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하게 사고야 말겠어, 저와 약속했던 명품이 있습니다. 점심시간, 글로벌 코스메틱 브랜드 사무실에서 본 루이비통 스피디였습니다. 근데, 제가 다양한 브랜드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으로 다른 브랜드만 사고 있었습니다. 주로 여행 가면서 면세점에서 명품을 샀는데, 루이비통은 면세가가 그다지 매력이 없거든요. 그렇게 제 선택지에서 계속 제외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꾸준히 흘렀습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애정 하게 되고, 애정 하면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고, 그럼 더 잘하고 싶어 지잖아요.제게 글쓰기가, 영어가, 여행이, 요리가, 투자가... 그런데요. 근데 명품 쇼핑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점점 감흥이 사라졌습니다. 싫다, 무용하다의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이 정도면 갈 수 있을 만큼 다 가봤다, 라는 끝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단원을 루이뷔통 스피디로 장식 하자, 고 마음먹지요. 처음으로 롯데백화점 애비뉴얼을 찾습니다. 유일하게 백화점에서 구입한 명품 이야기가 되겠네요.
근데 점원이 반둘리에를 보여주면서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지인이 최근 샀다고 자랑했던 반둘리에를 직접 들어보니, 역시 탐이 나더라고요. 졸업 차 방문한 발걸음에서 또 다른 걸 욕망하는 절 보고, 언제쯤 물욕을 느끼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를 떠올리긴 했지만, 그래도 제 다짐은 나름 확고했습니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시험 볼 때 중간에 답을 바꾸면 틀리니까, 하는 마음으로 결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제 결정할 건, 사이즈... 세 가지 사이즈를 거울 앞에서 들어보며, 같은 소리를 합니다.
“예쁘네요.”
한 때 예쁘지도 않은데 자주 보이던 무명 씨였던 가방이시간과 경험이 쌓이니, 갖고 싶은 예쁜 것으로 변모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작가의 말이 촉촉하게 적시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서 더 주목한 건, 명품 하나 없던 시절 - 더 정확히는 명품은 나와 다른 세계라고 선을 긋던 -이라면 결코 소리 내지 않았을 말을 하며 웃는 저였습니다. 다 갖지 못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속 마음을 감추거나, 외면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더라고요. 아, 막상 손에 들어보니 더 탐이 나는구나, 하고요. 한 때명품 앞에서 작아지던 제 구겨진 마음이 다리미질한 듯 '쫙' 펴졌구나,를 느꼈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결국 점원의 도움을 받았어요. 루이비통이 처음이라면, 이 사이즈를 추천할게요. 그렇게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 같은데’라는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루이비통 멤버십을 가입합니다. 그리고 한동안 주기적으로 뉴스레터를 받아봅니다. 물론 잘 안 읽게 된다는 게 함정이지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누가 요즘 루이뷔통 스피디를 드니?”라는 거예요. 평상 시라면, 그냥 웃었을 거예요. 근데 제게 루이뷔통 스피디는 건드리면 안 되는 거거든요. 어찌 보면 그 가방 하나 때문에 십 년을 투자한 거잖아요. 그래서 굳이 한 마디를 보태기로 했습니다. “내가 드는데, 나 작년에 샀는데”라고.
아마 제가 에트로 토트백을 방에 고이 모셔두던 시절, 그 친구가 이 얘기를 꺼냈으면 다른 결말이었을 거예요. 잘 모르는 세계였거든요. 그래서 이래도 저래도 저와 전혀 상관이 없었어요. 근데 저는 그동안 명품이라는 걸 소비하면서, 경험을 쌓았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가죽에 적당히 손때가 묻어나는데, 그게 또 다른 멋으로 근사해진다는 걸요. 또 비가 오면, 비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나보다 귀한 가방님의 포지션에서 비가 와도 더 이상 호들갑 떨지 않는 물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자리로 재 포지셔닝되었습니다. 또 명품을 사기만 하고, 그 브랜드 얘기를 모르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책을 통해 접하려고 애를 썼고요. 그러면서 명품이 오랜 기간 사랑받는 이유와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한 값비싼 마케팅 활동도 접했습니다. 물론 에르메스처럼 마케팅 활동을 하지 않고도 희소한 가치를 극대화하며, 부자들이 욕망하는 투자의 일환으로써의 최고급 명품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또 패션을 주도하는 명품 디자이너들은 오히려 명품을 입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근무할 때 얘기겠죠. 그렇게 저만의 명품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의한 명품은 코코 샤넬의 말을 인용해볼게요. “가장 아름다운 색은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다” 그 말처럼 자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편한 것, 그리고 의미 있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정리했습니다.
물론 검은 목폴라에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교복처럼 입은 스티브 잡스처럼 엄청난 부호들은 굳이 물건 하나로 스스로를 뽐내지 않아도 되지만, 변호사, 회계사와 같은 특정 직업군은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로 근사한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성형처럼 자신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한 행위로, 또는 근사한 것을 욕망 삼아 자기 계발을 하는 기회로 명품을 소비할 수 있다면 명품의 긍정적인 면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물론 비도덕적인 일을 하면서까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면서 명품을 소비하는 분들도 미디어를 통해 접했습니다. 뭐 늘 소수의 옥에 티는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그런 이유로 굳이 표현하고 싶었어요. 명품도 유행이 돌고 돈다는 거 모르는 바 아니지만, 명품 소비자 모두가 그런 소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밝히고 싶어서요.
유럽 여행하면서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아주 오래된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건을 소모품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애정을기울여 추억을 쌓으면 물건 그 이상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단순히재정적인 이유로 차를 바꾸지 못한 것과 다른 근사함이 묻어났습니다. 그 자동차들처럼 유행이라는 흐름을 조금은 둔감하게 받아들이며 처음 명품을 손에 넣었을 때처럼 소중하게 제 물건들을사랑해주고 싶어졌어요. 물론 이건 꼭 명품에 국한된 얘기는 아닙니다.
친구는 “어.. 어.. 그래”로 당황한 듯싶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서 후회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