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의 한 백화점이었습니다. 공항 가기 전, 서둘러 점심을 먹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상적인 가족을 만났습니다. 협소한 공간이다 보니, 신발부터 제 눈에 들어왔는데 샤넬, 페레가모, 프라다를 신은 가족이었습니다. 관계는 할머니, 어머니, 아들 이렇게 3대로 보였고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위로 향하게 되었어요. 가방이 보이더라고요. 에르메스, 루이비통...시계는 파텍 필립(Patek Philippe) 그야말로 럭셔리의 끝장 왕 가족이었습니다. 근데 제게 그 가족이 더 인상 적였던 건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 지, 꾸민 거 같지 않은 웃음을 남발하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너무나 보기 흐뭇한 장면이었어요. “가족끼린 밥 먹을 때, 원래 대화를 안 해.”라는 말이 그들에겐 적용되지 않을 것 같은 화목함과 여유를 그들에게서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평일 점심시간을 조금 벗어난 시간에요.
Z는 홍대도 아니고, 홍대 근처 문예창작과를 나왔다고 본인을 소개하는 중소기업 관리자입니다. 남편도 끔찍하게 싫어하고 남자도 끔찍하게 싫어한다면서 남자 거래처나 고문에겐 반색하며 달려가서 포옹을 하는 여자입니다. 딸이 있습니다. 순수 국내파이고요. 직업군별 불륜 에피소드를 읽고, 굳이 2-30대 팀원들에게 공유해주고요. 주로 하는 얘기는 해외 직구니, 명품 포함 쇼핑 얘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산 건 일부는 쓰고, 더 이상 안 쓰는 건 회사 직원들에게 바자회 형식으로 판매하고, 버리고요..... 참고로 함께 10년 넘게 근무한 동료들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A : Z 다 싫어해. 친구도 없을 걸. 이상하니까 조심해
B : 걔 못 돼 처먹은 거 다 알아. 중간 관리자 키울 생각 없는 것도 다 알고
C : 벼랑 끝에 서 있잖아요. 그럼 Z는 진짜 벼랑 끝으로 밀어요.
유럽을 여행 중인 대학생입니다. 근데 아르마니 매장에 들어가서 아르마니 양복을 입어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곤, 그만 푹 빠졌습니다. 시중의 돈도 많지 않은데 말이죠. 아니, 양복을 사면,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은 예산을 다 털어서 아르마니 양복을 삽니다. 그리고 그 아르마니를 입고, 생존을 위한 호객 행위를 합니다. 아르마니가 그에게 전화위복이 되어줍니다. 고객들로부터 호감을 얻거든요. 아마도 이 아르마니를 입은 사람이 소개해주는 호텔은 절대 싸구려의 후진 호텔일 수 없다, 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아르마니를 얻고,노숙자로 전락할 뻔했던 대학생은 그 아르마니 쇼핑을 도약 삼아 직원 한 명을 더 채용해 수익을 창출합니다. 이 모든 게 다 아르마니 양복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저는 나꼼수로 불리는 김어준 님의 역량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O는 평범한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에도 입학했습니다. 명품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요. 아니, 명품은 허세, 허영의 대명사라고 스스로 만든 편견에 갇혀서요. 취업해서도 책도 열심히 읽고, 재테크도 열심히 했습니다. 명품은 여전히 멀리 해야 하는 대상으로 분류시켜 놓은 채로요. 그리고 명품 얘기가 나오면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밝힙니다. "저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들과 책 얘기,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과 재테크 얘기를 나누지, 절대 명품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K와 Y 부부는 명품의 명도 모릅니다. 하지만 매일 시장에서 열심히 과일을 팝니다. 이십 년된 옷을 입어 가며 아끼고 또 아끼는 생활이었지요. 그렇게 근검절약으로 무장,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건물을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대출금을 갚았습니다. 건물 하나를 더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또 대출금을 갚아야 했습니다. 대출금을 갚다 보니, 생일을 챙길 여유도 없는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임차인들에겐 낮은 임대료를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번 재산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고, 고려대에 장학금으로 환원했습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기부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남기고요.
명품보다 더 명품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명품 하나 없는데도 명품의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명품만 명품인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 명품을 더 후지게 만드는 소비자도 있습니다. 반면, 명품을 적대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명품 하나 사서 써 보지도 않고, 그냥 나쁘게만 보는 사람입니다.
고전으로 알려진 플라톤의 향연의 일부분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는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네. 가령 지금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그게 술 마시는 일이든 대화하는 일이든 간에 아무것도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은 없네. 다만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느냐에 따라 성격이 드러나게 되는 거지. 아름답고 올바르게 행해지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올바르지 않게 행해지면 추한 것이 된다는 말이네. 사랑하는 일도 바로 그렇지. 에로스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직 아름답게 사랑하도록 유도하는 에로스만 아름다운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