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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이모님과 작별했다

아이를 봐주시던 이모님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30개월 가까이 되기까지 "이모님"과 함께 아기를 키워왔는데, 이제는 온전히 우리 부부가 키워보기로 했다.


경제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육아 휴직 수당으로는 이모님 급여의 반도 채우지 못했으니까. 이자는 자꾸만 올라가서 우리 가계가 지니고 있는 대출의 이자 부담은 커져갔고, 언어치료, 감각통합 치료 등 아이의 성장을 위한 소비 또한 생겨나고 있었다.


그런데, 가장 큰 이유는 "이모님이 너무나도 자상해서"였던 것 같다.




우리는 그동안 두 명의 육아 이모를 고용했었다. 두 분 모두 정말 착하셨던 분들이라, 매일 밤마다 다섯 번씩은 넘게 울면서 깨는 우리 아이와 함께 주무시면서도 한 번 불평불만의 말도 전하지 않으셨다. 특히 두 번째 이모님은 두 돌이나 지난 아이를 한 시간이건 업고 계시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지내다 아이의 수면교육을 하게 되었다. 제주도까지 다녀오면서 힘들게 수면교육을 했으니, 부모로서는 매우 간절하게 아이의 잠버릇을 바꿔보자는 결심을 한 셈이었다.


나름 수면교육의 효과를 보면서 우리 부부와 아이,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 자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아이가 감기에 걸리자 다시 시도 때도 없이 깨고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모님께서 아이가 감기 걸린동 안이라도 본인이 데리고 주무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감기에 걸린 2주 동안 이모님은 다시 예전처럼 아이가 깰 때마다 성실하게 업어주셨다. 우리는 이모님께 우리가 수면교육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말씀드리며 너무 많이 업어주지 말 것을 말씀드렸지만, 이모님은 아픈 아이를 울릴 수는 없다며 한사코 아이가 깰 때마다 업어주시는 것이었다.


결국, 아이는 다시 이모님과 자게 되었다. 수면교육은 그렇게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아기가 크면 다 해요."

우리 이모님이 입에 달고 계셨던 말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모님은 아이에 대한 부모의 걱정을 나름 안심시키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크면 다 한다는 이유로 이모님은 아이에게 모든 것을 직접 해주셨다. 사과를 먹을 때면 사과를 한 입 한 입 직접 손으로 넣어주셨다. 작은 계단을 내릴 때도 아이의 손을 잡아주셨고 집안에 놓아둔 작은 트램펄린을 아이가 놀 때도 손잡이에서 손을 못 떼게 하셨다. 신발도 양말도 항상 본인 손끝에서 넣어사 손끝에서 채워주셔야 했다. 목도리도 아이가 집어 올 기회는 없었고 이모의 손에 집어져 둘러져야 했다.


발음 연습을 시키는 아빠에게 "아기가 크면 다 해요"라고 말하시면서 아기가 스트레스받는다며 말 연습은 너무 많이 시키지 말라는 얘기까지 하니, 내가 다 나쁜 놈이 되는 느낌이었다.


두 돌이 지나서야 젖병을 없앴을 때 아이가 안 먹을까 걱정된다는 이모의 말 한마디가 복선이었음을 알아야 했다. 아이의 모든 행동을 대신해주시는 모습은 24개월에도, 26개월에도 30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똑같았다. 


베일리 검사를 받으면서도, 감각통합 치료를 받으면서도, 언어치료를 받으면서도 치료사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말은 우리 아이가 너무 조심성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심성이 자신감으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모님의 육아에 성장을 막으려는 악의가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지금 우리 아이의 성장을 위해 이모님의 자상함을 걷어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육아 이모님을 그만 쓰기로 결정했다.


육아 이모님과의 관계는 단순히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다. 단순히 이모님께 이렇게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직장에서의 업무지시처럼 전달되고 수행되는 관계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을 가지고 혼을 내거나 잦은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관계는 더더욱 아닌 그런 관계이다. 그렇기에 이 시점에서의 변화는 이모님이 아예 부재한 상황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모님과 작별을 했고, 아이가 태어난 지 30개월 만에 우리는 처음으로 직접 모든 육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모님과 작별을 하고 2주가 채 지나지 않았지만 2주 동안의 성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변화가 생기고 있다. 아이는 첫 3일 정도는 어색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금방 안정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트이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단어의 소리만 쫓아하는 발성의 단계를 지나, 요구를 하는 발화가 시작된 것이다. 행동도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어, 우리 아들이 이런 성격이었던가 하는 놀라운 모습도 몇 번을 마주하고 있다.


이 변화의 결과가 이모님이 안 계셨기 때문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계셨더라도 이 시점에 이런 수준으로 말이 트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연찮게도 그 변화의 시점에 아이의 변화도 찾아왔으니 무척이나 다행이다.


이제 정말 육아휴직에 걸맞게 정말 육아를 시작할 때이다.



<이모님께>


그동안 우리 아들과 함께 지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모님 덕분에 이 부족한 아빠와 엄마가 마음 놓고 일도 다니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 아이를 예뻐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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