 이후 회사를 떠올리지 말자.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달렸다. 근데 첫 번째 댓글이 나쁘게 달리니까, 두 번째, 세 번째도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불쾌한 댓글이 달렸다. 당혹스러웠다. 1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으니까. 나는 부연 설명을 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이런 의도로 글을 썼어요. 뭐 이런 뉘앙스였다. 하지만 벽을 마주한다는 게 이런 걸까. 그들은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계속 자기가 옳고, 나는 틀리다고 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쌓였다. 하지만 나는 일일이 다 해명을 했다. 제가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글을 썼는데, 그 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댓글을 달다 보니 내려야 할 정거장에 도착했다. 나는 개찰구가 아닌, 의자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마저 댓글을 달았다. 장난 삼아 쓴 글인데, 얼마만큼의 진지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하니? 여기가 국민신문고니? 이런 질문을 되레 던지기도 했다. 또 다짜고짜 욕을 하는 댓글엔 단호하게 반사 두 글자를 날 렸다. 반사는 참 유용하다.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내 입장을 설명했다. 


 


그렇게 몇 대의 지하철을 보내며 지하철역에서 나는 고독하게 악플에 대응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근데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 조낸 귀엽네 ㅋㅋㅋㅋㅋㅋ


 




장난 삼아 올린 글이 더 이상 장난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향해 가고 있었고 나는 날카로운 말에 한껏 날카로워졌다. 그런 와중  한없이 가벼운 댓글을 마주하니, 허탈했다. 유명 국회의원의 노룩 패스처럼 1초 컷으로 그 댓글을 보고, 쓰던 댓글을 마저 썼다. 여전히 평행선이었다. 좁혀지지 않는 간격만큼 스트레스는 우상향 했다. 회사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도 아니었다. 악플이 그보다 힘이 셌다. 연예인 악플과 자살, 흔해진 기사의 타이틀이 더 이상 무미건조한 글자가 아닌,  폭력으로 다가왔다. 가족을 언급하고, 심지어 그냥 죽어라, 라는 악플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때 내가 경험한 건 그야말로 신생아 수준의 악플에 불과한데, 그 약한 수위에도 내 멘털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일일이 댓글을 달아 소통의 공백을 줄이려고 했다. (그땐 그랬다. 지금은 노룩 패스를 지향한다)


 


그때 ‘띵똥’ 알람이 울렸다.


 


“A회사 다니는 3*세, 키 19*, 한강이 보이는 곳의 자가 소유...... 쓰신 글 보고, 호감이 생겼습니다. 알아가고 싶습니다.”


 


어이가 없었다.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토록 화가 치솟는데, 누군가 그 글을 보고, 이런 쪽지를 보내다니...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소수의 악플에 집중하느라, 다수인 평범한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 나를 일깨워주는 고마운 쪽지이기도 했다.


 


그날 내가 올린 글 이런 내용이었다.


 


예전에 다니엘 헤니를 홍대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말라서 화면만큼 멋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근데 최근에 나 혼자 산다에서 LA 집을 보게 되었는데... 그 후로 다니엘 헤니만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보다.


 


아마 대부분은 왜 이글에 악플이?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날 악플의 주된 공격 지점은 이거였다. 너 때문에 여자들이 욕 얻어먹는다. 모든 여자가 너처럼 속되지 않다 였다. 지금 같으면 내 발언이  대한민국 여자를 대변할 만큼의 중요도를 가진다면서 그런 나에게 왜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하는 최소한도 안 지키고  함부로 대하는 건데...라고 적고 싶지만...다이아몬드 보고 남자 친구 보니까 더 훈남이네, 콘셉트로 광고상 받은 유명 다이아몬드 광고는 뭐라고 할 건데...  하지만  그 당시엔 당황해서 아니 화가 나서 뇌가 잘 안 돌아갔다. 왜 하고 싶은 말은 아니 했어야 하는 말은 뒤늦게 찾아올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악플을 경험했다. 악플의 '악'이 무엇인지를, 콕콕 찌르는 두통과 마구 뛰는 심장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게 었다.  굳이 억지로 좋았던 걸 꼽자면 회사일을 정말 떠올리지 않게 됐다는 것과 젠더 문제는 장난 삼아 언급할 일이 절대로 절대로 아니라는 깨달음 그 정도다





추신.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수정하고 싶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봐.


이게 나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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