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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Mar 04. 2022

04. 명품쇼핑백 사는 건 미친 짓(?)

유독 '명품' 두 글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명품 쇼핑백 사는 일이 왜 미친 짓일까요?




명품 쇼핑백 판매 일괄 10,000원


당근 마켓에서 명품도 아니고, 명품 쇼핑백을 판매한다는 글을 봤습니다.  호기심에 클릭을 했어요.  루이뷔통, 샤넬, 몽클레어 등 몇몇 명품 브랜드의 쇼핑백 8장이 보였습니다. 근데 더 놀라운 건, 바로 판매에서 예약으로 전환되더라고요.


‘부촌’에 근무하는 메이드들이 들고 다닌다, 짝퉁을 들고 다닐 바에 근사한 명품 쇼핑백을 여러 번 메는 게 나은 선택이다, 라는 풍문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구나, 했습니다. 더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명품만큼 탐난다, 인기폭발 5만 원에도 되팔리는 쇼핑백의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의 하단에서 ㅈㅈㅈ 이 정도면 미친 거다... 한심한 것들...  허세, 허영의 끝... 남에게 보여주기 식 인생 그만 살고 가족에게 잘해라 라는 부정적인 댓글 만났습니다. 명품을 중고로 되팔 때, 쇼핑백이 있으면 시세를 더 높이 받을 수 있어서,  병행 수입 제품을 여자 친구에게 선물해주려고 구입했는데, 쇼핑백이 불포함이라서 샀다는 명품 쇼핑백을 구매하는 다양한 경우의 수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을 일방적인 댓글을 보는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담배 한 갑이 4500원이잖아요. 하루 한 갑을 피우는 흡연자가 한 달 담배 비로 13만 5000원, 1년이면 162만 원을 소비하는데, 개인의 취향과 기호로 포장돼 너그러운 평가를 받는단 말이죠. 주위에 간접흡연의 피해를 끼치는 데도 말이죠. 그리고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쇼핑백은 기꺼이 유료 결제를 하는데, 그리고 그 행위에 대해선 딱히 삐딱한 시선을 던지지 않는데 말이죠. 근데요.  유독 '명품' 두 글자만 들어가면 일부 사람들이 예민 반응을 보이고, 또 굳이 티를 낸단 말이에요.  왜일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나 = 명품백 사고 세관 걸린 애?




명품을 들고 다니면, 불편한 시선을 만납니다. 뭐랄까, 명품 하나로만 특정인을 규정하는 단정적인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요? 명품 하나로 허세, 허영의 아이콘이 돼 버린다거나 명품만을 소재로 친구와 수다 떠는 무개념이 돼 버리는 거죠.  명품 얘기도 나누지만 책, 공연, 주식, 부동산, 여행 대신 비트코인, 연예인, 이성 얘기만 나누는 수준 낮은 사람으로 평가절하됩니다. 명품이 그 대단한 일을 해냅니다. 관련된 직종에 근무하지 않으면서 오직 명품 얘기만 주야장천 한다면, 편협한 관심사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이 한 겹이 아닌 여러 겹의 복합적인 면모가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만큼 좀 강력한 힘이 느껴집니다.


하루는 소개팅을 하러 갔어요.  칭다오를 같이 다녀온 친구가 주선해준 것이었죠. 그 친구의 남자 친구도 자리를 함께 했고요.  근데 그 친구가 저를 이렇게 소개하더라고요.


 “쟤 얼마 전에 명품 샀다가 세관에 걸렸잖아요.”라고. 초두 효과라고 하죠. 먼저 접한 정보가 나중에 접한 정보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순간 저는 얼음이 되었습니다. 당혹스러웠어요.  거짓은 아닌데, 팩트가 맞긴 하는데... 묘하게 기분이 상하더라고요. 빚을 내서 산 것도 아니고, 비도덕적인 일하면서 산 것도 아니고, 급여보다 저렴한 가격이었고, 주식 수익금으로 샀고, 일시불로 내 카드로, 갖고 싶어서 그것도 서른 기념으로 정말 큰 마음먹고 샀는데, 물론 세관에 걸린 건 사실이지만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걸린 세관인데... 하지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세관 걸리고 속상해하는 걸 바로 코 앞에서 본 친구가 그 얘기를  굳이 소개팅 자리에서 꺼내는 거였습니다.  그래도 좋게 해석해보고 싶었어요.


아니야,  내가 그 가방을 소개팅에 들고 왔고, 그 친구가 내 카드 오류로 그날 대신 관세를 긁어줬으니까, 그 기억이 강렬해서 가방을 보니까 그 일련의 일들이 생각나서 얘길 꺼낸 거야. 근데 내가 서른 기념으로 큰 마음먹고 샀다가 세관에 걸려 속상했던 걸 옆에서 지켜봤던 친구가 관련된 주제를 얘기하고 있을 때, 자연스럽게 꺼낸 게 아니라, 생뚱맞은 타이밍에 그것도 나를 소개하는 첫 정보로 그 얘기를 꺼낸 건... 좋은 의도로 포장을 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무리였습니다.  석연치 않았어요.  


또 이런 질문도 마주합니다.  왜 마치 매번 명품을 사다, 세관에 걸리는 상습범 취급 같다는 생각이 들지... 세관은 내가 잘못한 거니까 비난받아도 마땅하지만, 근데 명품을 사는 행위까지 몇 년을 꾸준히 명품을 산 나 스스로도 왜 떳떳한 기분이 들지 못하는 걸까. 이 찜찜한 기분의 정체를 뭘까. 알게 모르게 명품의 부정적인 면모를 학습한 결과일까. 그런 불편한 시선이 누적이 된 걸까.


