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 구장의 맨 흙더미 외야석에 누워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재능이나 능력이 있든 없든, 아무튼 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써보고 싶다고. 그 옛날 뭔가 쓰려고 하면 느껴지던 부담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는 야구장을 빠져나와 신들린 것처럼 바로 신주쿠에 있는 기노쿠니야 서점에 가서 5천 엔짜리 만년필을 샀다. 집에 돌아온 하루키는 새로 산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먼저 소설을 쓰기 위한 자신만의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中
만년필 한 자루, 원고지, 그리고 소설을 쓰기로 한 결심 이 세 가지가 누구나 아는 ‘상실의 시대’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작이었습니다.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완성시키니까요. 그리고 "사람들 마음의 벽에 새로운 창을 내고 그곳에 신선한 공기를 넣고 싶다. 그것이 소설을 쓰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이고 희망하는 것입니다."라는 대단한 일을 해내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만년필은 그런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만년필 이야기고요. 제가 몽블랑 만년필을 갖게 된 건 이런 사연입니다. 새해를 앞둔 어느 겨울, 저는 이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별을 말했고요. 근데 이별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상대가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장문의 문자에 이은 늦은 밤 도착한 "자니?"의 그리 달갑진 않지만 이별의 수순을 밟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답을 하지 않기로 합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그런 이별이었거든요. 이별에 깔끔이라는 단어만큼 이질적인 것이 또 있을까, 싶지만 참 깔끔과 거리가 먼 이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분이 전화를 했고,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더 이상 질질 끌지 말자, 는 결연한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나갔어요. 근데 그분이 절 백화점으로, 정확히는 몽블랑 매장을 데려가더라고요. 그리고 그날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 받았습니다. 그래서 몽블랑 만년필이 재회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몽블랑 매장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1차로 의사를 표현을 했고, 그 후엔 화장실로 이동하니까요.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제 손에는 몽블랑 쇼핑백이 들려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한국 사람끼리 대화를 하는데도, 이렇게 불통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그랬습니다.
제가 그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타이밍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한 달만 급하게 쓰자고 돈을 빌려가선 - 참고로 몽블랑 만년필보다 많은 액수였습니다 - 이별을 했는데도 그 돈은 안 갚고, 몽블랑 만년필을 사주어서입니다.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우선순위라는 게 있는데, 이건 그냥 후까시 - 일본어로 과시하다, 허세를 떨다는 의미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행동이구나, 저는 그렇게 해석해내고 있었어요.
여기까지만 적으려다 한 가지만 더 보태면 처음 백화점에 절 데려간 날을 적어볼게요. 굳이 백화점에 가서 본인이 애정 하는 브랜드라며 버버리 매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갖고 싶은 걸 다 사라고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근데요. 제가 거절을 했어요. 이유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한테 고가의 물건을 받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고, 제가 명품을 사긴 하지만 백화점 정가 가격으로 명품을 사고 싶을 만큼 명품을 욕망하진 않거든요. 근데 말이죠. 헤어지고 가장 후회가 되는 게 뭐냐고 제게 묻는다면요. 그때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사주겠다고 할 때 그것도 명품을 왜 거절했을까, 였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분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았을 거예요. 왜냐면 그럼 조금 더 일찍 그분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을 거 같거든요.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진짜 사주고 싶었다면 만년필을 사줄 때처럼 의사에 반해서 사줄 수도 있었는데...여기까지만 적을게요.
진심이 아닌 폼재기로 사준 선물은 아무리 명품이라고 기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감동은 가격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요. 그리고 그런 건 손이 잘 안 가더라고요.
그렇게 꽤 오래 포장도 안 뜯은 채로 몽블랑 만년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깝더라고요. 잘 쓰라고 선물해준 건 지, 감동을 가장한 후까시였는 지, 선물의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각인까지 한 만년필을 그대로 두는 게 맞나, 싶었습니다. 가끔 드라마를 보면 고가의 반지를 막 던져서 버리던데, K- 드라마를 애정 하지만 그런 부분은 드라마가 사람을 망치는, 또 공감능력도 결여된 장면이 아닐까,라고 감히 주장해보고 싶은데...... 왜냐면 짝퉁을 선물로 받은 게 아니라면 명품을 던져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 될까, 그런 지극히 주관적이고 건강한 의심 때문이에요.
그런 이유로 차마 버리진 못하겠고 그렇다고 애정 하고 싶지도 않고... 근데 또 아깝기는하고 그러니까 물건이 무슨 죄라고 에바 하지 말자고설득하게 되고... 그러는 나를 보고 있자니, 그 '꿀'인지, '쿨'인지를 하려면 전제조건이 명품이 껌값 정도가 되어야 하는 거구나, 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과연 쿨하게 살 수 있을까, 미래를 의심하게 되고... 비싼 데 내키지 않는 선물은 또 이런 고충이 있구나, 싶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참 정직해요. 꾸준히 흘렀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담백해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 몽블랑처럼 최고를 지향한다는 몽블랑을 몽블랑 그대로 마주하게 된 거죠. 물론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높다고 다 최고인가, 높지 않은 한라산이 얼마나 예쁘다고, 하는 마음도 좀 많이 있었어요.
그렇게 요즈음 조금씩 써보려고 하는데요. 제가 세필이면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는 만년필을 좋아하는데, 몽블랑 만년필은 그 어느 하나 제 기호에 맞는 게 없더라고요. 아니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웠는데... 부연하자면, 제가 주로 다이어리에 그날 일을 정리할 때 필기구로 적는데, 아시다시피 다이어리 용지가 두툼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아주 가늘게 쓸 수 있는 필기구가 좋더라고요. 또 적을 공간이 협소한 것도 이유고요. 그리고 가끔 쓰는 글은 주로 노트북으로 적습니다. 타이핑을 치죠. 물론 필사도 하지만 태필을 구사하는 만년필로 필사를 하면 두툼한 좋은 재질의 종이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래야 뒷면에 잉크가 묻어나지 않거든요. 근데 그 만년필은 ...... 뭐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몽블랑 만년필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가끔 발마사지용으로 쓰기도 하고, 그래도 아까운 마음에 써볼까, 하는 마음도 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