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타닥
비가 오기 직전의 습한 대기. 맑고 밝은 기운 혹은 기분을 죄다 덮어버린 구름. 우울감을 자극하는 무겁고 어두운 색채들.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던 음침하고 암울한 기억을 깨우는 소리. 비와 어떤 사물이 서로 맞닿는다. 타닥타닥 타닥. 매 순간과 순간이 일정한 듯 서로 다른 이 소리에 귀를 빼앗긴다. 점차 몸도, 마음도, 내 전부가 그 소리에 잠식되어 버리고, 나는 어느새 우울과 평화가 공존하는 미지의 세계에 있다.
그 세계는 아무것도 없고 무엇도 아니다. 나 혼자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있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음으로 기척도 없이 사라지고 나타난다. 하염없이 반복되다 어느 틈에 이 세계가 아닌 곳에 홀로 서 있다.
홀로 서 있는 나는 되뇐다. 더 잘 살고 싶다, 더 잘 웃고 싶다. 비는 우울감을 주고 그 우울감은 내게 생기를 준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