그 친구가 매해 택시비에 쓰는 비용이면 이 가방보다 더 고가의 명품을 살 수 있을 텐데 "얜 연간 택시비로 이 가방만큼 소비하는데, 그러면서 명품 가방 없는 걸 자랑스러워하는데"라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구사하면,  그 친구는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아님 그냥 버럭 할까, 버럭 하면 예민하다고 되레 내가 역공을 당하겠지... 그래도 나의 기분 나쁨은 적어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가수 이효리는 보세를 즐겨 입지만 그 보세가 명품 못지않은 고가라고 했는데...


그렇게 답이 나오지 않는 여러 질문들을 마주했습니다.




명품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



출처 laxus.com


라쿠사스(Laxus) 서비스가 있습니다. 월 6800엔을 지불하면 루이뷔통, 구찌, 에르메스 등 명품 가방을 빌릴 수 있는 명품 가방 구독 서비스입니다. 2016년 창업하여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곳이죠. 근데 라쿠사스 마테크놀로지의 창업 배경이 흥미롭습니다. 창업자인 고다마 쇼우지가 명품 가방 대여 서비스의 사업성을 확인하고자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데요.


처음 던진 질문은 "만약 명품 가방을 빌린다면 어떤 브랜드를 빌리겠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근데 예상외로 고급백은 촌스러우니, 가성비에 맞은 케이트 스페이드를 빌리겠다는 답변이 많았답니다. 라쿠사스 비즈니스의 존재 의미가 없구나, 싶은 답변들이었지요.


근데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잖아요.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라고 할까요?  고다마가 질문을 바꿔 다시 의견을 물어봤답니다.


"여기 있는 명품 가방을 공짜로 빌려주겠으니, 아무거나 들고 갈 수 있다면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시겠습니까?"였습니다. 그랬더니 이전과 상반된 결과가 나왔는데, 루이뷔통, 셀린느 같은 고가의 가방을 선택하더라는 거죠.


고마스는 고객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구나,를 깨닫고 라쿠사스를 창업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2만 명의 유료회원과 98%의 고객 유지율을 기록하며, 5년째 영속하고 있고 더 나아가 기대주로 투자도 꽤 많이 유치받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개그맨 유세윤 씨가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사진과 "어제는 제가 아내랑 안 싸운 지 처음으로 50일이 되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집에 갔더니 아내가 깜짝 선물을 준비했지 뭐예요!! 바로바로 제가 너무 갖고 싶었던 명품쇼핑백이었어요. 대박.. 갬동..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다 있더라니까여ㅠ" 멘트를 보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명품 쇼핑백이 처음으로 갖고 싶어 지더라고요. 제가 블로그를 하며 사진을 좀 더 예쁘게 찍고 싶은 마음에 이케아에서 조화를 산 적이 있어요. 그때 만약 조화 대신 명품 쇼핑백을 샀으면 어땠을까,를 가정 해 보았습니다. 가격은 조화 한 송이 당 천 원 안팎이었으니까, 명품 쇼핑백 한 장 가격이랑 얼추 비슷한데 다 연출 효과도 조화만큼은 해 냈을 거 같거든요.  중저가 쇼핑몰도 옷은 명품이 아닌데, 그 옷을 착장 한 모델 손엔  명품 백을 꼭 배치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잖아요.


그때 소개팅을 주선해준 친구가 최근 결혼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청첩장을 건네주겠다고 해서 약속을 잡다가, 자연스럽게(?) 신혼집 장만한 얘기까지 듣게 됐어요. 그러다 예비 남편이 "고작 그것밖에 돈 못 모았냐고" 친구한테 그랬다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예물에 대해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어요.  근데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알고 싶지 않아서요. 절 명품 사다 세관에 걸린 애라고 소개한 그 아이가 결혼 예물로 명품백을 장만했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고작 그것밖에 돈 못 모은 얘길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친구의 현재가 명품이 없음을 자랑스러워하는 과거 친구 모습과 겹쳐지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거 같아서요.  



 "내 마음이 좋으면 밖에 싫은 게 없어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그런 대사가 나오더라고요.

제 마음이 안 좋은 건, 친구의 무심한 말 한마디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냥 제 마음이 안 좋아서일까요.  





서점에서 재테크와 무관한 책을 읽는데, "한달 180만원 버는데, 명품백을 들고 다니더라고요."라는 문장을 읽고는 그 책을 바로 덮었습니다. 저자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더 이상 궁금하지 않더라고요. 읽고 싶지 않았습니다. 월 180만원 받으면 에코백만 들어야 하고, 오성급 호텔 대신 게스트하우스에만 묵어야 한다는 걸까요,  꿈과 목표는 크고 원대하게 설정하라고 어려서부터 들었는데, 명품만은 예외인 건가요? 아니면

명품 대신 집을 사면 옳고 바람직한 소비라 권장하고 싶은 마음에서일까요. 근데 왜 비교의 대상이 과거의 자신이 아니고, 비교의 대상이 가방의 카테고리가 아닌 집으로 건너 뛰는 지...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명품도 소비하면서 집도 산 사람들이 말이 없는 것과 대조되게 말이죠.   독재정권 시대에는 연애 얘기만 해도 왕따를 당했다고 하던데, 민주화 같은 대의를 위해 그런데 지금의 시대엔 명품이 연애의 지위를 물려받았나...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이 안 좋은 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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